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덕산-위태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어김없이 나의 마음은 지리산둘레길을 향한다. 아기자기한 다채로움을 지녔던 지난번 코스가 한껏 기대치를 높여주었다. 모든 산이 다 좋지만 특히 지리산은 넉넉한 품으로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는 것 같아서 더 좋다. 이번 둘레길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지리산둘레길 9코스인 덕산-위태 구간은 길이가 9.7킬로로 짧고 시간도 보통 사람들 걸음으로 4시간 정도 예상된다. 느림보인 나도 4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너무 짧아 아쉬워서 이날 나는 위태 마을에서 멈추지 않고 다음 코스의 일부인 궁항마을까지 걸었다. 그 덕분에 이후의 코스들을 걸을 때 시작 지점과 끝 지점을 지키지 못하고 중간중간 토막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냥 짧아도 한 구간씩 걷는 게 좋았을 것 같다. 아닌가? 그건 사람마다 다를 듯하다. 그래도 여기에서는 헛갈리지 않도록 한 코스씩 소개해야겠다.
이번 구간에는 감나무와 밤나무가 유난히 많은 지역을 지나가게 되므로 가을에 가면 더 좋을 것이다. 나는 2015년 5월에도 걷고 그해 10월에도 걸었다. 10월에는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들과 올케랑 함께 가서 역주행으로 위태 마을에서 덕산마을 쪽으로 넘어왔다.
이번에도 걷기 전에 유용한 정보를 확인하자.
- 교통편은 덕산(시천면 사무소 소재지)은 큰 마을이라서 인근 마을이나 큰 도시로 이어지는 대중교통이 좋지만 위태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는 없다. 덕산은 산청군이고 위태는 하동군이라 군 경계를 넘는다. 위태는 아주 작은 마을로 하루에 두 번 농어촌 버스가 다니는 걸로 검색된다. 주차는 위태 쪽에는 차를 세울만한 공간이 없으므로 덕산 강변 주차장에 세워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 덕산마을에는 식당이 있지만 걷는 중간과 위태 마을에는 아무것도 없다. 구멍가게조차 없으니까 물과 먹거리를 잘 챙겨야 한다. 지리산둘레길 중태 안내소 앞 쪽에 식당 간판이 있었는데 내가 갔을 때는 영업을 하지 않았다.
- 숙소는 덕산 마을에는 작은 모텔이 있고 위태 마을 주변에 펜션이 몇 개 있는 것을 보았다.
이번 구간의 시작은 덕산 마을의 약초 시장 옆 다리에서 출발한다. 거기서 한동안 강가를 끼고 아스팔트와 시멘트 길을 걷는다. 걷다 보면 나무 그늘 아래 예쁜 정자도 보고 더 예쁜 꽃도 보게 된다. 시원한 강을 바라보면서 걷는 것은 좋지만 아스팔트 길은 별로다. 이런 길은 오래 걸으면 발바닥과 무릎이 아프다.
지금 옆에 끼고 걷는 강은 덕천강이라는데 안내문을 읽어보니까 천왕봉에서 시작된 계곡의 물길로 하동을 지나 진주 남강으로 오며 낙동강이 되고 남해에 이른다고 한다. 우와. 천왕봉에서 남해까지 이어지는 물길의 일부라니 뭔가 신기하다. 하긴 대부분의 물길이 어느 산이나 샘물에서 시작해서 결국 바다에 이르게 되겠지. 하지만 지리산 천왕봉이라는 높고 깊은 산골짜기에서 시작해서 역사의 한 장면이 깃들인 진주 남강을 거쳐 아름다운 남해 바다까지 이른다고 하니까 더욱 멋진 거 같다. 아니면 이 안내문의 설명이 멋진 걸까?
둘레길을 걷다 보면 개성 넘치는 정원을 가진 집들을 보게 된다. 지난번에는 부잣집 별장 같은 곳을 보았는데 이번에는 비행기 모형이 있는 정원도 보았다. 나중에 둘레길 주변 집의 정원 사진만 모아봐도 재밌을 것 같다. 참 사람들의 취향은 각양각색이다.
