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선자

이민진, [파친코]

by 연꽃 바람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민진의 인터뷰를 띄워줄 때가 있었다. 한국인의 얼굴을 한 유창한 영어를 하는 미국의 변호사 출신 소설가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그의 말들과 부드럽게 상대를 압도하는 단단한 태도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너무 화제가 되면 왠지 더 보기 싫어지는 마음 때문에 읽지 않았다가 긴 휴가를 맞아 드디어 [파친코]를 읽었다. 사나흘을 예상했지만 이틀 만에 읽었다. 잠이 나를 막지 않았다면 아마 밤새 읽었을 것 같다.


모자수에 이어 노아가, 끝끝내 솔로몬까지 파친코에서 일을 하게 되지만 제목이 지니는 '파친코'의 의미는 더 넓은 것 같다. 흔히 비유하는 인생은 '도박'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지만 그와도 미묘하게 다른 것 같다.


모자수가 파친코에서 일하는 장면을 보여줄 때, 파친코 기계를 교묘하게 조작하는 장면이 나온다. 삶에서도 가까이에서 볼 때는 묘하게 조금 틀어진 어떤 일이, 종국에는 어마어마한 사건의 결과로 이어질 때가 있다. 주인공 '선자'의 삶이 그러하다.


파친코에서 일을 하는 것은 모자수와 노아였지만 '인생'이라는 파친코에서 매번 롤러코스터를 타는 인물은 '선자'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오직 노아와 모자수를 위해 살았고, 그것이 선자의 유일한 삶의 이유이자 기쁨이었지만 그 모든 것을 결국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다가 숨이 멈칫했던 장면이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선자를 만난 직후 노아가 자살하는 장면이다. '노아가 죽었다.'라는 한 문장으로 노아는 서사에서 사라졌다. 모두의 불안한 예감을 애써 모른 척하며 조선인의 피이자, 고한수의 피를 감추고 겨우 겨우 살아가던 노아는 선자를 만남으로써 숨길 수 없음이 드러나자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삭제해 버린다.

노아의 결정도 충격이었지만, 소설가의 힘에 더 충격을 받았다. 이야기를 지어낸 인간의 권능이 놀랍다. '죽었다' 이전의 문장까지만 해도 펄떡펄떡 거리는 심장을 가지고 고뇌하던 주인공이 한 문장의 힘으로 사라져 버렸다. 사라져 버린 노아가 그리워서 다시 몇 페이지를 돌아가서 노아의 문장을 다시 읽어야 했다.


두 번째는 양진이 선자에게 "니 고생은 니가 자초한 기다", "(고한수는)참 나쁜 사람이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늘 묵묵하고 말이 없던 양진은 나이가 들어 드디어 노동과 보살핌으로부터 벗어나 보살핌의 대상이 되었을 때 참았던 말들을 쏟아낸다. 그 말들은 선자에게는 비수와 같은 말들이다.

선자를 어찌할꼬. 고한수는 선자의 심장을 처음으로 뛰게 했던 남자이자, 이삭이 죽고 나서 다시 만났을 때 선자가 다시 거울을 보게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다시 보지 않을 사람이기도 하지만, 이삭이 진 빚을 갚을 수 있게 했던 시계를 준 인물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양진을 다시 선자에게 데려다준 사람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선자의 일생동안 아버지를 빼고 선자를 돌봐 준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 존재를 부정하고, 그 모든 시간을 '고생'으로 그것도 선자가 자초한 고생으로 납작하게 눌러버리는 양진의 말은 그냥 글을 읽고 있을 뿐인데도 숨이 멈칫할 정도로 아팠다.


[파친코]에서 가장 마음이 무너지는 장면은 이삭의 무덤이 나오는 마지막 장면이다. 노아가 죽고 오랜만에 이삭의 무덤을 찾은 선자는 공동묘지 직원으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가족들을 떠나 신분을 숨기고 살던 때의 노아가 무덤을 자주 찾아왔다는 것이다. 노아와 모자수, 두 아들의 사진이 담긴 열쇠고리를 늘 지니고 있었던 선자는 두 아들이 언제나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던 것이다. 선자는 노아에게 속하지 못했다. 선자는 노아와 모자수의 사진이 담긴 열쇠고리를 이삭의 무덤가에 맨 손으로 구멍을 파서 묻어두고 묘지를 나선다.


[파친코]의 커다란 주제는 디아스포라, 경계인, 흩어지고 퍼지고 이동하고 유랑하는 것이다. 일본 내에 거주하는 조선사람을 북한 국적을 선택한 조센징과 남한 국적을 선택한 자이니치로 구분한다는 것도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그토록 섬세하고 철저하게 경계를 가르고 일본에도 한국에도 속하지 않고 흩어진 삶을 살았던 '선자'의 가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선자'라는 한 개인이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으므로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쓸쓸했다. 한수의 아내도 되지 못했고, 이삭의 아내로서의 시간도 짧았으며, 오직 노아와 모자수의 어머니로 살고자 했으나 노아에게 어머니로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선자 자신으로서의 삶에 대해서 [파친코]는 보여주지 않지만 홀로 의연히 오직 선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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