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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Mar 28. 2022

(OAT-LY!)You won

  휴직을 결정하고 기다리면서 여러 가지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정말 원대해서 마음 속의 이 계획이 활자화 되는 것이 민망하고 두렵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가 '왜 안해?'라고 묻는다면 왜 할 수 없는지에 대한 궁색한 변명까지 동시에 떠올리고 있다. 더도 덜도 없이 어떠한 설명도 없이 그냥 써서 내 눈으로 활자화 된, 더 이상 완전히 내 것이  아닌 그 계획들과 선 긋기를 하고 싶다. 일단 선을 좀 긋고 거리를 두면서, 백이진이 말했던 불가원 불가근의 마음으로 그 계획들과 마주보기를 해야겠다. 그리고 나아갈지 멈출지 미룰지 두고 볼 일이다.


1. 비건

2. 매일 글 쓰기

3. 매일 책읽기

4. 놀이터 쓰레기 줍기


  어제 처음으로 zoom 독서 모임을 했다. 거기서 처음 만난 류경희선생님께서 신영복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아무리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뜨겁게 끓어 오랐던 생각이나 결심들도 발로 실천하기는 멀고 멀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이고, 그 보다 더 멀고 깊은 공부는 가슴에서 발까지이다


 2. 매일 글 쓰기는 작심 3일은 넘겼지만 무너짐의 속도가 다시 작심의 속도를 넘어서서 기세가 꺾인 상태.

 3. 매일 책 읽기는 독서 인증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인증을 하지 않는 주말에는 흐지부지한 상태.

 4. 놀이터 쓰레기 줍기는 놀이터에 어르신 지킴이가 있는 것을 알게 되어 괜히 내가 나서면 그 분들의 편안한 일자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꼴이 될까 두려워 시작도 못한 상태. 다이소에서 가장 긴 집게도 사 두었으나 한번도 실천하지 못한 상태.


  1. 그리고 가장 쓸쓸한 나의 다짐, 비건.

  내가 좋아하는 많은 책들과 작가들의 삶 속에는 이미 들어차 있는 비건. 나도 지구라는 곳에 태어나 나와 같은 시작을 가지고 있는 포유류와 조류를 먹지 않고 싶었다. 포식자의 삶을 버리고 싶었다. 인류가 영리하게 가꿔온 찬란한 과학 문명에는 포식자의 삶을 버리고도 윤택하게 살 수 있는 답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그 삶은 버리고 나처럼 걷고 뛰고 숨쉬고 새끼를 낳아 정성껏 기르고 세대를 이어가는 동물들을 먹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식탁에 오르기 위해 전 생애를 불행하고 생명이 아닌 먹거리로 태어나고 길러지고 죽어야 하는 그 동물들과 연대하고 싶었다. 이 모든 문장들은 현재의 나에게는 과거형이다. 


  비건에 대한 몇 가지 간편한 시도가 있었다. 먼저 나의 사랑 카페라떼에서 라떼를 빼는 일이다. 라떼 대신 귀리음료를 넣어서 먹는 것이다. 마침 마트에서 적당한 음료를 발견했다. 



축하합니다. 
당신이 이겼어요.
마시는 복권 
절대 제목을 믿지 마세요. 그 제목은 당신을 유혹하고 당신에게 희망을 주지요. 언제나 너무 긍정적이에요. 어쨌든 귀리는 맛이 좋죠.
이걸 마실 때마다 당신은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지구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겁니다. 마치 마시는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요! 이건 너무 긍정적인가요?





  이 음료를 넣어 카페라떼를 마셨다. 맛은 다소 밍밍했고, 아무리 거품을 내려 해도 거품이 나지 않았다. 그 이후 귀리음료를 넣은 두 번째 라떼는 없었다. 오늘 이 음료를 마시다가 이 문구를 살펴보게 되었다. 당신이 이겼다고 하지만 나는 이 음료를 마실 때 약간의 열패감이 들었다. 미안해, 내가 나를 이기지 못했어. 하지만 다시 도전할 거야. 두 번째 시도는 카페라떼가 아니라 좀 더 근사한 걸로 해볼게. 기다려, 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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