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피는봄 같은꽃,와틀처럼
멜버른은 지금까지 길고 짧은 락다운을 총 여섯 차례 지나오고 있다. 지금은 그 여섯 번째 락다운 기간으로 일주일로 예정되어 있지만 연장될지 여부는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다. 가장 길었던 작년 4개월의 락다운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무척 힘겨워했고 나도 당연히 그중에 하나였다. 당시 멜버른에서만 하루 7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호주 내의 다른 주에서는 빅토리아주 사람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앞다투어 주경계(state border)를 막았었다. 그리고는 확진자 수가 0을 찍고도 한참을 더 넘겨서 단계적으로 락다운이 완화되었으며 결국에는 해지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락다운이 해지되었다고 해서 바로 예전처럼 돌아가지는 못했다. 어느 정도 안심이 되고 익숙해지는데 다시 시간이 필요했다. 어쨌든 그때 호되게 겪었던 락다운의 영향인지 빅토리아주 사람들은 이제 비교적 락다운 수칙을 잘 지키는 편이다.
나도 확진자수가 5명 이상 늘어나서 10명에 가까워지면 조심하게 되고, 락다운이 시작되면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더 철저하게 위생 수칙을 지키려고 애쓴다. 게다가 변이 바이러스의 전염성이 훨씬 강하다고 하니 더 무서운 것이 사실이다. 요즘은 그래서 다시 집콕 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의 온라인 수업도 예전에 비해 많이 익숙해졌고 한두 번 겪는 락다운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시작되고 3-4일이 지나면 어김없이 가슴속에서 답답한 기운이 슬슬 용솟음친다. 나름대로 마인드 컨트롤을 해보려고 창문을 열고 환기도 하고 음악도 틀어보지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짜증스럽게 들리는 내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가끔은 락다운 기간에 선물 같은 훈훈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래서 또 세상은 살만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 나에게도 몇 번 일어났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랬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택배를 대신 받아주는 빌딩 매니저 오피스가 있는데, 그날은 주문한 아이 책이 도착해서 아침부터 아이와 둘이서 대충 잠바를 둘러쓰고 오피스로 내려갔다. 미국 사람들 못지않게 호주 사람들의 수다도 정말 알아줄 만한데, 오피스 직원도 한 수다하는 네팔 양반이다. 다행히 우리 아들이 또 한 수다하는 편이라 나는 별 말을 안 하고 있어도 둘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주고받는다. 아이가 코로나 때문에 아빠와 오래 못 봐서 너무 코로나가 싫다는 얘기를 하자, 그 직원도 자기 가족을 2-3년 동안 못 봤다며 그 심정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마지막에 아이에게 초콜릿을 좋아하냐고 물어봤고, 아이는 당연히 신난 얼굴로 ‘예쓰!’라고 대답했다. 언제 줄 거냐는 아이의 돌발스런 질문에 직원은 ‘쑨!’이라고 대충 얼버무렸고 나는 괜찮다고 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거의 반나절이 지나 늦은 점심을 먹고 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인터폰을 하지 않고 집 앞까지 와서 누가 문을 두드리는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보안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데 누굴까.. 하며 아들은 무섭다고 열지 말라고 했고, 나도 몇 번 망설이다가 살짝 문을 열었다. 그랬더니 글쎄 아까 그 직원이 초콜릿을 들고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날 우리가 먹은 키켓 바는 지금껏 먹어본 어떤 초콜릿보다 달콤했고, 우린 정말 감동이라며 맛있게 오후의 초콜릿을 음미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한밤의 기타 연주였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다가 맞은편 집을 보니 아기 아빠가 6개월 정도 된 아이 앞에 기타를 가지고 앉아 있었다. 참고로 우리 집이 있는 아파트 동은 디귿자로 되어있어서 맞은편에 다른 집이 보인다. 나는 지나가는 말로 아들에게 ‘앞집 아저씨도 기타를 치나 봐’ 했는데, 아들은 바로 베란다로 나가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앞집 아저씨도 나와서 손을 흔들었고, 아들은 들어와서 자기 기타를 가지고 다시 베란다로 나갔다. 아저씨도 기타를 들고 나오더니 칠 수 있는 곡이 있냐고, 한 소절씩 번갈아가며 쳐보자고 했다. 하지만 음정을 맞추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결국 기타 배운 지 몇 달 안 되는 우리 아들이 칠 수 있는 유일한 곡이 <반짝반짝 작은 별>이라 그 곡을 연주하기로 하고, 아저씨는 아이를 안고 ‘Twinkle Twinkle Little Star~’ 하며 노래를 천천히 따라 불렀다. 안고 있는 딸이 뭐라고 옹알이를 하자 딸도 같이 노래를 부르는 거라며 아들의 기를 살려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노래를 듣는 나는 내내 한없이 행복했다. 곡이 끝나자 우리는 다 같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겨울이라 베란다가 좀 쌀쌀했는데도, 어둑해진 밤에 울려 퍼진 작은 기타 소리와 자장가 소리는 답답했던 가슴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아기 아빠도 육아와 락다운에 지쳤을 텐데 잠시라도 위안이 되었기를 바랐다.
또 어느 날은 밖에서 백파이프 연주 소리가 들려서 무슨 일인가 하고 베란다에 나가보니, 루프탑 쪽에서 누군가가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을 하고 혼자 서서 백파이프를 연주하고 있었다. 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백파이프 소리와 스코틀랜드의 킬트 의상을 좋아했기에 무척 신나고 반가운 일이었다. 그래서 창문을 열고 서서 한참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적이 있다.
가족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사회적 동물임을 포기하고 집에서만 생활하게 되는 이 코로나 시대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기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온정을 가진 사람이기에 락다운이라는 상막하고 답답한 시기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로 누군가를 혹은 자신을 위로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들이 있기에 이 반복되는 코로나와 락다운을 그나마 버티게 되는 것 같다. 나도 어떤 순간에는 겨울에 피는 봄 같은 꽃 와틀처럼 누군가에게 밝은 위로가 되는 사람이기를, 코로나에 지치지 않고 늘 이렇게 깨어 있기를 잠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