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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가는

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원부춘-가탄

by 바람

지난번 걸었던 삼화실-대축 구간(12코스)부터 앞으로 걷게 될 오미-방광 구간(17코스)까지는 하동에서 구례까지 이어진 길로 섬진강을 따라 걷게 되는 구간이다. 나는 이 구간이 참 좋다. 물론 지리산둘레길이 모두 다 좋지만 그중에서도 이 구간은 중간중간 산능선을 넘으면서 섬진강을 보게 되는데 기가 막힌 풍경들이 펼쳐져서 더욱 좋다. 그리고 곳곳에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구경거리들도 많다. 평사리 들판, 화개장터, 피아골 계곡, 구례 화엄사 등이 둘레길 중간에 있거나 근처에 있다. 이번에 걷게 될 원부춘-가탄 구간(14코스)은 종착지인 가탄 근처에 그 유명한 화개장터가 있다. 그야말로 장터 가는 길이다.



지리산둘레길14코스.jpg 지리산둘레길 원부춘-가탄(다음지도)


원부춘-가탄 구간은 총 11.4킬로이고 6시간 정도 걸리는 난이도 '상' 코스이다. 나는 대략 8시간 정도 걸렸다. 지난번 대축-원부춘을 걸으면서 신나서 원부춘을 지나 중촌마을까지 걸었다. 시간은 대략 5시간 정도 걸렸다. 그리고 역주행으로 가탄에서 중촌까지 3시간 정도 걸었다. 다시 걸음이 느려졌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에 비하여 난이도가 '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길이 넓은 농로 혹은 임도, 그리고 마을길이고 고도를 높이는 방식도 아주 서서히 높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름이라 해가 길어져서 그거 믿고 느그적대면서 걸어서 더 느려진 측면도 있다. 역시 사람은 마음자세가 중요하다.


교통편은 원부춘에서는 농어촌버스가 하루에 두 번 정도 있다. 가탄은 농어촌버스가 하루에 한 번 정도 있다. 하지만 가탄에서 30분 정도 걸어내려가면 그 유명한 화개장터이고 거기에는 버스터미널이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 원부춘이나 가탄은 양쪽 모두 차를 세워둘 만한 곳이 없다. 나는 화개장터에 숙소를 잡고 차도 거기에 세워두고 둘레길을 돌았다.

먹거리는 원부춘에서 형제임도삼거리를 지나 산속을 빠져나와 중촌마을을 지날 때까지는 아무것도 없다. 중촌마을에서 둘레길로 따라서 도심마을, 대비마을 등을 지나는데 이 마을들에도 식당은 없다. 다만 도심마을에서부터는 둘레길에서 살짝 벗어나 큰 도로로 나서면 거기는 계곡을 끼고 있어서 식당들이 좀 있다.

숙소는 원부춘에도 펜션이 좀 있고 중촌에서 가탄까지 그 주변에 펜션이 좀 있다. 화개장터 근처에도 숙소가 있므로 이용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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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부춘 출발해서 올라가는 길

원부춘 마을에서 형제봉 임도 삼거리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길도 한동안은 아스팔트길로 걷다가 이내 시멘트길로 바뀐다. 구불구불한 길을 계속 올라가다가 지칠 때쯤 시원한 시냇물을 만난다. 그나마 나무가 좀 우거진 임도로 이어져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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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봉 임도 삼거리를 지나

형제봉 임도 삼거리까지 4.66킬로인데 거의 3시간 정도 걸렸다. 올라오면서 사진도 거의 찍지 않았다. 오르막이라 힘들기도 했지만 별로 찍을만한 것이 없기도 했다. 그냥 별생각 없이 터덜터덜 걷다가 삼거리가 나오길래 '저것이 형제봉 임도 삼거리인가 보다' 하는 순간, 길가에 뱀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도 깜짝 놀랐지만 뱀이 더 놀란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이쪽을 힐끗 보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풀숲으로 사라졌다. 멀리서 볼 때는 나뭇가지처럼 보였는데 그게 뱀이었다니... 이후로 한동안 나뭇가지를 보고 혹시 뱀이 아닐까 깜짝깜짝 놀랐다. 보통 숲 속을 걸을 때는 뱀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스틱으로 앞 쪽을 쳐 주면서 가는데 이런 포장된 길에서 뱀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뱀은 그 길을 건너가는 중이었던 것 같다. 짧고 강렬한 만남을 뒤로하고 임도를 걸어 올라간다.




