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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y 28. 2024

하얀 색연필

2023.10.20.금요일

문법 수업

연습문제를 그룹별로 함께 풀고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달에 내내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나이가 좀 있는 중국사람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6년 정도 살았다는데 그동안 영어를 배우지 않고 있다가 내년에 대학에 가기 위해서 올해 이 학원에 다니고 있단다. 나이가 들어서 대학에 갈 결심을 했다는 것이 대단해 보이고 6년이나 살았는데 영어를 못한다는 것도 신기하다. 아, 하긴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에서 묵었던 집의 여주인도 그곳에서 10년을 넘게 살았지만 영어를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했었다. 여기에 살아도 가족, 자신의 나라 사람들하고만 교류하면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 그러면 영어는 배우지 않아도 된다. 그건 뭐 본인의 선택이겠지. 

어쨌든 연습문제를 함께 풀고 답을 확인했다. 어떤 문제는 서로 좋아하는 음식, 가고 싶은 나라, 좋아하는 과목, 싫어하는 과목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영어 공부에서 가장 어려운 파트를 묻는 문제가 나오자 서로 앞다투어 힘든 부분을 이야기했다. 다른 문제는 서로 서로 망설이면서 이야기했는데 이 문제에는 다들 적극적이다. 나는 듣기 파트가 어렵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읽기, 어떤 사람은 발음이 어렵단다. 그런데 교사 M이 툭 끼어들어서 자기는 쓰기 파트가 어렵단다. 응? 너는 원어민이잖아. 그래도 자기는 쓰기가 가장 힘들단다. 그래. 모국어 화자에게도 국어에서 어려운 부분이 있는 법이지.

교사 M은 학생들에게 답을 말하도록 골고루 시키고는 남은 연습문제는 숙제로 해오란다. 그리고 다음 단원으로 서둘러 넘어갔다. 다음 단원도 자세한 설명보다는 즉각적인 연습문제만 몇 개 풀었다. 앞 단원과 이 단원은 접속어, 부가 의문문이라서 문법적 이론은 많이 까다롭지는 않은 부분이다. 그래서 빠르게 넘어가는 것 같다. 문법적 어려움은 별로 없지만 이게 실전 문맥에서 사용될 때는 원어민이 아닌 우리에게는 많이 헛갈린다. 

월요일에는 레벨 테스트인데 보강교사가 들어와서 진행할 거라고 말하고는 정각에 꼭 수업에 들어오라고 했다. 대만친구 J에게 특히 신신당부했다. 왜냐하면 J는 정말 한결같이 10분씩 늦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보니까 그녀의 습관인 것 같다. 그녀는 친구들과의 약속에도 대부분 10분 정도 늦는다. 나는 그녀가 나중에 유치원에 근무하게 되면 이 지각 습관이 문제가 될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조만간에 살짝 이 문제를 이야기해주어야겠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해도 될까? 우리가 지금은 베프이긴 하지만 외국인 친구끼리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지 모르겠다. 좀더 생각해보자.




듣기 수업

약물 오남용에 대한 소재로 뉴스를 하나 선택해서 요약해서 소개하고 자신의 의견을 첨부해서 발표를 했다. 나는 올해 3월 CNN 뉴스 중에서 약물중독의 치료제 중 하나를 소개하는 내용을 선택해서 발표했다. 나는 약물 중독 사망자가 매년 수백만명에 달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런 치료제가 있다는 것에도 또 놀랐다. 이 치료제는 중독 치료제는 아니고 약물 중독 후유중으로 호흡곤란 증세가 있을 때 투여하면 살릴 수 있는 것이란다. 

어떤 학생은 살빼기 약물의 오남용, 어떤 학생은 자살시도로 약물 복용 사건, 어떤 학생은 약물 중독자의 재활센터 등으로 다양하게 발표했다. 어쩌다보니까 주제가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미리 의논하지 않았는데도 중복되지 않아서 신기하다. 그런데 2명의 학생이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서 발표를 하지 않는다. 교사는 그러라고 한다. 그것도 또 신기하다. 물론 평가에는 반영되겠지만 그래도 교사는 아주 쿨하게 용인한다.

