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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n 03. 2024

화재 대피

2023.10.24.화요일

문법 수업

교사가 어제 본 시험지의 점수를 불러준다. 응? 우리가 채점하는게 아니고? 이미 채점이 되어 있고 학생 이름을 부르고 점수를 불러준다. 나는 64점이다. 겨우 절반을 넘겼다. 처음 레벨 업해서 본 테스트인데 이 정도면 선방했다고 본다. 그런데 학생들이 틀린 문제를 확인하고 질문하는 과정은 안해주려는 것 같다. 이미 다른 학생들에게서 이 교사가 레벨 테스트를 보고 나서 리뷰를 해주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와 대만 친구 J는 오늘 작정하고 테스트 리뷰를 요청하기로 했다. 내가 교사에게 시험 문제 설명은 안해주냐고 물으니까 교사 M은 오늘 보충수업이 있는데 그때 오면 설명해주겠단다. 나는 그 시간에 다른 보충수업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니까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 만다. 그러자 대만 친구가 자신도 시험 문제 설명을 듣고 싶다고 하고 이따가 보충 시간에 자신은 다른 프로그램 설명회에 가야 한다고 했다. 교사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그러면 잠시 후에 문제 풀이를 해주겠다고 했다.

지난 시간에 나가다가 멈춘 연습 문제를 마무리 하고는 우리에게 시험지와 우리의 답안지를 나눠준다. 그리고는 한 문제씩 빠르게 답을 확인하고 넘어간다. 중간에 내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어서 손을 들어서 질문하니까 그제서야 중간중간 여기까지 다 이해했는지 물으면서 진행을 한다. 원어민에게는 이게 문제냐 싶겠지만은 우리같은 학생에게는 어려운 문제다. 대만 친구와 내가 제일 많이 질문을 했다. 우리가 질문을 시작하니까 다른 친구들도 하나 둘씩 질문을 했다. 그래. 이래야 우리가 공부를 하고 넘어가지. 시험은 점수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이해한 것에 대한 확인을 위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간에 대만 친구 J가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이 생각한 답도 맞는 문장인 것 같다고 의문을 제기한다. 교사는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다가 잠깐만 하더니 이것도 문장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틀린 문장은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답이 두 개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오! 내가 대만친구에게 엄지척 해주었다. 교사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모든 학생의 시험지를 다시 확인해서 점수를 고치겠다고 한다. 교사의 입장에서 자신의 문제에 오류가 발생했는데도 그냥 쿨하게 수정한다. 학생들도 그런가보다 한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문제 풀이를 다 하고 나서 새로운 단원의 진도를 나갔다. 부정사와 동명사이다. 이것은 시제 다음으로 어려운 내용이다. 룰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다만 단어들마다 부정사나 동명사를 사용하는 것들이 불특정하게 분포해 있어서 이것들을 기억하거나 익숙해져야 한다는 점이 문제다. 교사도 이것들은 외우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게다가 부정사와 동명사를 둘 다 사용하는 단어도 있는데 그 경우 의미가 달라진단다. 그것도 외우는 수밖에 없다. 교사는 부정사와 동명사가의 단어들이 정리된 종이를 나눠주면서 여기에 나오는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는 것들이므로 이것만 잘 보면서 익히면 된단다. 이 교사는 이런 내용을 참 잘 정리해서 나눠준다. 설명만 좀더 친절하게 많이 해주면 좋겠는데... 그래도 그녀도 이제는 학생들, 특히 내가 이해했는지 자꾸 살피면서 진도를 나간다. 그래. 이정도면 되었지 뭐.



듣기 수업

오늘도 듣기 연습과 빈칸 메꾸기를 했다. 객관식 문제들은 어쩌면 한결같이 딱 절반만 맞는지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빈칸 메꾸기는 거의 전멸이다. 짧은 것들은 그럭저럭 쓰겠는데 긴 것들은 놓치는 단어가 너무 많다. 정말 이 짧은 구간에 그렇게 많은 단어들을 말했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복습을 해봐야겠다고 말한지 꽤 되었지만 요즘 너무 바빠서 복습을 못하고 있다. 뭐 하느라 이렇게 바쁜 걸까? 듣기가 가장 안되는데 공부는 가장 안하고 있다. 물론 밋업 모임에 나가서 열심히 듣기와 말하기를 하지만 그래도 듣기 수업 복습도 열심히 해야지.