IMG_8262.JPG 형제봉 헬기장 쉼터

임도를 걸어 올라가면 간이 화장실이 있는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도 있다. 여기가 헬기장이라는데 헬기가 내려앉기에는 좁지 않을까 싶다. 날씨가 좋으면 지리산 능선이 잘 보인다는데 오늘 날씨는 아까부터 흐리다. 날씨가 좋았다가 나빴다가 한다. 이 쉼터에서부터 길은 숲 속 오솔길로 이어진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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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과 철조망길

올라왔으니 내려가야지. 숲길은 내려가는 길이다. 여기에도 개성 넘치는 나무들이 많다. 그중 하나는 산발나무. 머리가 산발인 것 같아서 산발나무라고 불러주었다. 물론 나무에게 동의는 구하지 않았다.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산길을 정신없이 내려가다 보니 갑자기 철조망이 쳐진 곳이 나온다. 길은 철조망을 끼고 옆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사유지의 경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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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꽃과 지는 해

6월은 밤꽃이 피는 계절인가 보다. 무어라 표현하기 거시기한 냄새가 곳곳에서 난다. 맛있는 밤이 익는 계절에 걸을 때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다. 밤나무가 많은 구간을 여름에 걸으면 밤꽃 냄새를 맡으면서 걸어야 하는구나. 근데 많은 꽃들이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데 왜 밤꽃은 이런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걸까?

깊은 산 속이라 해가 벌써 지고 있다. 아까 원부춘에서 멈추지 않고 신나게 걸었기 때문에 꽤 늦은 시간(저녁 7시쯤)까지 걷고 있다. 너무 느긋하게 걸었나 보다. 하지만 곧 산길을 벗어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IMG_8268.JPG 중촌마을

내려오는 길에 예쁜 쉼터(하늘호수차밭)도 있었는데 시간이 늦어져서 그냥 지나쳤다. 지나가면서 슬쩍 보니까 되게 예뻐 보인다. 다음에 걸을 때는 조금 여유 있게 와서 들러봐야지. 산속이 이미 어둑어둑해졌지만 큰길로 나오니까 다시 밝아졌다. 역시 산속은 해가 금방 진다. 같은 시간이라도 산속과 아닌 곳의 차이가 크다. 오늘의 걷기는 여기까지.




IMG_8424.JPG 중촌마을에서 도심마을을 향해

약 보름 후에 다시 지리산에 왔다. 약간의 사정이 있어서 가탄마을에서 중촌마을까지 역주행을 했지만 이 글에서는 순서대로 가야지. 중촌마을에서부터는 숲길이 아닌 포장된 길을 걷는다. 앞에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데 여기저기 예쁜 전원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경치가 좋고 길도 잘 되어 있어서 그런지 제법 집들이 많이 보인다.




IMG_8411.JPG 도심마을부터 이어지는 차밭길

작은 시냇물을 따라 길을 가다 보면 도심마을이 나오는데 마을 입구에 예쁜 펜션들이 몇 개 보인다. 그리고 길은 시냇물길이 아니라 산 쪽으로 꺾어지는데 여기서부터 차밭이 시작된다. 산비탈을 따라 구불구불한 차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저번에 비가 와서 잠깐 시간을 보냈던 쌍계사가 이 계곡의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쌍계사는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라고 한다. 이 일대의 차밭들은 천년이 넘은 차밭이라고 한다. 놀랍다. 이 깊은 산골에 천년 전에 차나무를 심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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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밭과 마을

여기 차밭은 얕은 언덕을 따라 형성되어 있고 중간중간 바위와 집, 길이 섞여 있다. 그리고 앞에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여기저기 경치가 좋다. '백년차밭길'이 있다는데 한번 산책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차밭과 지리산 풍경, 여기에 마을이 어우러져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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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와 호박밭

차밭길이 끝나면서 길은 대비마을, 백혜마을로 이어진다. 걷다 보면 아주 잠깐 흙길도 나오지만 곧 마을길로 이어진다. 날씨가 눅눅해서 그런지 길가에 작은 생물들이 꿈틀거리는걸 자주 보게 된다. 이건 민달팽이인 것 같다. 너무나 느리게 길을 건너고 있다. 무사히 길을 건너야 할 텐데... 그리고 호박밭으로 추정되는 밭도 보았다. 내가 아는 호박은 덩굴을 이루는데 이게 호박밭 맞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저렇게 구경하면서 걷다 보면 가탄마을이 나온다. 그런데 왜 가탄마을 사진이 없지? 가탄마을에서 버스가 다니는 길을 건너면 다음 코스로 이어진다. 그리고 버스길을 따라 올라가면 쌍계사고 내려가면 화개장터다. 버스 정류장 앞에 작은 가게가 있었다.


원부춘-가탄 구간은 이렇게 끝난다. 가탄마을에서 30분 정도 걸어가면 화개장터다. 화개장터는 이제 너무 유명한 관광지로 변해서 시골장의 면모를 기대하면 실망하기 쉽다.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이 또한 세상 변하는 이치에 따른 것이니 어쩌랴. 그래도 이 근처를 지나는 길이라면 들러서 구경할 만하다. 봄에는 벚굴이, 가을에는 버섯이나 약초들이 많이 나온다. 왁자지껄한 장터 분위기는 제대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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