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운리-덕산
한참 동안 폭포 아래에서 쉬다가 다시 길을 나서는데 나무다리가 계곡에 놓여있다. 갑자기 히말라야에서 보았던 나무다리가 떠올랐다. 정말 비슷하다.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이렇게 다리를 놓는 것은 어디나 비슷한가 보다. 하긴 모든 건축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흘러서 지금 저 다리는 남아있지 않을 것 같다. 나무다리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마근담을 지난다. 마근담이란 '막힌담'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골짜기의 생김새가 마의 뿌리처럼 곧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 길은 마근담 사람들이 백운마을로 가던 마실길이란다. 이 깊은 산 중에 사람들이 살았을까 싶었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까 이 길 위쪽으로 마근담이라는 마을이 있다. 정말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곧 숲길을 벗어나 포장된 임도를 만난다. 이 포장된 길이 마근담 마을로 이어지리라. 둘레길은 마근담 마을이 있는 위쪽이 아니라 반대편인 아래쪽으로 향한다. 앞서 걸었던 3코스나 4코스와 달리 이쪽 구간은 둘레꾼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걷는 사람들을 만나면 더 반갑다. 역시 이번에도 다들 나보다 빨리 걷는다.
길은 아래로 아래로 향한다. 멀리 양봉장이 보인다. 봄꽃들이 많이 피어서 벌들이 바쁠 것 같다. 나는 꽃이 아니니까 나에게는 오지 말아 다오. 예전에 낚시하러 갔다가 벌떼에게 쏘여서 급하게 돌아온 적이 있다. 다섯 방 정도 쏘였는데 병원에 다니며 고생했다. 벌떼가 이상하게도 얼굴 쪽을 공격해 왔는데 너무 무서웠다. 양봉장은 그냥 멀리서 보기만 하자.
길가에 너무 근사한 정원을 가진 집도 보았다. 개인 주택인데 멋진 기암괴석도 전시되어 있고 근사한 소나무들도 심어 있는 것이 딱 봐도 되게 부잣집 별장 같다. 이런 집에는 누가 살까? 무슨 드라마에 나오는 '평창동입니다~.' 하는 사람들이 살 것 같다.
멀리 사리마을이 보인다. 이제 다 내려온 거다. 길가에 예쁜 꽃들이 많이 피어 있다. 분홍색 꽃이 너무 예뻐서 꽃검색을 해보니 '지면패랭이꽃'이란다. 일명 '꽃잔디'라고도 한다는데 둘은 같은 꽃은 아니라고도 하는데 잘 모르겠다. 꽃잔디든 패랭이꽃이든 참 예쁘다. 무리 지어 피어 있어서 더 예쁜 거 같다.
차들이 다니는 큰길로 나오면 남명 기념관이 있다. 저번에 탑동마을에서 본 시비의 주인공인 남명 조식 선생의 기념관이다. 여기에는 유물을 모아놓은 전시관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남명 선생이 머물렀다는 산천재가 있다. 여기가 그리 유명한 곳인지 모르고 지나쳤는데 알고 보니 남명 조식 선생의 대표적인 유적지라고 한다. 산천재는 남명 선생이 돌아가실 때까지 머무르며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고 이곳 마당에 있는 남명 선생이 심었다는 '남명매'는 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사람들이 모여들 만큼 유명하다고 한다. 다음 기회가 된다면 매화꽃이 필 무렵 한 번 가봐야겠다.
종착점을 불과 200미터 앞두고 또다시 쉰다. 정자가 보이면 쉬어주는 맛에 둘레길을 걷는 거다. 앞에는 덕천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천재가 있다. 아주 적절한 위치에 정자가 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200미터만 가면 시천면사무소가 있는 덕산마을이다. 이곳에는 약초와 곶감으로 유명한 덕산시장이 있는데 4일과 9일에 오일장이 선다. 장이 섰을 때 와봤는데 규모가 작은 시장이지만 신기한 약초들이 많이 있어서 구경할 만했다.
지리산둘레길 8코스인 운리-덕산 구간은 지리산둘레길의 특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잘 포장된 임도도 있고 깊은 숲길도 있다. 숨은 듯이 자리한 계곡도 있고 마을의 이야깃거리도 있다. 특히 맑은 물을 자랑하는 백운 계곡과 폭포는 길을 걷다가 만난 선물 같은 장소였다. 여기는 한여름에 걸어도 걸을만한 구간이다. 그리고 아기자한 오일장을 만날 수 있는 덕산마을도 매력적이다. 허름하지만 오일장 바로 옆에 숙소(모텔? 여관?)도 있어서 걷고 나서 시원하게 씻고 나서 슬리퍼를 끌고 저녁 마실을 나올 수 있어서 좋았다. 이곳 덕산마을에서 시작하는 다음 구간도 여기처럼 다채로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