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온라인이네요
처음 호주에 오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 동네 요가학원을 등록해서 다녀보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그동안 다사다난한 일들로 2년 가까이 미루어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내가 한국에서 요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한국에 처음 요가 붐이 일던 십여 년 전쯤에 1년 가까이해보았던 것이 요가를 가장 길게 한 것이고, 중간에 핫요가, 비크람 요가 등을 새로운 것이 나왔을 때 맛보기로 3개월 정도씩 해보다가, 마지막으로 호주에 오기 전 6개월 동안 회사에서 짬을 내어 빈야사 요가를 꾸역꾸역 했던 것이 전부이다.
어떤 것 한 가지를 오랫동안 쭉 해오는데 재주가 부족한 나는 그렇게 띄엄띄엄 요가에 기웃거리면서도 다른 어떤 운동보다 요가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운동이라고 늘 생각하곤 했다. 힘들어서 숨이 찰 일도 없고 격하게 뛰는 일 없이 제 자리에서 꿈질거리는 것이,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는 딱 맞는 것 같았다. 게다가 전체 요가 시간 중 처음과 끝 부분을 조금씩 잘라내서 명상에 할애하는 것도 맘에 들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과 중에서 한숨 길게 쉬면서 가만히 미간에 정신을 집중하는 그 작은 순간이 의외로 큰 쉼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러 요가 동작 중에서도 마지막에 온몸의 힘을 완전히 빼고 시체처럼 누워서 쉬는 사바 아사나 동작이 나는 제일 좋다. 하하. 내 온 몸이 땅에 딱 붙는 것 같은 그 묘한 느낌!
처음에 집 주변의 요가학원을 물색해보았으나 핫요가라서 그냥 스킵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하는 요가는 숨이 차서 도저히 명상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우연히 옆동네 요가 스튜디오를 알게 되었다. 하타요가, 인 요가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생소한 쿤달리니 요가, 소매틱 요가 등 프로그램이 무척 다양한 데다, 클래스별로 온라인 수업 옵션도 많았고 선택할 수 있는 시간대도 다양했다. 요가 뿐 아니라 각종 테라피와 마사지 프로그램도 같이 운영하는 곳이라 규모도 어느 정도 있었고 시스템이 잘 정착된 듯했다. 나는 처음 등록하면 한 달에 79불을 내고 무제한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어서 야심차게 등록했는데, 그다음 날부터 락다운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내내 수업을 듣게 되었다.
온라인 요가 수업이라 반신반의하면서 시작했는데 의외로 좋은 점도 있었다. 아침 일찍 요가복과 매트를 챙겨서 나가는 수고를 덜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고 내 집안 편안한 공간에서 선생님 화면만 딱 보고 따라 하는 것이 오히려 집중이 잘 되었다. 유튜브로 요가 채널을 틀어놓고 하려면 그렇게 게을러지는데, 이것은 실제로 사람들이 예약된 시간에 조인해서 함께한다는 사실 때문인지 수업에 잘 참여해야 한다는 약간의 의무감 같은 것이 생겼다.
한국에서의 요가학원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개인의 속도와 역량에 최대한 맞추도록 배려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줌(zoom)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보면, 특정 동작에 혼자 머물러 있거나 자세를 약간 다르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각자 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하세요’라는 얘기를 많이 하지만, 사실 어디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자세인지를 몰라서 끙끙대고 안간힘을 썼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서는 2~3단계 정도의 난이도로 자세를 알려주는데,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다들 각자의 페이스와 컨디션에 맞게 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마음이 놓이고 어느새 내 페이스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호주 사회 곳곳에서 느꼈지만 요가 학원에서도 외모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요가 학원뿐 아니라 유튜브로 요가를 가르치는 사람들 대부분이 경쟁하듯 외모에 엄청 신경을 쓰기 때문에 예쁜 요가복을 입은 훌륭한 몸매의 요가 강사를 보면 부러우면서도 범접할 수 없겠다는 느낌이 든다. 반면 호주의 요가 강사는 날씬하거나 예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요가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 헐렁한 티셔츠에 편안한 바지를 입고서 가르친다. 강사의 연령대도 다양해서 젊은 사람도 있지만 50대는 훌쩍 넘어 보이는 사람도 있다.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다. (남자 요가 샘이라니! 한국에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내 몸을 둘러싼 내면에 집중할 수 있으니 요가를 제대로 하는 느낌이 든다. 요가 동작 자체보다는 내 몸과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명상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점도 다른 것 같다. 어떤 강사는 마지막에 만트라를 읊기도 하고 또 다른 강사는 요가가 끝나면 타로카드를 한 장 뽑아서 그날 하루에 대한 좋은 얘기를 해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어색하게 다가왔지만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이상한 인도말 같은 샨티샨티 만트라도, 귀여운 타로카드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듯하다. 다른 요가 스튜디오에 가면 어떨지는 경험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경험한 멜버른의 요가 문화는 레스토랑이 현지 음식에 가까운 곳만 살아남듯이 원래 문화의 가치와 경험을 중요시하는 이들의 문화와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