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운리-덕산
저번에 걸었던 성심원-운리 구간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경험했기에 이번에 걸을 구간도 힘들까 봐 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어떤 힘든 길이라도 쉬엄쉬엄 가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금 길을 나섰다. 3월보다는 조금 더 따뜻해진 2015년 4월. 아마도 꽃들이 피어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지리산을 향했다.
운리에서 덕산으로 넘어가는 코스는 총 13.9킬로이고 보통 5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내 경우에는 6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나의 걷는 속도가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듯하다. 지리산둘레길 홈페이지에서는 난이도 '상'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것 같지는 않다. 요 앞코스처럼 가파르게 치받아 오르는 구간이 있는 게 아니라 오르락내리락해서 그냥 쉬엄쉬엄 갈만하다.
걷기 전에 알아두면 유용한 정보는
- 교통편은 시작점인 운리는 전에 말했듯이 대중교통이 거의 없다. 하지만 종착점인 덕산은 제법 큰 곳이라서 버스도 있고 택시도 많이 다닌다. 하지만 덕산과 운리를 대중교통으로 연결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주차장은 운리에도 큰 것이 있고 덕산에도 강가에 큰 주차장이 있으니까 양쪽 다 차를 세워두기에는 좋다.
- 먹거리는 운리에는 식당이 아무것도 없고 중간에도 먹을 만한 주막이나 식당이 없으니까 물과 점심, 간식을 다 챙겨야 한다. 덕산에 올 때까지 구멍가게도 없다. 대신 덕산은 시천면 사무소가 있는 큰 마을이라서 먹거리가 많고 오일장도 있다.
- 숙소는 운리의 펜션이나 민박, 덕산의 모텔이나 민박을 이용할 수 있다.
운리마을의 주차장 옆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그리고 쉬어갈 수 있는 정자도 있다. 지리산둘레길을 걷다 보면 그 마을을 대표하는 나무, 당산나무 같은 것들이 있고 거기에는 대부분 정자가 있다. 오래된 나무의 기운도 좋고 그늘도 좋고 편히 쉴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마을을 스치듯 지나면서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 사이 나무도 푸릇푸릇해지고 꽃들도 피었다. 확실히 봄이다. 봄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예쁜 꽃들도 많이 피고 날씨도 따뜻해지면서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고 싶어지게 만든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로 시작되는 '봄처녀'라는 노래가 있다.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배운 노래이다. 다른 노래들은 거의 잊었는데 이 노래는 아직도 봄이 되면 입에서 흥얼거리게 된다. 물론 앞구절 밖에 기억이 나지 않긴 하지만 설레는 봄을 정말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유유자적하면서 걷기에는 봄 농사를 준비하시는 농부들의 손길이 너무 바빠 보인다. 여기저기서 겨우내 쉬고 있던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있다. 우리는 아무 때나 마트에 가서 손쉽게 채소나 과일을 사 먹지만 그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뿌려지고 길러지고 거두어진 것들이다. 감사한 마음을 갖자.
길은 오르막으로 계속된다. 임도라는데 이번에도 시멘트 길이다. 이 길을 따라 꼬불꼬불 올라간다. 하지만 힘들지는 않다. 저번에 단련이 되어서 그런 걸까? 그리고 중간에 간이 화장실이 있다. 신기하다. 게다가 마치 맞게 쉼터도 있어서 더 좋다.
그런데 나에게 한 가지 징크스가 생겼다. 쉼터가 어디쯤 있는지 모르니까 걷다가 걷다가 지치면 그냥 길바닥에 앉아 버렸는데 그렇게 쉬고 나서 조금만 올라가면 이런 쉼터가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그걸 못 참고 쉬면 바로 앞에 떡하니 쉼터나 정자가 나타난다. 조금 더 인내심을 기르라는 신의 뜻일까? 이 징크스는 종주를 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구불구불한 임도 오르막이 지루해질 때쯤 산길로 접어든다. 길을 안내하는 벅수를 잘 보고 다녀야 한다. 넋 놓고 걷다가는 지나칠 수도 있다. 울퉁불퉁한 산길은 거칠지만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보다 차라리 낫다. 시원한 나무 그늘과 폭신한 흙길이 반갑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신기한 나무들을 만난다. 날씬한 참나무들 사이에 독특한 나무가 보인다. 손바닥을 위쪽으로 향하고 손가락을 하늘로 뻗고 있는 것 같다. 가만, 그러기에는 손가락이 너무 많다. 이 나무는 가지를 너무 많이 뻗은 것 같다. 물론 많다는 것은 극히 주관적인 나의 의견일 뿐이다. 나무의 입장에서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숲길은 산능선을 따라 이어지는데 옆에 보이는 경치가 너무 좋다. 아까 구불구불한 임도를 한참 올라와서 그런지 산길 오르막이 심하지 않았는데도 전망이 근사하다. 깊은 산속을 걷고 있는데도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있는 이런 길은 걷기에 최고로 좋다. 심심하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다. 이 맛에 지리산둘레길을 걷는다.
숲길에 한참 걷다 보면 물소리가 점점 가까워짐을 느낀다. 우거진 숲 속에 숨겨져 있던 백운계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게다가 나지막한 폭포까지 있다. 폭포라기에는 너무 낮지만 물줄기가 제법 시원하다. 한여름은 아니지만 너무나 맑은 물줄기를 보고 살짝 발을 담가 본다. 아침에 깨끗하게 씻고 나왔으니까 계곡을 더럽힌 것은 아니리라. 괜히 계곡물에게 미안해서 변명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