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본 영화와
너와 같이 걷던 길과
우리가 함께 지나온 시간이 여기에 있다.
우리가 함께였을 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생활하며
나는 어쩌면 습관처럼 무심하게, 익숙한 나쁜 버릇처럼
너에 대해, 네가 다녀온 출장에 대해서 출장 이상의 의미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너의 여행과 여정과 여행담에 대해서 잘 묻지도, 어쩌면 주의깊이 듣지도, 찍어온 사진을 꺼내보지도 않고 게으름을 방패 삼아서 무관심하게 너를 맞이했었다.
언젠가 같이 얘기하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과
장거리 비행으로 녹초가 된 너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을
반씩 섞어서 시차적응으로 뒤척일 며칠 간의 고단함을 생각하며 무사히 돌아온 너의 귀환을 마음속 깊이 감사하며 네가 떠나던 날부터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깊이 깊이 덮어두고 너의 손을 잡고 같이 먹을 저녁을 준비했었다.
누군가에게 그 마음이 들키는 게, 그 간절한 마음을 보이는 게 멍청하게 보일까 봐서. 그 마음이 들키면 누군가 내 간절함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그것의 파편에 손가락을 찔리게 될까봐, 지금처럼 눈물 흘릴 일을 애초부터 만들고 싶지 않아서, 숨기고 싶은 마음 밖으로 무심한 마음을 내세웠었다.
뭐가 잘못된 걸까. 왜 이제와 그 파편이 내 발 앞에 흩어져 있을까.
우리가 함께 온 시간이 부단히 짧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 무관심이 자리한 곳에서, 내 무관심으로 인해서 방임된 시간 안에서 너를 외롭게 둔 것 같아서, 이제와 그게 보이고, 그걸 볼 수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 시간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애달프고 애끓는 일이다.
이 눈물이 나를 위한 것인지, 너를 위한 것인지 생각한다.
내 얼굴을 바라보며, 내 눈을 들여다보며
미소 번지는 너의 얼굴을 내 눈에 가득 담으며
그 따뜻하고 가득 찬 기분으로 나는 너와 눈을 맞추었는데
너의 얼굴을 쓸며 네 얼굴의 온기를 매만지며
참, 다행이다. 네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나에게 네가 있다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누군가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안도했었는데,
이제는 너의 얼굴을, 나를 바라보던 너의 얼굴을 기억 속에서 되짚으며, 기억 속에서나 되짚으며, 기억 속에서라도 되짚으며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나는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