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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Mar 03. 2022

사랑보다 깊은 우정,
우정을 넘어선 사랑

  <브이 포 벤데타> <완벽한 타인> <시선으로부터> 우연히도 최근에 접한 이야기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동성애를 이야기하는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남아 전문 미술학원에 아이의 교육 상담을 받으러 다녀왔습니다. 상담을 하는 선생님께서 입고 있는 앞치마에는 커다랗게 "남자아이는 다르게 가르쳐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남자아이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교육기관이 생긴 것도 참 생소하지만 한 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긴 시간 베스트셀러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남자와 여자가 이토록 다르니 그들을 다루는 전문 지식도 다를 수 있음이 수긍이 가기도 합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지구라는 같은 행성에서 남녀가 만나 살고 있지만 원래는 화성과 금성이라는 전혀 다른 출신이라고 할 만큼 다르다며 어느 부분에서 얼마나 다른지를 다양한 상황을 통해 입증하고 공감을 얻었던 책이었습니다. 단순한 명제처럼 차이점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사례를 설명하는 책이었는데 지금 생각이 나는 건, 어떤 문제를 상대에게 하소연할 때 남자는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여자는 공감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남아 전문 미술학원에서 나눠준 소책자에는 "여자 아이는 예쁨 받기를 원하고, 남자아이는 인정받기를 원한다"라고 적혀 있더군요. 성이 구체적으로 발현되기 이전의 어린 시절에도 이렇게 확연하게 다른 욕구를 가지고 있다니 정말 다르긴 다른가 봅니다. 이런 남녀 가르기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생물학적으로 유전자가 다르며 구분되는 외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불현듯 든 생각은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동생애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로맨스라는 장르를 뛰어넘어 사랑보다 깊은 우정을 이야기하는 워맨스, 브로맨스라는 장르가 생긴 것도 그만큼 사람들이 동성 간의 끈끈한 감정 교류에 공감을 한다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사랑 보다 깊은 우정'에는 공감하면서 '우정에서 더 나아간 사랑'에는 몸서리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러시아의 음악가 차이코프스키는 '명예' 살인으로 불리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누구의 명예인지, 있는 존재를 없는 존재로 만들어 땅으로 돌아가게 하면 회복이 되는 명예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러시아는 동성애의 존재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국가이며 차이코프스크의 동성애를 불명예스럽게 여긴 동문들에 의해 자살 압박을 받았고, '비창'을 끝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이르게 할 만큼의 혐오와 몸서리가 동성애자를 향한다는 것이 의문입니다. 이성들끼리 벌어지는 강제 추행, 묻지마 살인, 데이트 폭행, 인신매매 보다 동성 간의 '사랑'에 더 크게 분노하고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이 세계에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들은 정상의 범주에 들지 못한 돌연변이이므로 그들을 이 세계에 두면 나머지 정상적인 사람들까지 오염될 수 있으니 그 돌연변이의 싹을 미리부터 없애야 한다는 것이라면 이러한 생각은 나치의 게르만 우월주의나 다름없습니다. 


  동질성과 동일성의 신화와 우월주의가 지난 세기에 인간을 얼마나 큰 위기에 몰아넣었는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동성애를 지지하거나 예찬하지는 않지만 인간은 다르며 다양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이 권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다는 '천부인권'의 민주주의의 전제입니다. 아직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대부분은 "너는 부당하니 우월한 권력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미개한 너를 공격하여 문명화하겠다"는 오만한 제국주의의 변주에 지나지 않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배운다고 말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던 실수를 오늘의 역사 또한 반복하고 있음에 마음이 아픕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열린 마음이 혐오와 전쟁을 이길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 아닐까요?


  미치도록 화가 날 때도 '그럴 수도 있다'를 스스로에게 한번 더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일을 만나게 되면 한 마디 욕설이나 짧은 분노가 아니라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행동'으로 집요하게 끝까지 분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수도 있다'로 아껴 두었던 마음의 에너지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를 만났을 때 아낌없이 쏟아 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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