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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따라 길 따라(1)

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수철-성심원

by 바람

2014년 가을이 깊어가는 11월에 지리산둘레길의 6코스인 수철-성심원 구간을 걸었다. 그냥 한번 걸어볼까 하고 시작했던 지리산둘레길 걷기가 어느새 지리산둘레길 종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한참 지리산둘레길에 빠져있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나는 둘레길을 걷고 있었다. 어떤 때는 산길을, 어떤 때는 농로를 걸었다. 눈앞에 지리산을 두고서 하염없이 걷다가 잠을 깨곤 했다. 그렇게 가을 지리산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지리산둘레길6코스.jpg 지리산둘레길 수철-성심원 구간(네이버 지도)


이번에 걷게 되는 수철-성심원 구간은 선녀탕을 경유하지 않으면 12킬로, 선녀탕을 경유하면 약 16킬로 정도 된다. 지리산둘레길 홈페이지에서는 전자의 경우 4시간, 후자의 경우 6시간 걸린다고 한다. 나는 선녀탕을 경유하지 않고 걸었고 대략 5시간 정도 걸렸다. 지금까지 둘레길을 걸었던 구간 중에서 가장 빨리 걸은 것 같다. 걷는 시간이 점차 보통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있다. 그럴 수 있던 이유는 난이도가 '하'이기 때문이다. 오르막 내리막이 거의 없는 구간이다. 길이 쉬운 대신 햇볕을 피하기 힘든 길이 많아서 한여름에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선녀탕을 경유하는 구간으로 가면 산속으로 들어가니까 조금은 그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대신 난이도는 '중'으로 바뀔 것이다.


이번에도 걷기 전에 유용한 정보를 살펴보면

- 교통편은 성심원까지 걷고 난 후 다시 차를 세워둔 수철마을로 가는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성심원에서 다리를 건너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거기서는 수철마을로 가는 버스가 있는 게 아니라 산청이나 함양으로 가기 때문에 다시 수철마을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산청이나 함양으로 가는 버스 시간도 알아두어야 하고 거기서 수철마을로 가는 버스 시간도 맞아야 한다. 나는 결국 지난번 구간에서 이용했던 방법대로 택시로 되돌아갔다.

- 중간에 산청군청이 있는 산청읍 옆을 지나게 된다. 이 부근에는 길가에 식당이 간간이 보인다. 둘레길에서 약간 벗어난 시내에는 식당이 더 많다. 다른 곳에서는 밥 먹을 곳이 없으므로 이곳을 이용해서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혹은 김밥이라도 몇 줄 챙겨 경치 좋은 곳에서 먹어도 좋다. 산청을 지나고 나서 경호강을 끼고 걷는 성심원까지는 식당은 물론 작은 가게조차 없었다. 성심원과 어천마을에도 가게는 없으니까 물이나 간식을 미리 챙겨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지금까지와 달리 가게가 없는 마을이 많다.

- 숙소는 수철마을의 민박, 산청읍 시내의 여관이나 모텔, 성심원 인근 어천마을의 펜션 등이 있다. 성심원의 위쪽으로 지리산둘레길 산청센터에서 운영하는 작은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폐쇄했다고 한다. 지금 운영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IMG_5888.JPG 수철마을의 출발점

수철마을의 출발점에는 쉴 수 있는 정자와 화장실이 있다. 정자 앞에 버스 정류장과 주차장도 있으므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곳에 차를 세워두고 출발한다. 나무들은 가을임을 알려주는데 하늘에는 구름이 낮게 깔려있다. 원래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 아닌가? 그나마 걷는 도중에 비가 오지 않기만 바라본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여기는 햇볕을 피하기 힘든 구간인데 이런 날씨가 오히려 걷기에는 좋았다. 결국 날씨 운이 좋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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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 익어가는 수철마을

마을 길을 따라 가는데 집집마다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예전에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이 마을에서는 '감나무 사랑 걸려네'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내가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되면 감나무 한 그루, 사과나무 한 그루, 대추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유실수들은 그냥 자라는 게 아니라 관리를 해 주어야 하는데 내 성격에 어려울 것이란다. 참으로 진심 어린, 그러나 낭만을 파괴하는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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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걷히는 산과 둘레길 표식

멀리 산 너머로 구름이 걷히고 있다. 다행이다. 최소한 비는 오지 않을 것 같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장승 모양의 벅수도 길을 알려주지만 길바닥에 이런 길안내 표식이 있는 곳도 있었다. '있었다.'라고 말한 이유는 지금은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리산둘레길 조성 초기 혹은 벅수를 세우기 애매한 장소에 이런 표식을 했던 것 같은데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세월의 흔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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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촌마을의 벅수들

수철마을에서 출발하여 지막마을을 거쳐 평촌마을을 지나고 있다. 평촌마을은 들말, 서재말, 제자거리, 건너말 등 네 개의 동네를 들말로 부르다가 한자로 평촌이라고 했단다. 경기도에도 평촌이 있는데 여기도 있다. 그러고 보니 평촌이라는 이름을 다른 곳에서도 본 적이 있다. 윗말(마을), 아랫말(마을)처럼 흔한 이름인 것 같다. 평촌을 지나면서 해내들, 번답들 등을 지난다. 너른 들판이 있는 곳들이 주로 평촌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나 보다. 지난번 5코스를 걸었을 때 황금물결을 이루면 들판이 이제는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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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러운 감나무들

감이 그득그득 달린 가로수(?) 길을 걷기도 한다. 대부분의 감들이 손에 닿을 듯이 달려있다. 그렇다고 감을 함부로 막 따먹으면 안 된다. 감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 애지중지 기른 것들이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농작물이나 과실수가 많은데 함부로 따 먹으면 상품 진열대에서 물건을 슬쩍하는 것과 같다.

나는 감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왠지 풍성한 감나무를 보니까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감들이 너무 예쁘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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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정자

개천을 옆에 끼고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난다. 마을마다 대부분 정자들이 있다. 거의 모든 정자에 앉아서 쉬엄쉬엄 갔다. 그러니까 그렇게 오래 걸리지. 그래도 쉬면서 경치도 구경하고 천천히 가는 게 좋다. 경치도 즐기고 계절도 느끼고 사색도 하기 위해서 걷는다. 목적지까지 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과정은 더 중요하다. 내가 오늘 걸으면서 지나온 풍경들, 떠오른 생각과 느낌, 경험이 소중하다.




IMG_5940.JPG 경호강

작은 개천을 몇 번 건너고 나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경호강을 따라 걷는다. 산청읍이 가까워지면서 도로도 커지고 건물도 많아진다. 시냇물에서 개천으로, 개천에서 강으로 물길도 점차 규모가 커진다. 오늘은 하늘이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나 보다. 구름이 아까보다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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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를 건너 다리 아래를 지나

강의 왼편을 걷다가 경호 1교를 건너 강의 오른편을 걷는다. 경호 1교의 위를 건너는데 꽃들로 예쁘게 꾸며두었다. 이곳에서 산청 군청이 있는 시내로 진입할 수 있다. 다시금 강변으로 길을 돌아 이번에는 큰 규모의 다리 밑을 지난다. 오늘은 다리 위와 다리 아래를 모두 지난다. 이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위의 도로가 통영대전고속도로이다. 고속도로의 아래를 지난다는 것이 좀 이상하다. 지금 내 머리 위로 시속 100킬로가 넘는 차들이 슝슝 지나고 있다. 어쩐지 발걸음이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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