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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예슬 Dec 23. 2018

나의 이미지

아산서원 준비과정 (1): 자기소개서와 진로계획서

나는 아산서원 제13기 원생이다. 올해 초 아산서원 최종합격 소식을 듣고 신나서 방방 뛰던 게 엊그제같은데, 벌써 서원 생활은 막바지에 다다랐다. 인문교육 1, 2학기를 끝냈고, 워싱턴으로 인턴십도 다녀왔다. 두 달 뒤면 우리는 이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이제서야 내가 자기소개서 및 진로계획서를 작성하고, 1차 및 최종 면접을 준비한 과정을 공유하려 한다. 이번 편에선 자기소개서와 진로계획서를, 다음 편에선 면접을 다룰 것이다.


너무 늦은 후기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혹시 질문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시길.




정말 정말 중요한 자기소개서와 진로계획서

대학을 정시로 들어온 나에겐 자소서 포비아가 있었다. 모든 수시생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도대체 자소서는 어떻게 쓰는 거지? 어떻게 해야 나를 상대에게 잘 소개할 수 있는 거지? 무뚝뚝한 나는 나를 뽑아달라고 애원하는 글을 쓰는 게 오그라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뽑혀야 하니 쓰는 수 밖에.


자기소개서와 진로계획서를 쓰는 과정은 정말 고통스럽다. 자랑할 것도 별로 없는데 자랑은 해야겠고, 없는 것을 자꾸 만들어내려니 고달파진다. 이 욕심 때문에 나는 제12기 원생 선발에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욕심만 있고 전략이 없었다. 어찌 어찌 운이 좋아서 최종 면접까지 갈 수 있었지만, 자기소개서와 진로계획서라는 기반이 튼튼하지 않았던 나는 결국 떨어졌다. (아... 나는 정시생이라 그래...라는 합리화를....)


자기소개서와 진로계획서는 정말X10000000000 중요하다. 지원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이나 겪어본 사람으로서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이 두 편의 글은 서류 심사를 거쳐 1차 국어 면접과 최종 면접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여러분을 따라다닐 것이다.



나의 이미지

나는 제13기 지원을 준비하면서 '나의 이미지'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나를 합격시키도록 아산서원을 설득할 수 있는 이미지 말이다. 일단 전달하고 싶은 내 이미지를 찾았다. 그리고는 그 이미지가 내 글을 통해 충분히 자세히 훤히 그려지는지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사실 자신의 이미지가 잘 그려지도록 자기소개서와 진로계획서를 작성하라는 조언은 제12기 입학 설명회에서 제11기 선배님께 들은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떨어지고 나서야 그 참의미를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정말 핵심이었는데...)



마인드맵 그리기

1. 우선 '아산서원'과 '한예슬'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내 활동과 관심사, 아산서원이 내게 줄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마인드맵을 그렸다. 아주 작은, 구체적인 일들도 다 적으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스스로 나에 대한 이미지가 훤해졌다. 아 나는 이렇게 보여질 수 있는 사람이구나.


2. 마인드맵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다고 생각한 부분을 발견하면 파란색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이 파란색 동그라미들을 바탕으로 내 자기소개서와 진로계획서의 얼개를 짜기 시작했다. 진짜이기도 가상이기도 한 '한예슬의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의 시작이다.


내가 그린 마인드맵



자기소개서와 진로계획서의 본질

나는 자기소개서와 진로계획서도 결국 각각 한 편의 글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 모두 새내기 기초 글쓰기 시간에 배우지 않았나. 한 편의 글에는 그 글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 혹은 주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기소개서에선 '내가 아산서원에 필요한 이유'가, 진로계획서에선 '내가 아산서원이 필요한 이유'가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두괄식으로 쓰는 것을 잊지 않으려 했다.



자기소개서

자기소개서에선 '내가 아산서원에 필요한 이유', 즉 내가 매력적인 지원자임이 드러나야 한다. 나는 내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다양한 면모가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다. 마인드맵의 '다양한 경험' 파트에서 힌트를 얻었다.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
➔ 아산서원 인문교육을 잘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다고 주장했다.

나만의 시선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 설명회에 가서 들은 원장님의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아산서원은 자기만의 생각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만의 시선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더 넓은 세상을 만났을 때 더 큰 생각을 하는 사람
➔ 마지막으로 해외 인턴십을 잘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 교환학생 때의 일화들을 모아 더 넓은 세상을 만났을 때 더 큰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내가 작성한 자기소개서다.

저는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입니다. 지난 11월 외교부가 주최한 ‘한∙일∙중 3국 협력 논문경진대회’에 참가한 것도 한∙일∙중 관계 속 한국의 역할에 대해 직접 탐구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간 협력은 정치∙안보∙역사 분야에서 3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바람에 그 이익이 명백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팀원들은 구체적이고 제한된 범위의 하위정치 이슈이면서도 협력의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수산자원’ 분야에서의 협력을 제안했습니다. 저는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 개념을 통해 3국이 협력하지 않는다면 갈치나 오징어, 멸치와 같은 3국 경계왕래성 수산자원이 고갈될 수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동북아 무대에서의 한국의 위치를 냉철하게 판단해보는 기회였으며, 우수상이라는 좋은 성적도 거뒀습니다.

