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동강-수철
주막을 지나 조금만 더 올라가면 시야가 탁 트이면서 넓은 길을 만나게 된다. 이번 5코스도 기대했던 대로 다양한 길을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아스팔트길도 걷고 산길도 걷고 이렇게 임도도 걷는다. 임도는 숲 속의 길이라는 뜻인데 산림자원 보호와 관리를 목적으로 산림 내에 개설된 도로를 뜻한다. 이 길이 산림보호를 위한 도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숲 속에 넓고 잘 닦인 길을 나는 임도라고 부른다. 임도는 나무도 적당히 우거져 있고 길도 널찍해서 걷기 좋다. 다만 모든 임도가 흙길은 아니라는 점이 좀 아쉽다.
최근 들어 다양한 '길'들이 생겼다. 제주도의 올레길이 그 유행의 시작인 걸로 안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원조는 따지지 말자. 그게 중요한 거는 아니니까. 지금은 제주올레길, 지리산둘레길, 해파랑길, 남파랑길, 북한산둘레길, 서울성곽길 등 다양한 길들이 있다.
지리산둘레길을 걷다 보면 이렇게 다른 '길'들과 중첩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길'이 붐을 일으키면서 지역에서 여러 가지 역사나 문화와 결합된 '길'을 만들어서 그렇다. 그 지역의 역사나 문화를 지키고 널리 알리는 것은 좋은 것 같다. 걸으면서 역사나 문화까지 배우게 되니 일석이조다. 다만 그것이 억지로 꾸며진 '길'이거나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길'은 아니길 바란다.
'길'은 사람들이 다녀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길'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묻어있고 걷는 사람들이 숨결이 배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사랑받는 좋은 '길'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 있는 '길'일 것이다.
넓은 임도에서 다시 좁다란 오솔길로 접어든다. 길이 정말 다채롭다. 아름다운 숲길을 걷고 또 걷는다. 5코스는 이렇게 나무가 우거진 길이 많아서 정말 여름에 걷기 딱 좋다. 예쁜 꽃들도 구경하고 넓은 공터에서 쉬어가기도 한다.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는 게 보이는 듯하다.
한적한 오솔길이 곧 오르막길로 바뀐다. 안 그래도 느린 내 걸음은 더 느려진다. 사람들은 또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렇게 힘든 구간이 나오면 나는 사진을 더 많이 찍는다. 사진을 찍으면서 다리를 쉬는 꼼수를 부리는 것이다.
근데 숲 속에서 만나는 것들은 대부분 내가 잘 모르는 아이들이다. 이 곤충은 사슴벌레일까? 근데 곤충과 벌레는 같은 건가? 검색해 보니까 벌레는 곤충을 비롯하여 기생충과 같은 하등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고 곤충은 곤충강에 속하는 동물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벌레는 좀 더 폭넓게 쓰이는 말로 우리가 흔히 아는 그 징그러운 것들이고 곤충은 그중에서도 머리, 가슴, 배로 나뉘는 생물학적 특징을 가진 것들에게 쓰이는 말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지렁이는 벌레이지만 곤충은 아니다.
이렇게 다리도 쉬고 사진도 찍고 또 뭔가 배운다. 일석삼조다.
한참 동안 숲길을 지나 마지막 깔딱 고개를 올라서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이 나온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그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 한참 동안 숲길에 있다가 탁 트인 곳으로 나와서 그런지 멀리 보이는 경치가 더욱 시원하게 다가온다. 사방으로 트여 있어서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때마침 억새도 제철이다.
산불감시초소는 이렇게 생겼다. 너무... 아담하다. 근데 산불을 감시하는 초소인데 신문지로 막으면 어떻게 감시하지? 이 작은 초소에 한 사람만 들어가는 건가? 화장실은? 쓸데없는 걱정을 해본다. 작지만 이것을 이 산꼭대기까지 가지고 오는 과정은 험난했을 것 같다. 그리고 주변 전망에 대해 안내해 주는 조망도들이 있어서 경치를 구경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런 친절함 참 좋다.
그리고는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숲길에서 만난 삼지창 나무. 내가 붙인 이름이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가지가 두 갈래로 뻗는데 얘는 세 갈래도 뻗었다. 마치 엄마 나무가 삼 형제 중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사이좋게 성장하도록 넓은 기둥으로 받쳐주는 듯하다. 그러면 삼 형제 나무라고 해야 할까?
동강-수철 구간에서 마지막 고개인 고동재를 넘는다. 고동재를 넘으면 산길을 벗어나 다시 임도가 나온다. 그리고 계속 내려간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올라간 만큼 내려간다. 만고의 진리다. 그래도 마지막 고개를 넘고 이제 목적지가 다가와서 마음이 가볍다. 발걸음도 절로 가벼워진다.
넓은 길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 반가운 주점을 만난다. 여기서도 또 막걸리 한 사발 하면서 다리를 쉰다. 결코 막걸리를 마시고 싶어서가 아니다. 제법 긴 하산길이라서 중간에 다리를 쉬어주는 거라고 스스로 변명해 본다. 내가 술을 좋아하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지만 산행길이나 둘레길을 걷는 중간에는 목을 축일만큼만 가볍게 마신다.
수철마을까지 이어지는 이 하산길은 아주 길다. 고동재에서 수철마을까지가 3킬로가 넘는다.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두워지고 있다. 길은 평탄하여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가급적 다음부터는 좀더 빨리 출발해서 해가 지기 전에 마을에 도착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너무 느리게 걷는다.
그렇게 하염없이 내려가다 보면 수철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해가 지고 나서 마을에 들어서는 바람에 일단 밥부터 먹었다. 시골에서는 늦게까지 식당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숙소를 어렵게 구한 것은 앞편에서 이야기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 이 사진은 아침에 찍은 것이다.
수철마을에는 수철이가 살고 있냐는 옛날 개그를 쳐보았으나 '수철마을'의 유래는 무쇠로 솥이나 농기구를 만들던 철점이 있어서 수철마을이라고 한다. 마을 가운데로 개울물이 시원하게 흐르는 아기자기한 마을이다.
동강-수철 구간 즉, 5코스는 중간에 폭포도 있고 산길도 제법 있어서 재미있는 코스이다.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아주 가파른 길은 아니므로 겁낼 필요까지는 없다. 게다가 시원한 그늘과 물소리, 새소리, 좋은 전망, 풀내음, 물내음 등이 오감을 즐겁게 해 준다. 아! 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