교사는 시간이 좀 남자 오늘 발표 중에서 무엇이 가장 흥미로웠는지 물었다. 나는 자살시도에 대해 이야기가 인상적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입시 스트레스로 인해 학생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내가 교사였기 때문에 이 문제가 가장 마음 아프다고 이야기했다. 교사는 아시아의 입시 경쟁에 대해 들어보았다면서 자신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나라는? 일본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사실 동양은 비슷비슷한 상황이다. 과도한 공부 압박, 입시 경쟁 때문에 학생들은 너무 힘들다. 멕시코는 비교적 이 문제에서는 자유롭지만 최상위 대학에 가려면 거기도 아주 높은 성적을 가져야만 한단다. 다만 다들 그런 대학에 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건 소수의 문제란다. 우리나라는 너도나도 다 대학에, 그것도 일부 대학에 목숨을 걸게 만든다. 아! 이놈의 입시 문제. 교사는 이번 단원 주제가 너무 심각해서 다 우울한 이야기라면서 다음에는 주제를 즐거운 것으로 해야겠다고 했다. 그래. 맞아. 주제가 너무 무거웠어. 




읽기와 쓰기 수업

오늘도 좋은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주어진 문제에 충실하게 작성하는 방법, 문장을 연결하는 접속어 사용에 대한 것 등을 배웠다. 요즘 계속해서 글쓰기 방법에 대해 좋은 견본을 읽으면서 그 구조도 파악하고 짧은 글쓰기 연습도 하고 있다. 교사 A는 다음 주 화요일에 우리가 보게 될 읽기 시험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하다. 그보다는 우리의 글쓰기 실력이 늘기를 바라고 있다. 얼핏 다음 주 수요일인가 목요일에 쓰기 시험을 본다고 했던 것 같다. 어떤 주제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뭐 열심히 써보자.




점심시간

오늘은 준비해간 보쌈으로 함께 파티를 즐겼다. 마침 한국 친구 E가 합류해서 그녀의 반찬과 함께 더욱 풍요로운 식탁이 되었다. 한국 친구들이 아주 좋아하면서 밥과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뿌듯해졌다. 대만 친구 J도 너무 좋아하면서 먹는다. 그녀는 한국의 반찬들을 신기해하면서 먹었다. 물론 나도 맛나게 먹었다. 고기가 제법 그럴듯하게 맛있다. 역시 된장을 잔뜩 넣고 삶기를 잘 한 것 같다. 




회화 수업

오늘은 주말 계획에 대해 그룹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서는 사람의 성격에 대한 단어를 적어보는 활동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성격 중에서 긍정적인 것 3가지, 부정적인 것 3가지를 말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긍정적인 나의 성격으로 honest(솔직한), responsible(책임감있는), open mind (열린 마음)을 제시했다. 부정적인 것으로는 emotional(감정적인), rushed(성급한), selfish(이기적인)을 제시했다. 사실 아는 단어가 별로 없어서 제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뭐든 항상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긍정적인 성격이 아닐까 싶은데 그걸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냐? 지금 확인해보니까 적합한 단어를 찾기가 어렵다. 그나마 hardworking(근면한)이라고 하면 되려나? 

