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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1)

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위태-하동호

by 바람

2015년 5월에는 지리산둘레길을 3번 갔다. 너무나 좋은 계절. 걷지 않고는 못 배길 계절이었다. 덕분에 내 차가 고생이 많았다. 전국일주할 때보다 더 많이 운전한 것 같다. 게다가 인월에서 시작할 때보다 차로 약 1시간 정도 더 내려가야 하는 하동 구간에 접어들었다. 덕분에 집에서 출발 시간이 점점 빨라져 새벽 5시쯤 출발하던 것이 새벽 4시, 새벽 3시로 당겨지고 있다. 그래야 오전 8시나 9시쯤 걷기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5~6시간 이상 걷기 때문에 일찍 걷기 시작해야 저녁이 되기 전에 걷기를 끝낼 수 있다. 이 고생을 왜 사서 하는지... 미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짓이다.



지리산둘레길10코스.jpg 지리산둘레길 위태-하동호 구간(네이버 지도)

위태 마을에서 하동호까지 가는 구간은 총 11.5킬로이고 보통 5시간 정도 걸린다. 난이도는 '상'이라고 하는데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져서 그렇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둘레길이라는 것이 오르막 내리막이라고 해도 험한 산길의 오르막 내리막이 아니라서 슬슬 걸어가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앞서 밝혔듯이 나는 지난번 덕산에서 위태로 넘어온 날, 내친김에 위태에서 궁항마을까지 걸었다. 그래서 다시 걷기 시작할 때는 궁항마을에서 시작하여 하동호까지 걷고서 또다시 지나쳐서 그다음 코스까지 갔다. 그래서 시간을 정확하게 말하기는 좀 어렵지만 대략 6시간 반 정도 걸렸다.


그런데 이 구간에서 약간의 아픔이 있었다. 궁항마을에서 하동호, 그리고 하동호에서 삼화실을 지날 때의 사진을 날려버렸다. 아이폰을 수리한 후 동기화를 시키면서 실수하여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그나마 위태 마을에서 궁항마을까지는 사진을 건져서 다행이지만 위태-하동호, 하동호-삼화실 구간의 사진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이 구간의 여행기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여행기의 중요한 토대는 녹음과 사진인데 특히 국내여행은 녹음보다 사진이 중요하다. 그런데 사진을 날리고 나니 걸었을 때의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뭔가를 쓰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후 지리산둘레길 역주행을 하면서 2023년 3월과 4월에 드디어 이 두 구간을 다시 걸었다. 그래서 사진을 보강했고 이제는 여행기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2015년 5월에 걸었던 길을 8년 만에 다시 걸었다. 세월이 빠르게 지났고 나는 그만큼 늙었고 주변 환경도 변화했다. 하지만 듬직한 지리산의 모습과 지리산둘레길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유용한 정보를 살펴보자.

- 교통편은 위태 마을은 버스가 하루 두 번 다니고, 하동호 쪽은 10코스 종점이 하동댐에서 끝나기 때문에 대중교통이 없다. 하동댐으로 택시를 부르거나 내친김에 11코스 쪽으로 더 걸어서 내려가면 청암면이 나오니까 거기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 위태 마을 쪽에는 펜션이 좀 있고 하동호댐에는 리조트가 하나 있다. 중간 궁항마을에 민박이 있는데 민박 정보는 둘레길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고 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 중간에 식당이나 구멍가게를 거의 못 봤다. 따라서 물과 점심거리를 꼭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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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마을을 지나

위태 마을에서 마을을 가로질러 걷다 보면 길은 산속으로 이어진다. 살짝 오르막과 내리막이 산능성이를 끼고 이어지기 때문에 힘들지는 않다. 조금만 오르면 금방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멀리 네모 반듯한 밭들이 보인다. 가만 보면 산속에 있는 마을이지만 어떤 마을은 제법 너른 평지 구간이 있어서 큰 규모의 논이나 밭을 만들 수 있다. 반면 지난번 걸었던 3코스의 상황마을처럼 계단식 논이나 소규모 밭만 가능한 마을도 있다.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논이나 밭을 만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대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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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과 지네재

작은 개울을 지난다. 인공으로 만든 수로이지만 자연스러워서 개울이라고 불러주기로 했다. 누가? 내가. 주변에 과수원이 많다. 개울을 옆에 두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지네재다. 재를 넘는다는 느낌보다는 작은 언덕을 넘는다는 느낌이다. 여기에 지네가 많아서 지네재라고 부른 것인가 싶었는데 고개의 지형이 지네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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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과 오율마을

