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갈, 동생, 아빠
꿈을 꿨다. 잠에서 깼다. 깨고 나서도 꿈결의 감각이 남아 다시 잠이 들지 못했다.
성충이 된 사슴벌레 사이에 커다란 전갈이 한 마리 있다. 나는 그것을 다른 통에 옮기려고 했고, 옆에 있던 동생이 집게도 아니고 맨 손으로 시커먼 전갈의 몸통을 잡았다. 전갈은 (이상하게도 꿈속의 전갈은 사슴벌레 턱 모양의 집게를 가지고 있었다.) 집게를 벌려 동생의 엄지를 파고들었다. 동생은 "빨리.. 아빠.."라고 말했고, 나는 동생의 엄지에 박힌 전갈의 집게 한쪽을 손으로 잡아 뜯었다. 그 순간 전갈의 독침이 나의 손등을 파고들며 치과에서 마취를 할 때 느껴지는 둔중한 마비의 감각이 손등에 전해졌다. 동생은 나머지 한쪽 집게가 엄지에 박힌 채 아빠를 찾아갔다. 내 손등에 전갈은 여전히 독침을 박고 있었다.
깨고 나서도 오른쪽 손등에 마비의 감각과 전갈이 내 몸에 닿을 때의 섬뜩함이 잠시 남아 있었다. 마비가 아니라 각성이 짧은 순간 온몸에 퍼졌고 잠에서 완전히 깨끗하게 깼다.
오랜만에 깨고 나서도 서사가 기억에 남는 꿈이라서 기록을 남겨 둔다.
꿈의 연결고리 1_동생
오늘 낮에 동생을 카페에서 만났다. 평소에 좋아하던 카페였다. 동생은 다른 곳에서는 항상 아메리카노지만 그곳에선 라테를 마셨다. 그런데 오늘의 라테는 찌그러진 하트에 우유에 힘이 없다. 지난번에 왔을 때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고 있던 직원이 만들어 준 라테였다. 한 모금 마셔 보더니, 나에게 맛을 보라고 했다. 평소라면 우유의 고소함과 진한 커피 향이 느껴져야 할 그 카페의 라테인데 뭐가 밍밍하고 우유 거품의 쫀득함이 부족했다. 머그에 가득 담긴 커피를 항상 식기 전에 다 마시는 동생이 라테를 남겼다. 그리고 알뜰살뜰 남은 라테를 텀블러에 옮겨 담았다.
꿈의 연결고리 2_사슴벌레 혹은 장수풍뎅이
지난여름 키웠던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가 알을 낳았다. 하지만 우리가 발견한 것은 알이 아닌 유충이었다. 한창 유튜브로 곤충 사육에 대한 영상을 보던 아이는 '유충 사육통'에 유충을 한 마리씩 넣어야 한다고 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플라스틱 유충통을 사서 한 마리씩 넣었다. 집에 놀러 온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하나씩 나눠주다 보니 12개였던 사육통은 4개로 줄어들었다.
며칠 전 유충통을 들여다보았다. 번데기가 되려는지 유충통 바깥 면에 방을 만드는 듯한 유충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 다시 유충통을 살펴보았는데 바깥 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꿈의 연결고리 3_아빠
아빠가 동생네 동네에 있는 00 의원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서 비뇨기과를 찾아 그곳에 간 것이라고 한다. 아빠는 스마트폰으로 검색할 줄도 모르고, 새로 산 전기 트럭에는 내비게이션도 장착되어 있지만 쓸 줄 모른다. 집과 과수원, 농협, 혈압약을 받으러 가는 옆동네 00 의원, 가끔씩 다니는 옆옆 동네 오일시장에 갈 때 외에는 운전을 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가거나 같은 곳에 가는 사람의 차를 함께 타고 다닌다.
한 번은 동생네 집에 내 차를 타고 함께 간 적이 있는데, 아빠가 평소에 다니던 길이 아닌 곳으로 가자 화를 내셨다. 겨우 동생네 집에 가는 길을 익혔는데 나 때문에 헷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아빠가 그 동네 00 의원에 그것도 비뇨기과를 찾아갔다니 너무나 놀랍다. 그 동네 사는 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찾아가셨단다. 동생이 어떻게 00 의원을 비뇨기과로 알고 찾아갈 수 있는지 너무 희한해서 00 의원에 가 보았는데 정말 간판 옆에 진료과목에 '비뇨기과'가 적혀있다고 했다.
아빠는 00 의원을 차를 타고 찾아가서 진료를 받았으며, 돌아가는 길에는 길을 헤매다가 집 반대편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시내 운전이 익숙하지 않고 아주 천천히 시골에서 운전만 하던 아빠 주변을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이 얼마나 자주 빵빵 거렸을까?
아빠는 이 이야기를 동생에게 하며 다음번 진료에는 동생에게 부탁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