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위태-하동호
양이터재를 넘으면 전망이 너무 좋은 길을 걷는다. 멀리 보이는 산줄기가 범상치 않다. 방향으로 보니 지리산 방면인 듯하다. 첩첩산중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중이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운데 사진이 다 담아내지 못한다. 카메라는 분명 인간이 만든 아주 멋진 기계이지만 그래도 인간의 눈이 인식하는 것만큼 찍어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 경치는 직접 가서 봐야 한다.
산 능선을 끼고 걸으니 전망이 계속해서 좋다. 저 멀리 지리산 줄기를 보면서 걷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한 가지. 산에 심어진 나무들이 일렬로 서 있다. 이 산에는 일부러 나무를 줄 맞추어 심은 것 같다. 아직 나무들이 다 자라지 못해서 이렇게 줄이 보이지만 몇 년 후 울창하게 우거지면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잘 자라라. 나무들아. 근데 나무들을 너무 촘촘하게 심은 것 아닌가 싶다.
넓은 길에서 다시금 숲길로 꺾어진다. 이번에도 벅수를 잘 보자. 그런데 안내문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비가 많이 왔을 때는 숲길에서 건너기 어려운 계곡 구간이 있으므로 지금 걷는 큰길을 따라 내려가라고 한다. 장마 기간에는 이 길은 걷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하긴 장마 기간에는 아예 야외 활동을 하기가 어려우므로 이곳에 올 일도 없을 것이다.
숲길을 들어서자마자 의자가 있어서 쉴 수 있다. 주변의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어 아주 편히 쉬어갈 수 있다. 참 고마운 나무들이다. 그런데 사진을 찍고 보니 멀리 구름이 희한하다. 어찌 보면 유령인 듯도 하다. 유령이 두 팔을 뻗친 것 같이 보이는 건, 내 눈이 이상한 걸까?
바위의 좁은 틈새에 작은 식물이 자라고 있다. 어쩌다가 씨앗이 거기에 떨어져서 그 틈새를 비집고 싹이 트고 자랐는지 신기하다. 잘 자랄 수 있을까? 길은 울창한 숲을 지난다. 나무들이 하나같이 다 잘생겼다. 수종도 다양하다. 이 길은 식생이 다양한 구간이라 하더니 정말 그러하다.
그리고 이 구간의 나무들은 참 개성이 넘친다. 자라는 방향도 자기 마음대로, 뻗어 나온 줄기도 자기 마음대로다. 지금까지 본 숲들 중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수종도 다양하지만 나무 형태도 다양하다. 아주 재미있는 숲이다.
숲길은 이내 계곡 길로 이어진다. 가느다란 물줄기가 폭포를 이루는 곳도 있다. 이렇게 계곡을 끼고 걷는 길은 동강-수철 구간하고 비슷한 느낌이다. 그때도 물소리가 길을 따라 계속되었는데 이번에도 그렇다.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어서 여기는 한여름에 와도 좋을 것 같다.
숲길 중간중간에 계곡을 몇 번 건넌다. 아까 숲길 입구에서 폭우가 오면 이 오솔길로 들어서지 말고 큰길로 돌아가라고 한 이유를 알겠다. 지금은 징검다리를 몇 개만 건너면 되지만 물이 많이 흐르면 아예 건너가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길도 많이 미끄러울 것이다. 지금은 아주 즐겁게 걸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번 길에도 대나무 숲이 나타났다. 대나무 숲과 여러 나무가 섞인 숲을 번갈아 지난다. 보통 대나무 숲이 나오면 이어서 마을이나 인가가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대나무 숲을 지나 또 다른 숲으로 이어진다. 숲 속에 대나무 숲이 있는 셈이다. 여러 모로 재미있는 구간이다.
적당한 위치에 의자가 있다. 그것도 외롭지 말라고 두 개나 있다. 아까 숲길 초입에 있던 쉼터에서 한참 걸어와서 다리가 아플 때에 만난 의자라 더 반갑다. 숲 내음을 맡으면서 한참 쉬어준다. 그냥 좋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적당히 다리가 아픈 것도 좋고 편하게 쉬어주는 것도 좋다. 바람 소리도 좋고 숲 냄새도 좋다.
숲 속 길을 걷다 보면 다시금 시멘트길이 나온다. 흙길이 끝나서 아쉽지만 목적지인 하동호가 가까워진다는 신호다. 아까 양이터재까지 제법 고도를 높여서 그런지 내내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여기서도 한참 동안 내려간다.
여러 가지 나무들이 있는 숲길을 지난다. 중간에 대나무 숲도 있다. 아까 걸었던 산속 길과 비슷하다. 다만 여기는 길이 잘 닦여진 시멘트길이라는 점이 다르다. 한참 내려가다 보면 갑자기 시야가 트이고 하동호가 보인다. 저 아래에 하동호를 바라보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므로 여기서 도시락 까먹어도 좋다. 내가 갔을 때에는 단체로 오신 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그냥 패스했다.
하동호를 끼고 걷는다. 옆으로 도로가 있는데 차들은 아주 가끔 지나간다. 곳곳에 쉬어갈 수 있는 의자들이 있다. 그리고 걷는 내내 멀리서 목탁과 염불 소리가 들린다. 호수 건너편에서 들려오는데 하동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들렸다. 이 정도면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이 아닐까 싶다.
길은 하동호댐 위로 이어진다. 하동댐을 건너가면 이번 코스가 끝난다. 댐 위를 걷는 것은 좀 신기한 경험이다. 다만 인도가 따로 없어서 차가 지나면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2023년) 하동호 중간에 다리를 놓는다고 공사 중이다. 하동호 주변으로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던데 그 중간 지점에 출렁다리를 놓는다고 한다. 지리산둘레길 주변으로 무언가 계속 개발되고 있다. 갈 때마다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좀 슬프다. 개발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리산둘레길 10코스인 위태-하동호 구간도 두 번 걸었다. 점점 두 번 이상 걷는 구간이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 두 번 이상 걷게 되면 변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보인다. 자연은 변하지 않는데 인간이 변한다. 인간이 만든 것들이 변한다. 물론 변하지 않는 것이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변하는 것이 다 나쁜 것도 아니다. 다만 내 마음은 변함없이 지리산둘레길을 사랑하는데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