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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Mar 27. 2023

아이의 사회생활

“이기적인 게 뭐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갑자기 던진 물음이다. 아마 아이에게는 '갑자기'가 아닐 것이다. 터져버릴 것 같은 답답함과 억울함을 꼭꼭 담아 집까지 가져온 물음을 것이다.


“넌 이기적인 아이야.” 

친구가 던진 그 말이 마음에 박혔다고 했다. 무슨 뜻인지 알지는 못했지만 날카로운 그 말을 빼내지 못하고 가지고 온 것이다.


“걔는 개미도 죽였어. 환경을 파괴하는 아주 나쁜 아이야.”

몇 시간 전에 친구가 왜 그 말을 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물었지만 "몰라"로만 일관하던 아이가 갑자기 그 친구에 대한 기억들을 쏟아낸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과 심지어 작년에 있었던 일까지 꺼내 놓으며 친구를 흠집을 내려고 애쓴다. 그렇게 흠집을 내면 그 친구가 자신에게 던진 날카로운 말이 무뎌지기라고 할 것처럼 그렇게 애쓴다. 


아이가 애쓰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자신의 견딤을 전리품처럼 꺼내 놓으며 위로받고 위로하던 ‘사회생활’이 떠올랐다. 사회생활을 ‘잘’ 하기 위해 참아냈던 답답함과 억울함은 털어놓아야 할 상대방에게 가 닿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돌고 돌았다. 구천을 떠도는 영혼처럼 그 말들은 술자리 위를 둥둥 떠다니다가 그저 술잔에 꼭꼭 담길 뿐이었다. 


답답함과 억울함에 상대방의 흠결을 어떻게든 찾아내었다. 작은 돌멩이를 찾아 높은 탑을 만드는 그 정성으로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작지만 소중한(?) 흠결의 디테일들이 쌓여 탑을 이뤘다. 그리고 그 탑의 꼭대기에 '내일은 반드시'라는 돌멩이를 얹어보지만 하룻밤 술자리가 지나면 공든 탑은 반드시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술잔에 담은 그 마음들을 다시 마셔야만 했다. 


'내일은 반드시'라는 돌멩이는 다음날 아침 가장 아프게 내 뒤통수를 내려쳤다. 그 뒤로 와르르 무너지는 그날의 돌탑들은 괜한 부끄러움과 숙취가 되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술이 아니라 억지로 다시 삼켰던 그 마음들 때문에 독한 숙취에 시달렸다. 제정신으로 어제 하지 못했던 말들은 반드시를 약속했던 어제의 내일인 오늘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매일 돌을 쌓고 무너뜨리며 시간을 보냈고 그게 나의 사회생활이었다. 매번 돌만 쌓는 건 아니었으니까. 때로 그 돌틈으로 꽃도 피었고 맑은 물이 흐르는 시간들도 있었으니까.


아이의 그 질문이 왠지 속 시끄러운 '사회생활'의 시작인 것만 같다. 그저 사랑만 받았던 아이가 그렇게 사랑만 받았던 다른 아이들과 ‘사회생활’이라는 걸 하려나 보다. 


나도 '잘'하지 못했던 사회생활이니까 아마 아이도 그럴 것 같다. 괜히 다 아는 것처럼, 답이 있는 것처럼 쉽게 말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한다. 다짐은 했지만 나에게도 사회생활의 답은 없다. 내일은 오니까, 때로는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한다고 그 술자리에서 실패했던 위로를 속절없이 다시 아이에게 건넨다. 하나마나한 말 밖에 하지 못하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또 그 하나마나한 말들도 어떤 사람이 건네면 위로가 되기도 했다. 아이에게도 위로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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