저는 저만의 시선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미래의 언론인으로서 제가 다른 언론인과 차별화될 수 있는 지점은 문제를 포착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데 있어 드러날 저만의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해, 각국의 대학팀이 ‘지속가능한 주거환경’을 위해 고민한 아이디어를 3분짜리 동영상에 담는 ‘Global Ingenuity Challenge’ 대회에 참가한 것은 저만의 시선과 문제의식을 찾기 위한 하나의 연습 과정이었습니다. 저와 팀원들은 현재 한국 내 1인 가구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그들의 불편함을 해소할 방법이 미비한 점을 문제로 꼽았습니다. 저는 1인 가구의 경우 스스로 자신의 주거 환경 전체를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어 자원 낭비의 문제를 낳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에너지 사용량을 체크해 자원 낭비와 노인의 고독사를 막는 종합적인 시스템’을 고안하는 데 핵심 아이디어가 되었습니다. 미국 코네티컷 대학팀과의 공동우승을 통해 아이디어의 진가를 인정받아 뿌듯했습니다.

저는 더 넓은 세상을 만났을 때 더 큰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스웨덴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는 동안, 한 학기 내내 전공이 아닌 국제법을 공부하고 세계 각국의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고민하던 문제의 차원이 확장되었습니다. 가상의 UN 안보리 결의안을 작성해보고, ‘테러와의 전쟁’의 법적인 쟁점에 대한 레포트를 써보고, 모의법정에서 스리랑카 정부군의 반인륜적 범죄를 변호해보면서 세계의 문제를 제 가까이의 문제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성소수자와 채식주의자인 친구들이 생겼고, 그들이 목소리를 내는 의제들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국제적인 이슈를 접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하자 제 관심사는 한국의 경계를 넘어 국제적으로 넓어졌습니다. 이는 아산서원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 교육과 해외 인턴십 경험, 그리고 아산서원 동기들과의 생활이 제 환경을 채우게 되었을 때, 제가 사람과 사회에 대해 얼마나 더 깊고 넓은 사고를 하게될 지 궁금합니다.



진로계획서

진로계획서에선 '내가 아산서원이 필요한 이유', 즉 지원동기가 드러나야 한다. 나는 내가 충분히 능력이 있는 사람인데 딱 '요만큼'이 부족한 걸 느꼈고 그걸 감사하게도 아산서원에서 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주장하려고 했다. 너무 잘난 체하면 안 된다. 그럼 아산서원에 올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 않나. 딱 '요만큼'만 부족하다고 말해야 한다. 다음과 같이 개요를 짰다.

언론인이 되고 싶다.

언론인의 주요 자질은 생각하는 힘과 언론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하는 힘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언론 능력은 소통을 통해 길러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아산서원에 온다면 그 생각하는 힘과 언론 능력을 더욱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은 내가 작성한 진로계획서다.

저는 말과 글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언론인이 되고 싶습니다. 말과 글에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언론인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자질은 생각하는 힘과 언론 능력입니다. 언론인은 자기만의 생각과 시선으로 사회 문제를 포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불의의 순간, 자신의 신념에 따라 그것이 정의롭지 않음을 바르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생각의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언론인은 자신의 말과 글을 통해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미래의 언론인을 꿈꾸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람과 사회를 깊이있게 이해하고, 제 말과 글을 이용해 소통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잠시간 스웨덴 사회를 경험해봤던 교환학생 생활은 제게 역으로 한국 사회를 돌이켜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스웨덴 영화제에 자원하여 봉사자로 일하던 때에, 이제 막 경제전문지에서 은퇴한 스웨덴 아저씨와 우연히 친구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은퇴 이후의 삶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자신의 건강만이 유일한 걱정이라던 그의 대답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의 나라를 단단히 믿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만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 사이에도 신뢰가 필요한 것임을 깨달았고, 한국인과 한국 사이의 신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발달장애인과 함께 텃밭을 가꾸는 봉사를 하면서, 저는 적절한 소통의 방식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제가 도와주거나 알려주려고 의도한 것이 제 발달장애인 짝꿍에게는 훈계나 위협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소통에 불편을 겪고 있지만 소통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영화평론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학벌 블라인드제’나 ‘폭염의 법경제학’, ‘예테보리 여행기’와 같은 주제로 블로그에 에세이를 쓰면서는 제 말과 글에 대한 피드백을 직접 받아보기도 했습니다. 댓글과 방문자 수 통계를 통해 제가 어떤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어떤 주제에 흥미를 가지는지 파악하고, 부족한 부분은 개선해 나갔습니다.

저는 언론인의 자질인 생각하는 힘과 언론 능력을 기르는 데에 아산서원에서의 인문학 교육과 해외 인턴십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철학, 문학, 사회 및 문화를 종합적이고 심도있게 공부하며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키우고 싶습니다. 교수진 및 동기들과 교류하고 일상에서 토론을 이어가며 말하기와 글쓰기 역량 또한 키우겠습니다. 생각의 기준점이 다를 동기들과의 대화를 통해 사고의 지평을 더욱 넓히고 싶습니다. 워싱턴에서 인턴으로 지내면서 현재 한국의 위치는 어디인지,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냉철히 파악하고, 긍정적인 자극을 얻어 대담하게 큰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바른 언론인이 되어 세상을 행복하게 바꾸는 데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겸손하면서도 단단한 자신감

자소서 포비아가 있는 나는 여전히 자기소개서를 또 쓸 생각을 하면 어렵고 막막하다. 그러나 아산서원 서류를 준비하며 한 줄기 빛이 되어준 것은 '나의 이미지'에 대한 끝없는 환기였다. (그 한 줄기 빛을 빼고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다시 하기 싫어....)


개요를 짜는 과정에서는 '나는 나의 여러 면모 가운데 어떤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은가?', 자기소개서와 진로계획서를 다 작성한 뒤 다시 읽어보는 과정에서는 '이 두 편의 글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훤히, 구체적으로 그려지는가?'하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이 두 질문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답을 찾았다면, 여러분은 자신감을 가지셔도 좋다. 겸손하면서도 단단한 자신감은 다음 두 차례의 면접 과정을 견뎌내는 데 꼭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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