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가탄-송정
지리산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노고단, 천왕봉, 뱀사골, 피아골, 화엄사, 실상사 등이 있다. 그중 하나인 피아골에는 연곡사라는 절이 있는데 박경리의 '토지'에서 서희의 할머니 윤 씨 부인이 불공을 드리러 갔던 절이다. 이 절에서 윤 씨 부인은 동학당 접주 김개주에게 겁탈당하고 임신하여 구천을 낳고 그 구천이 훗날 서희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형수인 별당아씨와 도망을 하고...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이 연곡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번에 걷게 되는 가탄-송정 구간은 바로 그 피아골을 가로질러 건너게 된다.
가탄에서 송정까지는 10.6킬로이고 보통은 6시간 정도 걸린다. 난이도는 '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 걸음으로 약 6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가탄에서 기촌까지 가면서 고개를 한번 넘고 기촌에서 목아재까지 또 올라가기 때문에 오르막이 두 번이나 있고 산길이 많아서 난이도를 '상'이라고 한 것 같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둘레길의 난이도는 보통 등산보다는 쉽기 때문에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 사실 포장된 길의 오르막 혹은 내리막보다는 흙으로 된 산길이 더 수월하다. 내 속도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교통편을 살펴보면 가탄마을은 버스가 하루에 한두 번 있지만 화개장터까지 30분 정도 걸어내려가면 하동으로 가는 버스가 많다. 송정마을은 버스가 다니지 않지만 30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버스길인데 여기는 구례 가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지나간다. 가탄은 경상남도이고 송정은 전라남도이기 때문에 이 둘을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는 좀 복잡하다. 가탄과 송정 모두 차를 댈 공간이 없다.
먹거리는 출발지인 가탄마을과 중간에 만나게 되는 기촌마을에 식당과 가게가 좀 있지만 송정 쪽에는 아무것도 없다.
숙소는 가탄마을, 기촌마을, 화개장터에 민박, 펜션 등이 있다.
둘레길은 가탄마을에서 찻길을 건너고 개천다리를 지나서 화개중학교 옆으로 다시 또 찻길을 건넌다. 화개중학교 옆의 찻길은 봄에는 어마어마한 벚꽃터널을 이룬다. 위의 사진들은 2016년 봄에 찍은 것들이다. 왼쪽 사진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올라가는 벚꽃터널이다. 이른 새벽에 차로 지나가면서 찍어서 너무 흔들렸지만 분위기만이라도 전하고 싶어서 올려 보았다. 실제로 보면 너무나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오른쪽은 구례에서 하동까지 이어지는 도로이다. 이 길은 벚꽃철에는 거의 주차장으로 변하므로 이른 새벽에 가는 것이 좋다. 섬진강의 북쪽 도로로 좋지만 남쪽 도로도 일부 구간은 벚꽃 터널이므로 며칠 머물면서 여기저기 다녀보면 좋다.
벚꽃 터널을 이루는 찻길을 건너면 법하마을이고 둘레길은 마을을 지나 작은 오솔길로 이어진다. 보드라운 흙을 밟으면서 올라가면 작은재가 나온다. 정말 작은재라는 이름답게 힘들지 않게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큰재, 작은재라는 명칭은 너무 여러 곳에서 사용한다. 나중에 같은 명칭의 고개들 사진을 따로 모아봐야겠다.
숲 속 오르막 길은 이내 능선길로 바뀐다. 이 즈음 어디선가 경상남도에서 전라남도로 행정구역도 바뀐다. 숲에서 벗어나 시야가 트이는 구간에 들어서면 멀리 섬진강이 보이고 기촌마을과 은어마을 펜션단지가 보인다. 피아골 입구이다.
기촌마을에 도착했다. 멀리 건너편에는 은어마을 펜션단지가 보인다. 기촌마을과 펜션단지는 피아골 계곡물(연곡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기촌마을은 오래전부터 있던 마을이고 은어마을은 피아골 계곡물이 좋아서 펜션단지를 개발해서 생긴 마을이다. 여름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라고 한다.
피아골이다. 계곡물이 맑기가 그지없다. 이 징검다리는 지리산둘레길에서 벗어나 기촌마을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건널 수 있다. 피아골은 지리산의 봉우리 중 하나인 반야봉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맑은 물을 자랑하는 계곡이다. 워낙 깊은 산골짜기라 빨치산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피아골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피로 물들었다는 뜻인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피(기장)라는 곡물이 많았던 곳이라 피맛골이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둘레길은 피아골을 건너 은어마을 펜션단지를 지나 산으로 이어진다. 지난번 보았던 아기감이 벌써 이렇게 어린이감이 되었다. 그리고 짙은 냄새를 풍기던 밤꽃은 지고 벌써 이렇게 밤송이가 익어가고 있다. 이것도 어린이밤송이다. 다음에 걸을 때쯤에는 청년감과 청년밤송이가 되어 있겠구나.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집들이 간간이 보인다. 아주 작은 집부터 규모가 있는 집까지 다양하다.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살면 어떨까? 무섭지 않을까? 한적하고 좋을까? 매일 문을 열고 나서면 자연이 반겨주겠지?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본다. 이런 곳에서 한 달이나 일 년 정도 살아보고 싶다. 요즘 유행하는 한달살기, 일년살기를 해볼까 싶다.
길가에 아무렇지도 않게 꽃들이 피어 있다. 누가 일부러 가꾸지 않아도 길가에 소복하게 핀 야생화들이 너무 예쁘다. 개망초는 워낙 많이 봐서 알고 있는데 좀 독특하게 생긴 꽃이 있어서 꽃검색을 해 보았다. 하늘타리라고 한다. 꽃말이 '변치 않은 귀여움'이란다. 아... 옆에 개망초는 귀엽고 하늘타리는 화려하다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르다. 개망초 꽃말은 '화해'란다. 이 꽃말이라는 것이 뭐 다 제멋대로다. 어쨌든 오늘도 친구 하나를 알게 되었다. 하늘타리. 너도 참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