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Nov 15. 2023

다운타운에서 놀기

2023.08.06.일요일

오늘은 우리 숙소의 멕시코 친구 U와 함께 집 앞의 그랜빌 아일랜드 마켓에 가기로 한 날이다.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고 10시에 출발했다. 처음에는 일본 친구도 같이 가기로 했었는데 약속이 생겼단다. 전에 우리 식구들이 다리를 건너서 그랜빌 아일랜드에 갈 수 있다고 해서 용감하게 다리를 건너가 보기로 했다.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이 제법 멋지다. 다리 끝에서 어떻게 갈 수 있는지 구글맵으로 검색해서 길을 찾아갔다. 멕시코 친구는 이런 식으로 찾아가는 것이 처음인가보다. 신기해한다.


다리 아래쪽으로 그랜빌 아일랜드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사람들이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따라가보니 그랜빌 아일랜드 퍼블릭 마켓이 나온다. 사실 섬은 아주 작고 퍼블릭 마켓이 볼거리의 전부다. 하지만 워낙 밴쿠버의 유명 관광지라서 온갖 사람들이 다 모인다. 들어서는 입구에 기념품 상점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몇가지 물건의 가격을 보더니 멕시코 친구가 여기 상점이 시내보다 싸다고 하면서 이것저것 골라 담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평소 눈여겨 보았던 기념품을 몇 개 골라 담았다. 예쁜 것들이 많아서 하마터면 과소비할 뻔했지만 많이 참았다. 아직 한국 갈 날이 많이 남았다. 게다가 다음 주에는 거액을 들여서 여행을 간다. 참아야 하느니라.




기념품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데 또 다른 가게들이 이어진다. 윽, 눈이 돌아간다. 이것저것 예쁜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릇 가게, 옷 가게, 소품 가게, 공예품 가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이것저것 구경했다. 어떤 것은 시내보다 싸고 어떤 것은 비싸다. 아까 처음에 들렀던 가게가 가성비가 최고였다. 


잠시 밖으로 나와서 숨을 고르고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관광객들을 잔뜩 싣고 오가는 유람선들, 수많은 관광객들, 라이브 공연하는 가수, 떼지어 다니는 갈매기들과 캐나다 구스들... 확실히 관광지다. 여기저기서 한국말도 많이 들린다. ㅋㅋ 멕시코 친구 U가 여기 너무 좋다고 감탄하길래 멕시코에도 예쁜 해변이 많지 않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제일 유명한 칸쿤을 소개한다. 하지만 칸쿤은 너무 비싸다면서 다른 해변을 소개한다. 거기가 자기 고향이란다. 어머나 그래? 얼른 구글맵에 저장했다. 현지 사람이 추천하는 곳은 저장해두어야 한다. 

잠시 숨을 고르고 식료품을 파는 곳을 한바퀴 돌았다. 우리는 동시에 여기는 너무 비싸다고 결론을 내렸다. 시내보다 더 비싸다. 역시 관광지답다. 그래도 길을 가는데 무료로 먹어보라고 권하는 것은 낼름낼름 받아 먹었다. 멕시코 친구의 짐이 너무 무거워 보인다. 아까 조카들에게 줄 거라고 뭔가 잔뜩 샀다. 우리는 여기서 식사를 하지 말고 집에 들러서 짐을 내려 놓고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왔던 길을 되짚어서 집으로 왔다. 오는 길에 우리 집 앞을 지나가는 퍼레이드를 보았다. 오늘은 밴쿠버의 유명한 게이 퍼레이드가 있는 날이다. 동성연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든 화려한 퍼레이드 행렬과 그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다. 생각보다 긴 행렬이다. 한참 서서 행렬을 구경하다가 집으로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예전에 어디선가 퀴어 축제를 하려는데 엄청 난리를 쳤던 것이 기억이 난다. 이곳의 허용적인 문화를 다시 한번 느꼈다. 



집에 와보니 멕시코 친구 K가 쉬고 있다. 내가 요즘 거의 매일 그녀의 커피를 얻어마셔서 아까 그랜빌 마켓에서 그녀를 위해 커피를 샀다. 그것을 주었더니 너무 좋아하면서 포옹을 하고 하트를 날린다. 참 감정표현이 솔직한 친구다. K가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한다. 자기 친구도 한 명 더 올건데 같이 가자고 한다. 당연히 나는 좋지.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묻길래 뭐든지 좋다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 생일날 갔던 인도 음식점에 가자고 한다. U는 인도 음식이 처음이지만 좋다고 한다. 나에게 인도 음식을 먹어봤냐고 묻길래 인도 여행을 가서 많이 먹어 봤다고 했더니 갑자기 K가 난리다. 자기의 인생 목표가 인도에 가보는 거란다. 


