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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n 13. 2024

할로윈 이벤트

2023.10.31.화요일

오늘은 할로윈날이다. 그러나 사실은 10월29일부터 내 마음은 한쪽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국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어서 일어난 10.29참사. 기능해야 할 당연한 시스템이 그 기능을 상실하면 이런 어이없는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사실을 숨기고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더욱 화가 난다. 너무 많은 생명이 희생을 당한 시기라서 여기서 내가 할로윈을 이렇게 즐겨도 되는지 요 며칠동안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실과 작년의 대참사를 마음 한켠에 두고, 지금 여기서는 여기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려고 한다. 지금의 마음의 빚은 언제가 갚을 기회가 있으리라 믿는다.



문법 수업

오늘 보강교사가 들어왔다. 그는 보충수업에 계속 들어오는 그 교사다. 그는 열심히 가르치긴 하는데 다소 경직되어 있는 사람이다. 오늘도 한 학생의 행동을 제지하였다. 그 학생은 문법 수업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두 명 중 한 명이다. 칠레에서 온 학생이라는데 자신의 모국어로 뭔가 글을 적고 있었나보다. 교사가 그 행동을 중지시키고 여기는 영어학교니까 영어만 사용하란다. 그 학생은 아직 수업 전이고 자신은 말하기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노트에 글을 적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교사는 영어학교의 규율은 영어만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혹시 모국의 학교 숙제가 있다면 집에서 하라고 한다. 그 학생은 화가 나서 교실 한쪽에 붙어 있는 학교 규율 게시물을 꼼꼼히 훑어본다. 쓰기와 말하기를 딱히 구별한 규율이 아니라서 더 이상 항의하기에는 애매한가 보다. 학생은 입이 대빨 나온 상태로 수업을 들었다. 

내가 보기에도 교사의 제재가 너무 과하다. 지난 번에는 쉬는 시간에 나와 브라질 학생, 일본 학생이 각자 자신의 나라 말로 인사하는 것을 서로 가르쳐주었더니 그때도 오직 영어만 사용하라고 제지했었다. 그는 여기가 영어를 공부하는 현장이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외국사람들이 만나고 사귀고 성장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이걸 영어로 충고해주고 싶은데 너무 어렵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듬더듬해서라도 알려주고 싶다.

어쨌든 오늘의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서로 인사부터 나누도록 한다. 오늘 새로 합류하는 학생들이 몇 명 있다. 어제 이 시간에 학원 오리엔테이션을 해서 오늘 처음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이다. 그야말로 이제 막 학원을 시작하는 신참들이다. 어제에 이어서 구동사에 대해 배우면서 연습문제도 풀었다. 되게 꼼꼼하게 연습문제를 확인하여서 나와 다른 친구들은 좋아했는데 아무래도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는 지루했을 것 같다. 그들은 이미 이 내용들을 잘 알고 있다. 아무래도 내일 교사 M이 오면 오늘 일을 말할 것 같다. 내일 어떻게 되나 지켜보자. 재밌겠다. 



듣기 수업

교실을 할로윈 분위기로 멋지게 꾸며져 있다. 학생들은 서로서로 할로윈 초콜릿을 나누어주면서 인사를 했다. 각양각색의 초콜릿이다. 여기와서 내 인생에서 그동안 먹었던 초콜릿의 총량을 넘어서는 초콜릿을 먹고 있다. 이러다가 당뇨가 오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다. 뒤돌면 배가 고프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오늘은 듣기 방송을 듣지 않고 단어와 관용표현의 의미를 배우고 매칭시키는 활동을 했다. 어제보다는 조금 낫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를 틀리고 있다. 나의 영어실력이 후진 중인 것 같다. 안돼!!! 



읽기와 쓰기 수업

어제 읽은 내용을 확인하면서 빈칸 메꾸기를 했는데 엉망진창이다. 정말 내 영어 실력이 퇴보하고 있는 것인가? 영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안되겠다. 정신 바짝 차려야해. 내용 확인 후에 이번 주의 주간과제 쓰기 연습을 했다. 5개의 주제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아이디어를 짜보란다. 주간과제는 총 5개의 문단으로 구성하는데 소개문단 1개, 내용 문단 3개, 마무리문단 1개로 하란다. 나는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을 선택했다. 이 과제의 전제가 재밌다. 

'전세계가 이상기후와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전세계의 정부는 내일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실제 음식이 아닌 대체식을 보급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오늘 저녁에 마지막으로 실제 식사를 딱 한번 할 수 있다. 당신의 마지막 저녁식사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 

이런 내용이다. 이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쨌든 이 주제는 쉽다. 나는 음식 세 가지를 정해서 작문의 틀을 잡았다. 구체적 내용은 다음에 작성할 것이다.




