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업 후기(3)
음악 속 화자를 주제로 한 글쓰기 수업에서 김광진의 <편지>를 오랜만에 다시 들었다. 수업을 이끄는 작가님은 요즘 노래로 이하이의 <한숨>을, 옛날 노래로 김광진의 <편지>를 골라오셨다. 하지만 놀랍게도 옛날 노래인 김광진의 '편지'를 처음 듣는다는 수강생들이 많았다. 오히려 처음 들었기 때문에 더 집중하고 선입견 없이 노래를 하는 화자에 집중하셨던 것 같다.
이 노래는 오래전 나의 '가을' CD에 들어있던 곡이다. 한창 CD에 음악을 구워 선물하는 것이 유행이던 때에 '가을'이라는 제목으로 20여 곡을 담아 주변 친구들에게도 나눠 줬었다. 윤상과 김동률이 함께 부른 <When October Goes>의 라이브를 첫 곡으로 하여, 윤동주의 '편지'라는 시에 곡을 붙여 안치환이 부른 <편지>, 김광진의 <편지>, 김민기의 <가을편지>,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등이 수록된 나름 나만의 명반이었다. 가을이 되면 차에서 항상 그 CD를 들었었다. 그렇게 가을의 분위기에 젖어 김광진의 <편지>를 들을 때는 사실 가사에 깊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가사를 살피며 노래를 보다 보니 다른 것이 보였다.
그것은..... 찌질남이었다.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스르려 했고, 상대방이 기나긴 침묵의 시간 동안에도 사랑이라 말하며 마음을 놓지 않았던 남자로 보였다. 그대 있음에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을 감사한다고 했지만, 그 힘겨운 날들에 더 힘들었을 원치 않는 열렬한 구애를 받았을 '그대'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요즘은 10번 찍으면 안 넘어가는 여자가 없다면 거절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도끼질을 해대는 일은 스토킹일 뿐이다.
그런데 이 노래의 사연을 알고 나니... 정말 화자는 도끼질을 하던 남자였다. 이 노래의 작사가는 김광진의 아내인 허승경이다. 허승경이 쓴 가사는 한 통의 편지를 다듬은 것이라고 한다. 그녀가 김광진을 사귀고 있을 때 김광진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부모님이 억지로 선을 보게 한다. 선을 본 남자는 허승경에게 구애를 했지만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그 남자는 이별을 고하는 편지를 보내고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그 편지의 내용을 다듬어 <편지>라는 노래가 된 것이었다.
이 사연을 알고 나니 그 남자보다 그 편지로 작사를 한 아내의 가사에 곡을 붙여 직접 노래를 부른 김광진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려본 노래 속의 화자는 '장수생'이었다. 재능은 없지만 좋아한다는 이유로 어떤 일을 오랫동안 '준비'하던 사람이다. 분명 그 일은 나의 일이 아님을 알지만 해왔던 일이기에, 그 일 외에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실패를 겪고 나면 다시 다음을 관성적으로 준비해서 재수가 삼수로, 사수로, 그리고 장수로 이어져 버린 사람이다.
될 듯, 조금만 하면 이번엔 정말 될 듯하여 어떤 일을 늘 해왔던 대로 '준비'만 했던 그 사람은 끝내 '기나긴 그대 침묵은 이별로 받아 두겠소'라며 그 일을 접는다. 그래도 기나긴 청춘의 시간 동안 그 꿈이 있었기에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을 감사한다고 말하며 끝을 말한다.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 않으리라, 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며 가까스로 손 끝으로 잡았던 그 꿈의 치맛자락을 놓는다.
그런 화자를 생각하며 노래를 들으니 처연하지만 결연한 노랫말이다. 그저 사랑했던 마음만 가져가겠다고 말하는 화자의 마음은 그 오랜 시간에 대한 후회보다는 드디어 미련을 놓은 후련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가을 저녁, 글쓰기 수업에서 조용히 낯선 사람들과 함께 듣는 이 노래는 익숙한 듯 생경했다. 같은 노래를 듣고 있지만 모두 다른 노래를 듣고 있었다. 각자의 경험과 만난 그 노래는 다르게 읽혔고 다르게 그려졌다. 단조로운 피아노 선율 위에 덤덤한 목소리로 부른 그 노래는 풍성한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되어 웅장해졌다. 여럿이 함께 읽고 듣고 나누는 일은 늘 뜻밖의 이야기가 있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