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 마흔셋, 언제까지 제사 지낼 거야?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by 이작


열아홉 살 때까지 살았던 고향은 하루에 버스가 열 번도 채 다니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부락'이라는 용어가 여전히 살아 있을 정도면 얼마나 시골이었는지 짐작이 가실 거예요.

요즘은 서울에서 하루 일정으로 왔다 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바닷가를 중심으로 활발한 개발이 이뤄지고 있지만, 제가 나고 자란 마을은 바다와 먼, 내륙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오래전 시골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외형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고수하는 풍습도 예전 그대로인 게 많습니다.

저희 집은 1년에 제사를 무려 열세 번이나 지냈는데(명절 차례상 제외), 반드시 밤 12시에 집안의 모든 문을 열어놓고(영하 10도의 한 겨울에도, 조상님들이 편하게 들어와 제삿밥을 드시고 갈 수 있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아빠가 외아들인 탓에 열세 번의 제사 준비를 오로지 혼자서 해야 했던 엄마는, 며느리가 들어오면 절대로 이런 구시대적 유물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4대 독자인 남동생이 결혼을 하게 되면 어떻게 달라질지. 지켜봐야 알 것 같네요.


다행히 제 시댁은 제사와는 거리가 멀어 결혼 14년 동안 한 번도 제사상을 차려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 친정처럼 제사를 챙기는 집은 '부락'이라는 용어가 대부분'마을'이라는 고유어로 대체된 것처럼 사라지고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저희 엄마가 있었습니다.


친자매처럼 가깝게 지내는 작가 언니가 한 명 있습니다.

언니는 자신은 본 적도 없는 남편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제사를 왜 자신이 지내야 하는지, 화가 난다고 했습니다. 엄연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자식들이 살아 있는데, 자신의 시어머니가 지냈다고 해서 손자며느리인 자신이 그 제사를 받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자식들은 차려놓은 제사상에 절만 하고 손님처럼 사라진다고 합니다.


언니는 자신의 친정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재산을 모두 현금화 해, 부모님 기일마다 형제들끼리 모여 조금씩 나눠가질 거라고 했습니다.

돈을 받기 위해 억지로 참여할 때도 있겠지만, 일단 재산 때문에 형제간 다툼이 생길 일이 없을 테고, 부모님 제사가 부담이 아닌, 돈이 생기는 날이니 기분도 좋을 테고. 이보다 더 좋은 추모가 없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저는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했습니다.


아마,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 '의 심시선 여사도 좋은 생각이라고 칭찬했을 겁니다.


'시선으로부터, '

제목 끝에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찍혀 있어 조금 의아했습니다.


제목처럼 '심시선'이라는 인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가스 라이팅, 그루밍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이전에 이미 그것들의 피해자였던 시선.

그런 시선의 자손들이 그녀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시선이 젊은 시절을 지냈던 곳)로 갑니다. 그렇다고 하와이까지 가서 제사상을 차리려는 건 아닙니다. 제사상 대신, 하와이를 여행하는 동안 가장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은 순간을 수집해 시선의 기일에 공유하는 것이 제사의 목적입니다.


역사 교육과를 졸업한 정세랑은 작품마다 역사적 사건을 등장시킵니다. 혹은, 역사적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역사라는 것이 교과서에 나오는 먼지 폴폴 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하려는 의도겠지요.


다만, 아쉬운 점은, 각 장마다 열일곱 명의, 시선의 자손들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흩어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세랑의 글은 언제나 술술 잘 읽히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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