지네재를 지나 내려오면 물이 제법 많이 흐르는 계곡을 만난다. 여기서 발을 한번 담가주고 다시 길을 나선다. 숲길이 곧 끝나고 넓은 길로 이어진다. 그리고 오율마을이 있다. 오율마을은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다기보다는 여기저기 집들이 조금씩 흩어져 있다. 길을 걷다 보면 예쁜 집들이 많다. 이런 깊은 산골에 집을 짓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곧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산이 좋은데 도시도 좋다. 어쩌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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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과 벅수

오율마을 길을 따라 걷다가 다시 산길을 지난다. 산길로 몇 번 올라가고 내려가다 보면 다음 마을인 궁항마을을 알리는 벅수를 보게 된다. 벅수에는 출발지에서 몇 킬로 왔는지, 도착지까지 몇 킬로 남았는지가 표시되어 있어서 아주 유용하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를 가늠하면서 걷는 것은 큰 위로가 된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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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항마을

여기서부터는 2023년 사진이다. 새로 세워진 벅수도 있고 전에 없던 사랑방도 생겼다. 궁항마을이 굉장히 작은 마을이라고 생각하고 지났었는데 지금 보니까 제법 큰 마을이다. 전보다 마을이 커진 것일까, 아니면 지난번에는 스치듯 지나가서 작다고 느꼈던 것일까? 궁항마을회관에 지리산둘레길 새참 사랑방도 만들어졌다. 신기하다. 어쩐지 마을의 정이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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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항마을의 닭들

버스 정류장이 있는 큰길을 건너 마을을 가로질러 올라간다. 참, 궁항이라는 이름은 이곳의 지형이 활의 목 형태라서 붙여졌다고 한다. 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길가에 이렇게 닭장도 있다. 닭들이 아주 실해 보인다. 맛있겠... 다. 사진을 찍으려니까 얘들이 알아서 모인다. 얘들아. 모여 사진 찍는대. 붉은 벼슬을 뽐내는 수탉의 위용이 대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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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과 벅수

마을 길을 따라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이후로 몇 번의 좌회전, 우회전이 있는데 갈림길마다 벅수가 안내하고 있다. 걷다가 갈림길이 나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면 주변에 벅수를 찾으면 된다. 벅수가 없다면 그냥 직진이다. 문득, 우리 삶에서도 이런 벅수처럼 안내해 주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갈림길에서 망설여질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있다면 참 좋겠다.





IMG_3708.JPG 계속되는 오르막길

오르막길이 계속되는데 잘 닦여진 길이라 힘들지는 않다. 하지만 한참 올라가야 해서 좀 지루할 수 있다. 그럴 때는 주변의 나무를 보자. 나무들이 아주 다양하다. 길가의 풀들도 보자. 풀잎들도 아주 다양하다. 비록 내가 이름을 몰라서 제대로 불러주지 못하지만 초록초록하고 연두연두한 예쁜 나무와 풀들이 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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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밭과 폐허가 된 대나무 밭

올라가다 보면 대규모의 밭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네모 반듯하게 잘 가꾸어진 밭들이다. 이런 밭들이 제법 높은 지대까지 조성되어 있다. 네모 반듯한 밭들은 기계로 농사짓기 편할 듯하다. 그런데 한편에는 대나무 밭이 폐허가 되어 있는 구간도 있다. 일부러 베어버린 것일까, 자연스럽게 폐사한 것일까? 어쩐지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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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터재

오르막의 끝에는 양이터재가 있다. 이번 구간에서 마지막 고개다. 양이터재는 하동군의 옥정면과 청암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낙남정맥이 지난단다. 낙남정맥이 무엇인지 찾아보니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한반도 산줄기 체계 중의 하나란다. 우리나라의 산줄기는 하나의 대간(백두대간), 하나의 정간(장백정간), 13개의 정맥으로 이루어졌는데 정맥은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10대 강의 유역을 가름하는 산맥을 기본으로 삼고 있단다. 그래서 낙남정맥은 낙동강의 남쪽에 위치한 정맥이란다. 백두대간을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한반도의 산줄기를 이렇게 거대한 체계로 인식하였다는 것이 놀랍다. 나름 산꾼인데 이제야 이런 것을 알게 된 것도 놀랍다. 역시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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