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하동호-삼화실
2015년 5월에 걸었던 길을 2023년 3월에 다시 걸었다. 그때 날렸던 사진을 이제야 채운다. 어렴풋했던 기억에 하동호-삼화실 구간은 한 번도 산길로 들어서지 않고 시멘트길과 넓은 흙길이 섞여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걸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인간의 기억력이란 얼마나 빈약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어쨌든 2015년에는 지리산둘레길에 단단히 미쳐서 한 달에 두세 번 달려왔다. 전라남도 인월에서 시작한 길이 어느새 경상남도 하동으로 이어진다. 지리산은 정말 큰 산이 맞다.
지리산둘레길 11코스에 해당하는 하동호-삼화실 구간은 9.4킬로이고 약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난이도는 '하'가 맞다. 내 걸음으로도 4시간 정도였다. 그만큼 쉬운 길이어서 2015년에 걸었을 때에는 앞 코스의 일부인 궁항마을에서 하동호까지 걷고 이어서 하동호에서 삼화실까지 걸었다. 그래도 될 정도로 쉬운 길이다.
이번에도 유용한 정보를 알아보고 가자.
교통편은 하동호는 대중교통이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조사해 보니까 하동댐 옆의 리조트 앞에서 하동읍으로 나가는 버스가 하루에 5번 정도 있단다. 삼화실도 마찬가지다. 삼화실 에코하우스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버스가 다니는 길이 있는데 하루 4번 정도 하동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버스 시간만 잘 맞추면 이용가능하겠다.
먹거리는 평촌마을 즉 청암면사무소 있는 곳에 식당이 있지만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다. 작은 가게도 없으므로 물과 간식을 챙겨야 한다.
숙소는 하동호에 리조트가 하나 있고 삼화실 쪽은 종착점인 에코하우스가 있다. 에코하우스는 숙소로 운영한다고 하는데 내가 갔을 때는 문을 닫은 것 같았다.
하동호 출발지에 이런 조형물이 있다. 여기에 댐이 생기면서 9개의 마을이 수몰되었다고 한다. 그 마을이 고향인 분들을 위해 세워진 망향의 문. 그 너머로 아스라이 인공섬 두 개가 떠 있다. 어쩌면 다시는 갈 수 없는 고향을 품고 있는 섬일 수도 있겠다. 문득 섬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리산둘레길 하동호-삼화실 구간의 출발을 알리는 벅수 옆에 화장실이 있다. 그리고 화장실 옆으로 아주 작은 길이 있는데 거기로 내려간다. 길이 작아서 놓치기 쉽다. 표지판을 잘 보고 내려가자. 방향은 댐 쪽으로 나 있다.
예상한 대로 댐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다. 저 멀리 수문도 보인다.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니 제방이 더욱 거대해 보인다. 댐의 아래로 걸어간다는 생각을 하니 살짝 무섭다. 만약 지금이라도 저 댐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쓸데없는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 길은 평탄해서 힘들지는 않다. 다만 좀 황량할 뿐이다. 거대한 댐의 아래를 걷고 있고 주변은 황량하고 바람은 불고 마음까지 스산해진다.
댐 아래 구간을 벗어나면 좌회전하여 다리 밑을 지난다. 거기에 갑자기 커다란 운동장이 나타난다. 마을 주민을 위한 체육시설인 듯한데 마을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거 아닌가 싶다. 하지만 운동장에는 어린이들 몇 명이 공을 차고 있는 걸 보면 주민들이 이용하긴 하는 것 같다. 길은 댐에서 내려온 물이 흐르는 개천(횡천강) 옆으로 이어진다.
곧 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댐 아래에 있는 다리라서 그런지 매우 튼튼해 보인다. 댐에서 물을 많이 방류하더라도 다리는 안전해야겠지. 다리를 건너 어떤 건물의 옆으로 올라가면 도로가 나온다. 여기가 평촌마을이다. 아까 지나온 건물이 마을회관이란다.
평촌마을은 청암면사무소가 있는 제법 규모가 큰 마을이다. 보건지소도 있고 우체국도 있고 농협도 있다. 식당과 슈퍼도 보인다. 그리고 여기 복지회관에는 목욕탕도 있다. 주민들에게 아주 유용할 것 같다. 평촌이라는 지명은 앞서 걸었던 수철-성심원 구간에서도 보았는데 여기서 또 보게 된다. 되게 좋은 이름인가 보다.
그런데 여기 슈퍼 이름이 청학동 슈퍼다. 이 근처에 청학동이 있나? 아니나 다를까 검색해 보니까 아까 그 하동댐에서 하동호 방면으로 더 올라가면 거기가 청학동이란다. 아하. 여기가 거기구나.
차가 다니는 도로를 200미터 정도 가면 하월마을이 나오고 거기서 길은 횡천강 쪽으로 꺾어진다. 그리고 이런 징검다리를 건너게 된다. 지금은 물이 많지 않아서 여기를 건너지만 만약 물이 불어나면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된단다.
지금은 공사가 한창인 횡천강 옆 길을 걷는다. 공사 중이라 걷기에 길이 좋지 않다. 강이 범람할 경우를 대비한 공사인 듯하다. 횡천강에는 새들이 노닐고 있다. 신기하게도 여러 종류의 새들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서로 조금만 다르면 경계하고 물어뜯는 인간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보기가 좋다.
공사 중인 길은 곧 끝나고 다시 다리를 건너 아까 그 도로의 옆으로 난 길을 걷는다. 도로에 차들이 지나도 이 길은 별도로 조성된 농로라서 안전하다. 이런 길을 300미터 정도 걸으면 관점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관점마을이다.
어쩌다 보니 관점마을 사진이 없다.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는 증거다. 관점마을은 작은 전설을 가지고 있다. 마을 앞 청암천(아마도 지금의 횡천강인 듯)에 용소가 있고 용굴에 불을 때면 용소에서 연기가 났단다. 용굴과 용소가 지하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서 용소는 가뭄이 심해도 물이 줄지 않고 비가 많이 와도 토사로 메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용소는 관점마을 앞에 있던 듯한데 용굴은 어디 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관점마을 앞 청암천에 깊은 소가 있었고 물이 마르지 않아 사람들에게 신기하고 소중한 장소였던 듯하다. 지금은 하동댐이 건설되면서 횡천강의 물줄기가 줄어들고 이제 용소는 옛이야기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관점마을 초입부터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마을을 지나 조금만 더 올라가면 작은 고개를 넘는다. 푯말조차 없는 작은 고개다. 이름이 없는 고개라 아쉬우니 아까 전설을 가져와 용소 고개라고 부를까 한다. 내 마음대로 붙인 이름이다.
흙길은 금방 끝나고 다시 시멘트길이 나온다. 시멘트길 옆에는 큰 규모의 양봉장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벌이 있을까 무서워 얼른 지나간다. 길을 따라 다시 개천을 건너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명사마을 방면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이 갈림길에는 둘레길 푯말이 없어서 잠시 헤매었다. 내가 못 본 것일까? 한참 둘러봤는데 벅수를 찾지 못해서 결국 지도 어플을 보고 길을 잡아갔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