쓰기와 읽기 수업

오늘은 읽기 레벨 테스트를 보았다. 문제는 그다지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번 레벨 테스트에서 본 단어 품사 문제가 더 어려웠다. 여기서는 그럭저럭 풀만한 문제들이 많았다. 다만 채점을 해봐야 안다.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것 같다. 내일은 쓰기 테스트란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다른 학급에서는 쓰기 테스트 주제를 미리 알려주었는데 왜 우리는 알려주지 않는지 물었다. 교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알겠다고 하면서 세 가지 주제를 알려주었다. 우리는 그 중에 하나를 골라서 쓰면 된단다. 하나 골라서 오늘 저녁에 한번 써봐야겠다. 외우는 것은 불가능하고 소재와 단어라도 익숙해져야지.



점심시간

밥을 먹는데 한쪽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해 홍보를 한다. SSLC와 협력 관계에 있는 VIC(Vancouver International Callege)에서 만든 '디지털 마케팅 교육' 프로그램이다. 내 친구들 중에 몇 명은 이 과정으로 옮겨 가려고 시험을 보았단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이거 같이 듣자고 하는데 나는 한달만 남은 상황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하기가 귀찮아서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홍보 내용을 들어보니까 재밌을 것 같다. 언어만 공부하는 것보다 이런 것이 더 재밌긴 하지. 대만 친구 J가 이 과정으로 옮기기 위한 시험만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 같다고 한다. 그렇지. 공짜로 보는 시험인데 좋은 공부 기회가 될 것 같다. 나도 일단 시험은 보기로 했다. 2층 카운터에 가서 신청을 했다. 이메일로 온라인 시험 링크가 보내졌고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서 집에 가서 볼 예정이다. 떨어질 것을 예상하지만 한번 재밌는 도전을 해보자. 무모한 도전은 나의 특기가 아니던가? 



회화 수업

교사는 우리에게 내일부터 자신과 1대1로 인터뷰를 나눌 것인데 시험이란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란다.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대화하듯이 하면 된단다. 하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그게 시험이라는 말을 듣고 시작한 이상, 평소 대화가 될 수는 없다. 다양한 주제들이 적힌 종이를 나눠주고는 그룹별로 한명씩 말하기를 하는데 1분~1분30초 동안 말하기를 하란다. 그룹의 다른 팀원이 시간을 재어주고 말이 멈추거나 머뭇거리면 팀원들이 질문도 하고 용기도 주란다. 첫번째 주제는 캐나다에서 와서 알게 된 사람 소개하기다. 

막 대화를 시작하려는 순간, 화재 경보기가 울린다. 전에도 한번 그냥 울리다가 그친 적이 있어서 다들 뭐 훈련일 거라고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문에 가까운 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서 밖을 확인해보았다. 그런데 2층에서 직원들이 올라와서 다들 대피하란다. 빨리 가방 챙겨서 나오란다. 다들 어리둥절하지만 대피해야 한다는 말은 알아듣고 가방을 잽싸게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직원들이 화장실에 있는 학생들까지 찾아서 나가라고 지시하고 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까 교사들이 자신 교실의 학생들을 불러 모은다. 학생들의 안전은 교사의 몫이므로 안전하게 대피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 사이 우리 교실의 재빠른 학생들이 무슨 일인지 알아왔다. 이 건물의 7층에 불이 났단다. 뭐? 정말? 