멕시코 친구 K와 그녀의 친구, 나와 멕시코 친구 U가 만나서 함께 시내 중심가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길가에서 어떤 사람이 K를 알아본다. 잠시 대화를 나누고 사진도 같이 찍는다. U가 그녀에게 아는 사람이냐고 묻자 처음 보는 사람이란다. 사실 이 멕시코 친구 K는 브라질의 아역배우 출신의 연예인이다. 전에 주방에 서서 한참 이야기를 나눌 때 자기 소개를 하면서 어릴 때 텔레비전에 출연했던 사진, 최근 연예인 활동을 한 사진 등을 보여주었었다. 지금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은 팬이란다. 나와 U는 우리가 지금 유명한 연예인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K는 어깨를 으쓱한다. 가볍게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사실 굉장히 신기한 일이긴 하다. 해외의 여배우와 함께 생활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식당까지 걸어가면서 K는 나에게 인도는 어땠는지 거기서 무엇을 느꼈지는 물었다. 영어로 표현하는 것이 좀 어려웠지만 인도의 문화는 독특하고 사람들 중에는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나는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해 해서 뭐라고 설명할까 하다가 좀 복잡하다고 했다. 인생에 대해 뭔가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랬더니 아주 호기심 가득해서 뭐가 복잡하냐고 묻는다. 영어로 뭐라고 설명하냐. 그래서 그냥 바라나시에 가 보라고 했다. 바라나시에 가면 거기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때마침 목적지인 식당에 도착해서 너무 다행이다.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 그 복잡한 인도여행의 소감을 어찌 설명하리오. 


식당에 도착해서 각자 음식을 고르고 주문을 했다. 그런데 종업원이 각각 맵기를 어떻게 할지 묻는다. 멕시코 친구 U는 중간맛을 시킨다. 종업원이 중간맛도 매울 수 있는데 괜챦겠냐고 묻자 자기는 멕시코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오! 맵기에 대한 부심이 느껴진다. 다른 친구들은 부드러운 맛으로 달라고 했다. 나에게 묻길래 나는 매운 맛으로 달라고 했다. 종업원이 괜챦겠냐고 묻길래 '왜 이래, 나 한국사람이야'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매운 맛의 종류가 서로 다른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먹어봐서 알고 있어서 괜찮다고 추가로 설명해 주었다. 


음식이 나와서 다들 서로 맛을 보았다. U는 내 음식을 먹어보더니 자기에게는 맵다고 한다. 오히려 다른 브라질 친구들은 그냥 그저 그렇다고 했다. 나의 입맛에는 아무것도 맵지가 않다. 인도 음식의 맵기는 사실 맵다기 보다는 향신료의 향이 강한 것에 속한다. 멕시코 음식의 매운 맛은 짧게 치는 매운 맛이 있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한국의 매운 맛이 강하고 오래 가는 맛이다. 매운 음식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 정도 맵기는 괜찮다. 커리는 맛이 좋았다. 그런데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질 것 같다. 맛있다고 그냥 하염없이 먹었다. 신기한 것은 연예인인 K가 음식을 두 가지나 시켜서 엄청 많이 먹었다는 것이다. K의 친구가 원래 이 친구가 많이 먹어서 사람들이 다들 놀란다고 설명해 주었다. K가 자기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했다. 맛있는 것을 실컷 먹고도 저렇게 날씬할 수 있다니 참 복받은 신체 조건이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계산을 하고 나와서 K와 그 친구는 볼일이 있어서 전철을 타러 갔다. 나와 U는 근처 쇼핑몰에 가서 쇼핑을 좀 했다. 나는 아침에 머그컵이 깨져서 (싸구려를 샀더니 뜨거운 커피를 붇자 깨졌음) 새로운 머그컵을 사기 위해 쇼핑이 필요했다. U는 조카들과 친구들을 위해 쇼핑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각자 신나게 쇼핑을 했다.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최대한 자제하고 꼭 필요한 것만 골랐다.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너무 피곤하다. 나와 U는 나이든 사람들 티를 팍팍 내면서 이제 우리는 쉬어야 한다고 했다. 그녀도, 나도 오늘은 참 긴 하루였다. 역시 노는 것도 젊어서 놀아야해.


매거진의 이전글 보드 게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