  


집에 와서 점심을 싸갔던 많은 그릇들을 설겆이하고는 잠시 시험공부를 하다가 밋업 영어회화 모임에 나갔다. 오늘도 한국 친구 E와 함께 했다. 그동안 익숙해진 많은 친구들이 함께 자리에 앉아서 신나게 떠들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오늘 처음 이 모임에 나온 일본 학생들이 합류해서 그들과도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처음이라 많이 긴장했는데 여기 나오길 잘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래. 잘 왔어. 나도 처음에는 긴장했었는데 여기 너무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 오늘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자리에 앉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는 줄이 가게의 밖에까지 이어졌다.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 모임이 이런 종류의 영어회화 모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가장 처음 만들어졌다는데 그 위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두 시간동안 신나게 영어로 떠들고 나서 집에 왔다. 방 청소를 하고 나니까 미국 친구 M이 왔다. 그녀는 이번에 새로 구입한 야채 써는 도구를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의 만능칼처럼 각종 야채를 다지기도 하고 저미기도 하고 잘게 썰 수도 있는 도구다. 마침 나도 야채를 다져서 카레를 만들려고 했는데 잘 되었다. 그녀의 도구를 이용해서 순식간에 야채를 썰어서 카레를 만들었다. M에게 주고 싶지만 카레에는 밀 성분이 들어가서 그녀는 먹을 수가 없다. 그녀는 그녀의 스프를 요리해서 먹고 나는 내 카레를 먹었다. 

우리가 밥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까 일본 친구 K가 합류했다. 나는 M에게 여기가 너의 첫 여행지인지 확인하고는 여기가 외국이라는 느낌이 드는지 물어 보았다. 캐나다와 미국은 많이 비슷하니까 별로 해외에 온 것 같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의 긴 영어를 내가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여기가 확실히 외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여기 왔을 때 긴장했었다는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떤 점에서 외국이라는 생각이 드냐고 물으니까 작은 몇 가지 시스템이 다르단다. 예를 들어 무게의 단위가 파운드와 킬로그램으로 다르고 길이도 피트와 센티로 다르단다. 그밖에 쓰레기 분리수거도 다르단다. 미국은 그냥 한꺼번에 버리는 경우가 많고 간혹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품 두 가지로만 분류한단다. 그렇구나. 너도 여기가 외국이라고 느끼는구나. 신기하네. 

우리는 여행 이야기도 나누었다. 캐나다에서 여행 다닌 곳을 이야기하는데 일본 친구 K와 나의 여행지가 완벽하게 겹쳤다. 그녀는 작년에 올드 퀘백,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밴프, 옐로 나이프를 다녀 왔단다. 우리는 서로 신기하게 생각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나보다. 마침 그녀가 올드 퀘백의 도깨비 언덕을 이야기하길래 나는 나의 스케치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도깨비 언덕의 스케치를 보고는 단번에 알아챘다. 그리고 어느 그림은 보더니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하고 비슷하다고 했다. 맞아. 거기야. 내 그림의 장소를 알아맞추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후후.

K가 내 색연필을 신기해하길래 보여주면서 무거울 것 같아서 최대한 짐을 줄이느라고 12색을 가져왔는데 후회한다고 했다. 여기에는 하얀색이 없어서 가끔 색을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 친구 M이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자신의 색연필 케이스를 가져왔다. 헉! 무려 3단짜리 색연필 케이스다. K는 미국 친구에게 너의 여행 트렁크가 몇 개나 되길래 이렇게 큰 것을 가져왔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M이 이번에 가져온 자신의 여행 트렁크가 6개라고 했다. 6개? 그걸 어떻게 들고 왔냐니까 자신의 가족들이 총 동원되어서 하나씩 맡아서 가져왔단다. 그렇구나. 하긴 그녀의 메이크업 케이스와 도구들을 생각해보면 그래야 했을 것이다. 어쨌든 M은 자신의 색연필 케이스를 열어서 보여주었다. 정말 감탄스럽다. 갖가지 색연필들이 있다. 몇 년 전에 생일선물로 받은 것이란다. 그런데 M은 그 중에서 작은 하얀색 색연필 하나를 꺼내서 나에게 준다. 아까 내가 하얀색이 없어서 색 표현이 어렵다고 하니까 나에게 하얀색 색연필을 주려고 자신의 색연필 케이스를 가져온 것이다. 어머나. 이런 착한 친구 같으니라고... 정말 감동이다. 고맙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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