다들 놀라고 있는데 소방차가 도착했다. 정말 불이 났나보다. 밖에서 보기에는 멀쩡해보이는데... 우리 교실 학생들은, 아니 대부분의 학생들은 뭔가 신났다. 다들 소방차도 신기하고 이런 상황도 신기해한다. 구급차가 오지 않는 걸보니 누가 다친 것은 아니고 밖에서 화재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 걸보니 전기가 누전되어서 연기가 나는 정도 수준인가보다. 그 와중에 우리 교사 R과 발랄한 한국 학생이 소방관이 잘생겼다면서 사진을 찍고 난리다. 잘생긴 소방관 사진을 찍고 있는데 우리 학원 교장이 자신을 찍는 줄 알고 폼을 잡고 서 있다. 다들 비키라고 소리쳤다. 하.하. 근데 소방관들이 정말 잘생기긴 했다. 교사 R은 어느 지역이나 대부분의 소방관들은 잘생겼다면서 너무 신나 한다. 이럴 때 보면 R은 너무 장난꾸러기다.




잠시 후 화재가 정리되었다면서 다들 교실로 들어가란다. 의외로 빠르게 상황 정리가 되고 금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온을 되찾는다. 신기하다. 우리 회화 수업도 교실로 돌아와서 말하기 활동을 마저 했다. 캐나다에서 만난 사람 소개하라니까 발랄한 한국 학생이 교사 M에게 나이를 묻는다. 교사가 왜 묻냐니까 교사 M을 소개하고 싶단다. 그러자 교사는 웃으면서 나이를 빼고 소개하라고 했다. 나는 멕시코 친구 R을 소개했다. 65세인 그녀가 영어 공부에 도전한 점, 덴티스트를 하다가 은퇴 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점을 존경한다고 했다. 정말 우리 친구 R이 보고 싶다.

그런데 교사가 갑자기 다들 주목하란다.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소식이 있단다. 그녀는 우리 교실의 학생들을 가족이라고 표현한다. 한 멕시코 학생이 아주 중요한 경험을 했단다. 바로 첫 키스를 했단다. 뭐라고? 다들 놀라면서 축하해준다. 교사가 디테일을 말하라고 한다. 어디서, 언제 등등. 그는 부끄러워 하면서도 약간 신난 것 같다. 2주일 전에 잉베(잉글리쉬 베이 비치)에서 학원 친구들과 파티를 했단다. 춤도 추고 친구들이랑 놀다가 그녀와 키스를 했단다. 교사는 그래서 너의 감정은 어땠는지, 그녀와 다시 또 만났는지, 부모님에게 말했는지 등을 묻는다. 그리고는 이 행복한 기억을 잘 간직하라고 조언해주었다. 

이런 것까지 공유한다는 사실이 이제 이 교실에서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칠레 친구의 가족사, 한국 친구의 엄마와의 갈등도 모두 다같이 공유했다. 정말 가족같구나. 그래서 분위기가 서로서로 걱정해주는 것이다. 우리 회화 교실은 수업 분위기가 좋아서 보강교사들이 서로 들어오려고 한단다. 수업이 긍정적으로 잘 되어서 그렇단다. 얘기 들어 보니까 어떤 교실은 학생들이 아무도 말을 하지 않거나 좀 불량스러운 태도를 취하기도 한단다. 그런 교실에 배정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보충 수업

보강교사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학생들이 나에게 우리의 원래 보충 교사 M이 언제 오냐고 묻는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니? 하지만 다들 궁금해 하니까 내가 나중에 2층 데스크에 가서 물어볼께. 어쩌다보니 내가 이 수업의 반장처럼 되어 버렸다. 이 보강교사는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표현들을 배웠다. 그리고 몇 가지 관용표현도 배웠다. 아는 단어들이 많아서 비교적 수월했다. 



수업이 끝나고 밴브릿지에 가서 학원 일정과 여행 일정에 맞추어서 트렁크를 맡기는 문제 등을 의논했다. 쿠바와 옐로 나이프에 가는 동안 큰 짐을 맡아주기로 했다. 너무 고마운 일이다. 큰 짐을 따로 한국으로 보내려면 돈이 많이 들어서 망설이고 있었다. 다행히 밴브릿지에서 짐을 보관해준다고 해서 안심하고 여행 일정을 짰다. 휴대폰, 은행 등의 정리 일정에 대해서도 의논했다. 이제 정말 딱 한달 남았다. 잘 마무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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