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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Apr 11. 2023

나중에 보아서 미안해

정여민의 시 '꽃'에서 따온 제목입니다.

혼자 차를 타고 외출을 했습니다. 급하게 챙기느라 선크림도 바르지 못해서 빨간 불에 멈춰 섰을 때 선크림을 발랐습니다. 안경을 쓰고 선크림이 골고루 발렸는지 확인을 하며 선바이저를 내려 거울을 봤습니다. 조용한 혼자만이 공간에서 거울 속의 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자그마한 거울에는 얼굴이 다 담기지 않고 입가만 담겨 있었습니다.


탄력과 수분이 부족해 보이는 푹 꺼진 빰과 턱으로 이어지는 팔자 주름이 보였습니다. 넓어진 모공과 잔 주름들까지. 정말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의 모습을 보듯 거울이 보여주는 '나'를 만났습니다.


오랫동안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컴퓨터의 밀린 업데이트를 한꺼번에 하듯이 시간이 나의 몸에 일으킨 변화들을 실감합니다. 단순히 '늙었네'가 아니라 스스로 '나'에 대한 업데이트를 소홀히 해서 나의 몸이 어떤 모습인지 다른 누구보다 내가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당연하 '나'의 모습으로 알고 있을 그 모습을 정작 나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은 휴대폰이 보급되어 셀카를 찍기 시작했던 10년 전의 모습, 혹은 갖가지 보정 앱으로 찍었던 출산을 하기 전의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얼굴에 생긴 주름을 모르지 않았으며 넓어진 모공과 살이 빠진 두 뺨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알던 그 모습과는 또 달라진 내 모습. 누군가 시계태엽을 빨리 감기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알고 있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긴 시간의 간격을 내가 뛰어넘은 것만 같았습니다. 


내가 알던 내가 지금의 내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내가 짓는 표정도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건 아닌지 재차 거울을 살펴봅니다. 얼굴 근육에 힘을 주고 있지 않은데 일부러 애써 입술 끝을 내린 것 같은 나의 무표정이 보입니다. 가장 자주 보였을 나의 무심한 표정을 보며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나의 최근 표정을 나만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표정도, 자세도, 목소리도 조금씩 바뀐다고 하는데 그런 변화를 나만 모르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합니다.


나를 내가 좀 더 자세히 보아야겠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은 '바라보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꾸 그 사람의 모습을 눈으로 좇게 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중요한 방법도 자꾸 바라보고 살피며 현재의 나의 모습을 제대로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바라보며 나의 얼굴, 걸음걸이, 목소리, 말투, 표정을 살피고 정확히 아는 것. 내가 어떤 움직임을 할 수 있는지 몸을 굽히고 늘려보는 것. 나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 것. 여전히 나의 가능성에 대한 한계를 두지 않는 것.

그렇게 나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는 것이 청춘의 의미가 아닐까요? 사랑에 빠진 사람이 가지는 특유의 빛은 푸르른 청춘의 빛과 닮아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나는 빛 또한 청춘의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주름이 섭섭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그 주름을 이제야 보았다는 것이 섭섭합니다. 앞으로는 내가 더 자주 나를 보며 나를 사랑해 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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