점심시간

점심시간에 2층으로 가서 어제의 호박 조각에 대한 투표를 했다. 한팀당 한표씩 행사할 수 있다. 팀원이 모여서 의논해서 자신의 팀을 제외한 팀의 넘버를 적으란다. 우리 팀은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한 팀을 골라서 번호를 써서 제출했다. 그런데 행사에 참여했던 모든 팀이 다 여기에 모인 것이 아니다. 결국 여기에 온 팀들만 투표권을 행사했다. 진행교사가 하나씩 투표번호를 공개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자신의 팀 번호를 쓴 그룹이 있다. 웃긴 상황이다. 후후.

우리 팀을 포함한 4팀 정도가 표를 하나씩 받았다. 딱 한 팀이 2표를 받았다. 그런데 그 팀원들이 자리를 떠나고 없다.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현재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냥 오라니까 왔다가 그냥 간 학생도 있고 투표만 하고 떠난 학생도 있다. 진행교사는 당황하더니 지금 남아있는 3팀만으로 투표를 다시 하자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설명하고 투표 용지를 가지러 간 사이에 또 한 팀이 그냥 가버렸다. 후후. 완전 난장판이 따로 없다. 이래저래 한 끝에 앞뒤로 멋진 조각을 한 팀이 상을 받았다. 우리팀은 2등 정도 된다. 헤헤. 난 그거라도 만족이다. 요즘 내 생애에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이 없다. 




다시 학생 라운지로 올라와서 밥을 먹고 있는데 이번에는 할로윈 코스튬 페스티벌을 한단다. 처음에는 무서운 캐릭터로 분장한 학생들 중에 베스트를 박수로 뽑았다. 그 다음은 독특한 아이디어에 대한 상을 뽑았다.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나와 몇 명의 친구들은 소박한 장식을 하고 도전해 보았으나 역시 상은 받지 못했다. 그냥 재밌게 즐긴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회화 수업

호박조각 투표도 하고 점심도 먹고 정신없이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 회화 수업 교실로 왔다. 오늘 오후 수업은 할로윈 이벤트로 각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게임을 즐기는 시간이다. 우리 교실에는 옆 교실 결강한 교사의 학생들이 합류해서 교실이 꽉 찼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2층으로 내려갔다. 참고로 2층은 영어를 좀 잘하는 학생들이 공부한다. 

첫번째 교실은 미스테리 추리교실이다. 교실은 살해 현장이란다. 자신의 책상에 엎드린채 죽어있는 시신의 주변을 둘러보고 책상 위에 앉아 있는 용의자들을 인터뷰해서 살인범인을 찾으란다. 영어를 겁나 잘하는 학생들이라 인터뷰 내용은 내가 잘 모르겠다. 다만 나의 직감으로는 교사의 목 테두리에 교사 흔적이 있어서 용의자들의 신발끈을 살펴보았는데 다 정상이다. 그때 내 칠레친구가 어느 용의자의 후드티 끈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빙고! 그 사람이 살인 범인이었다. 내가 보기에 인터뷰 내용 중에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이 있어서 그것으로도 유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냥 직감으로 맞출 수도 있지 뭐.

두번째 교실은 일종의 귀신의 집이다. 5명씩 그룹을 지어서 눈을 가리고 들어간다. 앞서 들어간 학생 그룹이 비명을 지르고 난리다. 다들 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드디어 우리 그룹 순서가 되었다. 들어가니까 정말 사방이 깜깜하다. 중간중간 학생들이 뒤에서 밀기도 하고 무섭게 소리도 낸다. 그 와중에 누군가 문제를 내서 그것을 맞추었다. 물론 내가 아니고 우리 그룹의 학생 중 한 명이 맞추었다. 그리고 다시 어디론가 이끌려 가서 또 다른 퀴즈를 푸고 드디어 풀려났다. 시각이 마비되니까 시간 개념도 흐트러지고 방향감각도 사라져서 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다들 재밌게 놀고 나서 원래의 우리 교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 교실의 게임을 준비했다. 책상을 붙이고 의자를 치우고 촛불을 일렬로 놓았다. 그리고 몇 번 테스트 한 끝에 4의 촛불을 적당한(어려운?) 간격으로 놓았다. 그리고 준비한 선물 가방을 양쪽으로 놓았다. 우리 교실에 놀러온 아래층 교실의 학생들에게 규칙을 설명하고 촛불을 불어서 끄는 게임을 했다. 다들 촛불 끄기라는 말에는 흥미가 없다가 선물 상자 중 하나는 나쁜 아이템이고 하나는 좋은 것이라니까 그제서야 흥미를 보인다. 그러나 막상 게임이 진행될 때에는 몇 개의 촛불을 끄는가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촛불이 두 개까지는 일반적으로 꺼지는데 이상하게도 세 개째부터는 꺼질듯 하면서도 안꺼진다. 세 번째 촛불은 정말 이상한 촛불이다. 우리도 의아할 정도다. 그 와중에 네 개를 모두 끈 학생도 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우리가 준비한 베스트 선물은 딱 두 개였는데 네 개를 끈 학생이 딱 두 명이었다는 것이다. 휴우 다행이다. 

