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집착왕

아니, 원래 안 그러셨잖아요

by 신호사


월요일에 전화가 왔었다. 엄마였다. 엄만 그날이 유일하게 쉬는 날이라, 나랑 같이 마트에 가고 싶었던 거 같다. 근데 내가 할 일을 미리 해놓지 못해 가지고. 선뜻 같이 가자 할 수가 없었다. 12시쯤 걸려 온 전화였으니, 만나면 밥을 먹어야 할 테구 먹고 나서야 장을 보기 시작할 테구 또 장을 보고 나면 엄마 혼자 못 들고 가니까 내가 집까지 바래다줘야 할 테구. 넉넉 잡아 네 시간 정도가 걸릴 거 같았다. 그 시간이면 내가 할 일을 다 해치울 수 있을 거 같아서. 못 가겠다고 했다. 그래 놓고도 마음이 영 편치가 않았다. 그냥, 태생이 그렇다. 거절을 잘 못하겠다. 그렇다고 엄마가 단박에 으이구, 딸자식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네, 하고 죽도록 후회하진 않겠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서운할 거 같아서. 전화를 끊고 나서야, 다음 주 월요일에 꼭 같아 가자고, 그때까지 혼자 마트 가지 말라고, 그렇게 메시지를 남겨두었다.

화요일에도 전화가 왔다. 저녁에 고기를 구워 먹을 거니까 올라오라고. 엄마는 여전히 내가 집 바로 밑에 층 정도에 사는 것 같나 보다. 여전히 일은 못 끝냈지만, 어제 거절한 전적이 있어서, 그러겠노라 했다. 밥이야 어차피 먹어야 되는 거고, 그래도 식사는 넉넉 잡아 두 시간이면 끝날 테니까. 아빠 퇴근 시간에 맞춰, 삼십 분 정도 일찍 집에 갔다. 냄비 안에선 고추장 불고기가 지글지글 잘 익어가고 있었다. 상을 차리고 앉으니 아빠가 시간 맞춰 오더라. 별로 오랜만이랄 것도 없었지만, 고기는 맛있었다. 아빠는 희한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소맥을 말더라구. 평소보다 말도 많았고, 식사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쉽사리 뜨지 않았다. 콜라를 마시라며 캔을 내밀었고, 엄마에게도 몇 번 쓰지 않던 존댓말을 쓰기도 했다. 그 낯설고 이질적인 분위기가 생경했다. 드디어. 언젠가 그토록 바랐던. 집 나간 자식이 된 기분이었다.

수요일에는 내가 전화를 했다. 자취방에 소파를 들이고 싶어서 내내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앉아서 TV 보는 시간보다는 컴퓨터 두드릴 시간이 더 많을 거 같아서. 장고 끝에 집에 있던 책상과 엄청난 크기의 게이머용 의자를 가져오기로 했다. 아빠가 점심 먹으러 오는 시간에 맞춰 집에 갔다. 이미 책상과 의자는 어느 정도 분리가 된 상태였다. 아빠는 책상을, 나는 의자를, 엄마는 구스 이불을. 셋이 줄줄줄 짐을 들고 자취방으로 향했다. 나 혼자 조립할 땐 시간이 꽤 걸렸던 거 같은데. 아빠가 있으니 후루룩 완성되더라. 왜냐하면, 아빠는 전동드릴이 있으니까. 역시 장비빨이 최고야. 아빠는 쿨하게 일터로 돌아갔고, 엄마는 완성된 의자에 앉아서 배가 고프다 했다. 그 얘길 들으니 나도 배가 고파가지구, 같이 외식도 하고 시장도 들르기로 했다.

메뉴는 코다리찜이었다. 엄마와 엄마의 친구들은 코다리찜 마니아다. 도장깨기 수준으로 인근 코다리 집을 모두 섭렵한 프로 중의 프로. 그럴 때마다 우리나라에서 명태 씨가 마른 건, 죄다 엄마랑 엄마 친구들 때문이라고 깝죽거렸는데. 씨를 말려버릴 만하더라. 맛있었다. 쫄깃하고, 짭짤하고, 찬으로 나온 음식들도 죄 훌륭했다. 물론 계산은 엄마가 했다. 히히. 부른 배를 통통 튕겨대며 시장으로 갔다. 뭐 살 게 있느냐 물었더니, 김을 살 거라 했다. 그렇다. 그거 하나 사러 시장까지 온 거다. 자의식 과잉처럼 들리겠지만, 엄마는 그냥 나랑 시장이 오고 싶었을 거다. 왜? 난 웃기니까. 삼보 일 웃음 주는 엄마만의 개그맨이니까. 엄마가 친구랑 점 보고 온 얘기, 여자 친구와 동업하는 어느 엄친아의 독립 성공 유무, 따위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나누며 장보기를 마쳤다. 내가 얻은 콩고물은 옥수수빵. 엄마는 이게 참 맛있단 얘기를 들었다며 세 개를 사더라. 게 중 한 개가 내 거. 아직도 책상 위에 있다. 사흘 내내 먹었는데 줄 지를 않는다. 네가 조금만 달았더라도, 이렇게 볼품없이 내버려져 있진 않았을 텐데. 엄마 입맛엔 참 맛있었을 거다. 나는 별로. 응.

목요일에도 전화가 왔다. 또 엄마였다. 베갯잇을 가져다줄까, 하는 전화였는데. 그쯤 되니 기가 막혀가지고, 헛웃음이 나오더라. 엄마. 제발 그만해. 우리 그저께도 보고 어제도 봤잖아.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물론 이렇게는 말 못하구. 그냥, 다음에 내가 가지러 가겠다구. 오지 말라구. 나 일 있다구.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일이 있기도 했고.

금요일에 만난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했다. 엄마가 자꾸 내게 전화를 하고, 만나려 한다. 근데 막상 만나면 그다지 내게 집착하는 일 없이, 평소처럼 다른 사람과 전화하기 일쑤라고. 이게 관심인지 무관심인지 헷갈린다 그랬더니, 친구 하나가 그렇게 대답해주더라. 엄마는 그냥 네가 당신의 시야 안에 있어야 마음이 편한 거라고. 시야 안에만 있으면, 네가 춤을 추던 물구나무를 서던 별 상관 안 할 거라구. 그렇게 말하는 친구도 살아 평생 엄마와 같이 살아온 놈이라, 거기 있던 놈들 모두 와르르 웃었다. 엄마의 애정은 단순하지만, 영 이해하기 어렵다. 이래 놓고 오늘은 전화가 없으니까 좀 허전하네. 이걸 노린 거라면, 성공.

날이 추워졌다. 집에서 가져와야 할 것들이 또 열 가지가 넘어가고 있다. 이 놈의 이사, 한 세 달이면 끝나려나. 원룸 난방은 처음이라, 난 분명 틀었는데 방이 따뜻해지질 않는다. 18도에서 20도 정도가 적정 온도라는데, 23도로 해놔도 냉골 오져. 가스비 폭탄 무서워서 일단 참고 있는데 조만간 입 돌아가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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