또 양봉장을 본다. 이번에는 바로 옆을 지난다. 빠른 걸음으로. 햇볕을 피하기 위해 농부들의 일모자를 사서 썼는데 얼굴 주변을 그물로 감싸고 있어서 조금은 안전하지 않을까? 물론 벌떼들이 공격하면 그것들은 무용지물이겠지만 마음은 위안이 된다.
길가에 뜬금없는 약수터가 있다. 먹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늘이 시원하고 의자도 있으니까 쉬어가자. 자고로 정자나 의자가 있으면 쉬어가는 게 예의다. 약수터에서 조금만 더 가면 재밌는 간판을 보게 된다. 자세히 보니까 '여기도 펜션 있네'의 줄임말 '여펜네'이다. 센스 만점의 작명이다.
아스팔트길로 걷다 보면 커다란 다리 밑을 지나고 조금만 더 걸으면 길은 산 쪽으로 향한다. 아직은 포장도로이지만 강을 등지고 산으로 접어드니 산과 들이 온통 연두연두한다. 참 예쁜 계절이다. 앞쪽에 보이는 것들이 감나무인 것은 나중에 알았다. 식물 문외한이라 열매가 달리지 않으면 나에게는 그냥 나무일뿐이다. 가지를 뻗고 있으면 나무고 땅바닥에 붙어있으면 풀이라는 이 수준을 좀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식물 공부 좀 해야겠다.
산을 향해 난 길로 서서히 올라가다 보면 중태마을을 만나는데 거기에는 지리산둘레길 중태 안내소가 있다. 중태 안내소는 지리산둘레길이 조성되는 초창기에 농촌 마을과 함께 공존하고자 하는 둘레길의 소망을 담아 만들어진 곳이란다. 아주 작지만 아기자기한 중태 안내소에 들러 그 의미를 생각하고 공정 여행에 동참해 보자. 이곳에는 화장실도 있고 아주 커다란 나무 아래 쉬어갈 수 있는 데크도 있다.
중태 안내소를 지나면서 서서히 오르막길을 오르게 된다. 주로 개천길 옆을 걷다가 다리를 건너기도 하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은근한 오르막이라 힘든 줄은 모르겠다. 그리고 심심치 않게 동네 개도 만나고 염소도 보게 된다. 흑염소 일가족이 풀을 뜯고 있다. 그런데 푸른 풀밭이 아니라 자갈밭이라 뜯어먹을 풀이 별로 없어 보인다. 쟤네들 먹을 것들은 따로 챙겨주는 거겠지?
길은 유점마을로 이어지는데 이쪽은 죄다 감나무 밭이다. 그런데 봄에 걸을 때는 몰랐다. 위의 사진 중 왼쪽은 5월에 걸었을 때 사진인데 온통 푸릇푸릇한 나무들 뿐이다. 오른쪽은 10월에 걸었을 때 사진인데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지리산둘레길은 계절마다 다르므로 다른 계절에 또 걸어봐야 하는구나.
그리고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소중한 남의 밭작물에 손을 대면 안 되므로 가을에 지나가더라도 함부로 따먹으면 안 된다. 저번에는 어떤 사람이 '어머, 고추가 탐스럽게 열렸네.' 하면서 둘레길 근처에 있는 고추 하나를 툭 따는 걸 보았다. 어이가 없었다. 마트에서 '어머, 맛있어 보이네.' 하면서 슬쩍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그들 일행 중 한 사람이 나무라는 것을 보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경우에는 조카들과 함께 걸을 때 마을 할머니들께서 직접 감을 따서 조카들에게 주셔서 감사히 얻어먹었다. 이후로 어느 구간에서는 앵두나무가 신기해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까 주민 분께서 지금이 제일 맛있을 때니까 원하는 만큼 따 가라고 하셔서 한 움큼 얻어먹은 적도 있다. 앵두는 처음 따 보았다. 이렇게 걷다가 자연스럽게 주민 분들께서 직접 건네주시는 것은 정으로 여기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면 된다. 밝은 미소로 감사 인사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