텃밭 속에 숨은 약초
비가 오는 날이면 무언가 따뜻한 게 그리워집니다. 어릴 적 온 가족이 다리를 밀어 넣고 누워있던 뜨끈한 아랫목도 생각나고, 약간은 퀴퀴하기까지 했던 반지하 술집에서 동이째 마시던 막걸리도 떠오릅니다. 학생 때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거의 매번 머리가 멍할 정도로 매운 짬뽕을 시켜먹곤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비 오는 날은 따뜻한 전을 부쳐 먹기에 좋습니다. 파를 뽑아다 파전을 부쳐 먹어도 좋고, 겨울에는 저장해둔 배추를 꺼내 배추전을 부쳐 먹어도 달고 맛있습니다. 또한 여름철 전 부쳐 먹기 좋은 부추가 있습니다. 부추전은 달짝지근하고 향도 있어서 그 맛이 제법 괜찮습니다.
작은 부추 밭을 만들어 놓으면 거의 일 년 내내 신선한 부추를 즐길 수 있습니다. 부추는 베어 먹고 난 자리에서 이내 다시 나오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베어내면 먹는데 무리가 없습니다.
저희 동네에서는 부추를 ‘솔’이라고 부르는데, 그래서 꽤 클 때까지 솔과 부추는 다른 것인 줄 알았습니다. 아마 잎 모양이 뾰족한 게 솔잎과 비슷해서 그리 부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부추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추(구채, 韮菜)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매우면서 약간 시고, 독이 없다. 이 약 기운은 심장으로 들어가는데,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위 속의 열기를 없애며 허약한 것을 보하고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한다. 가슴이 저리고 아픈 증상도 치료한다. 부추는 가슴속에 있는 궂은 피와 체한 것을 없애고 간기를 든든하게 한다.
어느 지방에나 있는데 한번 심으면 오래가기 때문에 부추 밭이 된다. 심은 다음 1년에 세 번 정도 갈라서 심어도 뿌리가 상하지 않는다. 겨울에 덮어주고 북돋아 주면 이른 봄에 가서 다시 살아난다. 채소 가운데 성질이 제일 따뜻하고 사람에게 이롭다. 늘 먹으면 좋다.
부추는 매운 냄새가 특별히 나기 때문에 수양하는 사람들은 꺼린다. 즙을 내어 먹거나 김치를 담가 먹어도 좋다.
부추씨(구채자)
성질이 따뜻하다. 꿈을 꾸거나 소변을 볼 때 정액이 나오는 것을 치료하는데,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고 양기를 세게 한다. 자신도 모르게 정액이 나오는 것을 치료하는데 아주 좋다. 약으로 쓸 때는 살짝 볶아서 쓴다.
부추는 성질이 따뜻한 채소입니다. 가슴에 뭉쳐있는 혈을 풀어헤쳐서 답답하고 통증이 있는 증상에 도움이 되고, 아래로 내려가 간장과 신장의 기운을 도와 허리와 무릎이 시리고 아픈 증상에 도움을 줍니다. 신장의 기운을 돕는 것은 부추보다는 부추씨가 더 강한데, 이로 인해서 허리와 무릎이 아프고 정액이 새는 것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수양하는 사람들이 부추처럼 향이 강한 채소를 꺼리는 것은 기운을 동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추는 특히 여름에 좋은 채소입니다. 여름에는 차가운 음식이나 상한 음식 때문에 위장에 탈이 나기 쉬운데 이럴 때 부추를 잘게 썰어 넣고 흰죽을 쑤어 먹으면 회복이 빠릅니다.
또한 전통적으로 부추는 금속에 다쳤을 때 쓰였습니다. 전쟁터에서 온갖 무기에 다친 상처에도 부추를 찧어 붙였다 하고, 바늘 같은 금속을 삼켰을 때도 부추를 먹으면 부추가 금속을 칭칭 감고 나온다고도 합니다. 칼에 베였을 때나 동전을 삼켰을 때 쓸 만합니다.
부추는 생존력도 강하고, 한 번 심으면 여러 해 동안 거둘 수 있습니다. 텃밭이 아니더라도 작은 상자에 심어 키우면 건강한 먹을거리로 때로는 귀한 약재로 쓰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