신나게 게임을 진행하고 나서 교실을 치우고 자리에 앉았다. 교사 R은 2층에서 경험한 게임 중에 뭐가 좋았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이 게임을 더 발전시킬 아이디어는 없는지 등을 물었다. 서로 몇 가지 의견을 나누고 나서 다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보충 수업

수업이 끝나고 나서 보충 수업을 들으러 갔다. 오늘은 할로윈이라 보충수업이 없을까 생각했는데 보강교사가 들어왔다. 오늘도 학생은 한국친구 E와 나뿐이다. 거의 개별 강습 받듯이 영어 말하기 연습을 했다. 개별적으로 발음도 교정받고 말투나 끊어 읽기에 대해 교정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교정받으면서 개별 훈련을 할 수 있어서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집에 와서 급한 숙제부터 했다. 저녁에는 할로윈 파티에 갈 것이라 숙제할 시간이 없다. 할로윈 파티의 주최는 내가 가장 자주 참석하는 밋업의 한영 언어교환모임이다. 약속 장소로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서 우리 밋업 그룹의 일행을 만났다. 다들 같은 파티에 가는 길이라 더욱 반갑게 인사하고 합류했다. 장소는 아주 큰 펍, 맥주집이었다. 음료나 알콜, 음식은 각자 주문하고 그 자리에서 결재하면 되는 시스템이다.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다양한 복장과 분장을 하고 왔다. 나처럼 간단한 머리띠를 한 사람부터 근사한 옷차림, 별난 옷차림 등 다양하다. 얼굴에 근사한 장식을 붙인 것을 보고 너도 저거 한번 해볼껄 하는 생각도 했다. 스티커로 붙였다 떼면 되는 거라서 아주 간단하다. 혹시 다음 기회에 또 할로윈 파티에 갈 수 있다면 얼굴 장식에 도전해봐야겠다. 

아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다함께 반갑게 인사를 했다. 대부분 나에게 묻는다. 쿠바에 언제 가냐고. 하.하.하. 나는 여기에 온 사람 중 절반 정도의 사람들과 서로 알고 지내고 있고 그들 대부분이 내가 쿠바에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만큼 여기에 많이 나왔고 그만큼 내가 떠벌리고 다녔다는 얘기지. 이 친구들과도 곧 작별이구나. 

이곳 밴쿠버 생활에서 학원 다음으로 나에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이 모임이다. 영어도 연습하고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시내의 길거리에서도 이들과 가끔 마주치게 되는데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아까 버스에서 만난 것처럼. 정말 내가 이 지역 주민이 된 것 같다. 어떤 외국인 친구가 시내에서 나를 종종 봤단다. 얘기를 들어보니까 학원 근처인 것 같다. 이렇게 이들 사이에서 주민처럼 살다가 떠나면 허전할 것 같다. 

오늘 내 옆에 앉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 한국친구는 여기서 10년 정도 살았단다. 자신은 늘 여기에 있는데 너무 많은 한국 친구들이 왔다가 다시 떠나갔단다. 그래서 그 관계 맺음이 참 허무하고 어렵게 느껴진단다. 완전 공감이다. 나도 학원에서 짧게 짧게 사귄 친구들과의 이별이 늘 마음 한 켠을 텅 비게 만든다. 그게 반복되면 더 힘들 것 같다. 

할로윈 파티는 즐겁고 친구들과 노닥거리는 것이 좋은데 나는 또 왜 깊은 사색에 빠지려는 것일까? 고개를 한번 털고 파티를 즐겼다. 운영진이 사람들 등뒤나 어깨에 카드를 붙여준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이마에 붙였다.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자 휘슬을 불고는 자신의 카드가 붙어있는 테이블로 이동하란다. 자리를 이동해서 좀 놀다가 시간이 늦어서 집에 갔다. 숙제를 아직 다 못했다. 일기도 써야한다. 윽. 졸린데…. 과연 나는 일기와 숙제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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