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출발?

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운봉-인월

by 바람

운봉에서 인월까지는 9.9킬로이고 4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더 빨리 갈 수도 있다. 난이도 '하'답게 짧고 쉬운 구간이다. 길의 대부분이 평탄하고 마지막에 고개를 넘지만 임도로 된 길을 슬슬 올라가기 때문에 하나도 힘들지 않다. 대신 평지를 걸을 때 정말 햇볕 피할 곳이 없다는 점이 흠이다. 여기는 한여름보다는 낙엽이 물드는 가을에 걷기를 추천한다. 개천 옆을 한참 동안 걷는데 가을 산의 알록달록한 풍경을 보면서 걷는 것이 좋다.




지리산둘레길2코스.jpg 지리산둘레길 운봉-인월 구간(다음지도)

교통편은 운봉과 인월 모두 버스가 많다. 운봉에도 간이 버스터미널이 있어서 인근으로 이동할 수 있고 인월에는 커다란 버스터미널이 있어서 대도시와의 연결성도 좋다. 운봉과 인월을 직접 연결하는 버스는 운봉농협 앞에서 몇 대의 버스가 하루에 한 대꼴로 운행하는데 각각 경유지가 조금씩 다르다. 만약 차를 세워두고 싶다면 인월 쪽의 둘레길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운봉 쪽은 차를 세워둘 공간이 없다.

먹거리는 운봉과 인월에 식당이 많으나 중간에는 마땅한 식당이 없다. 인월 거의 다 가서 흥부골자연휴양림 앞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식당이 하나 있다.

숙박은 운봉과 인월에 각각 있으나 인월 쪽에 숙박시설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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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의 출발점

나는 2015년 10월 연휴에 내려와 첫째 날에 산동-주천 구간의 일부와 주천-운봉 구간의 일부를 걸었다. 그리고 둘째 날에 주천-운봉 구간 중 가장마을부터 걷기 시작해서 운봉을 지나 인월까지 걸었다. 그래도 될 정도로 쉬운 코스이다. 둘레길은 운봉초등학교를 지나 서림공원 앞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런 출발점 푯말이 잘 되어 있는 곳은 역시 1,2,3코스이다. 그 외에 대부분 시작점에는 둘레길을 알리는 작은 벅수만 서 있다. 내 생각에는 너무 큰 간판보다는 아담한 벅수가 더 좋은 것 같다. 나무로 만든 벅수가 너무 튀지도 않고 자연에 잘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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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서천리 당산의 부부 석장

서림공원에는 나무가 우거진 휴식 공간도 있고 이렇게 재미있는 장승도 있다. 남원 서천리 당산이라고 하는데 보통 당산에는 당산나무가 중심이지만 여기는 석장이 중심을 이룬다. 마을을 방어해 준다는 이 석장은 남자와 여자 한 쌍으로 부부 석장이라고 한다.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의 모습이라기에는 너무 수수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참, 두 번째 걸을 때 보니까 여기 서림공원에 스탬프 찍은 곳이 생겼다. 차로도 접근이 가능해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IMG_9600.JPG 람천을 끼고 걷는 길

이제부터 이런 길을 정말 한도 끝도 없이 걷는다. 멀리 마을이 보이고 그 마을을 지나면 또 다른 마을이 보이고 또 길은 계속된다. 옆에 있는 개천은 인월까지 연결되는 람천이다. 처음 걸을 때 익숙한 이름이라 더 반갑다. 람천은 지리산 고리봉이라는 곳에서 발원해서 전라북도 남원과 경상남도 함양군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하천이란다. 길고 긴 물길이 지리산에서 낙동강으로 이어진다. 흘러가는 물줄기처럼 그렇게 구름도 흘러가고 세월도 흘러간다. 나도 물길 따라 흘러간다. 그늘이 없다고 좀 투덜거리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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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 이어지는 둑길

중간에 다리를 건너서 걷다가 또다시 다리를 건넌다. 그러니까 람천을 왼쪽으로 두고 걷다가 오른쪽으로 두고 걷는다. 그리고 다시 다리를 건너면 왼쪽. 아, 그게 뭐가 중요한가? 그냥 하염없이 람천 옆을 걷는다. 이러다가 람천과 정들겠다. 아니, 이미 정이 들었나? 오늘도 구름이 열일하고 있다. 날씨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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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마을

하염없이 걷다 보면 갑자기 넓은 주차장과 화장실이 나타난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여기가 황산대첩비지와 송홍록 생가가 있는 비전마을이다. 황산대첩비는 조선시대 선조 때 태조 이성계의 황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인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이 비를 파괴했단다. 그것을 광복 후에 재건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 이름이 비전마을이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 민족이 어지간히 무서웠나 보다. 어떻게든 민족정신을 말살하려고 애쓴 흔적들이 보인다. 백두대간에 말뚝을 박은 것도 그렇고... 하지만 반만년을 이어온 역사가 있는 우리나라다. 그게 어디 하루아침에 사라지겠는가? 아, 갑자기 애국자가 되다니 진도가 너무 많이 나갔다.

평상에 앉아 숨을 돌리고 뒤를 돌아보니 송홍록과 박초월의 생가가 바로 보인다. 송홍록과 박초월은 우리 판소리계의 명창이란다. 송홍록은 동편제의 창시자라고 한다. 나는 판소리는 잘 모르지만 동편제와 서편제에 대해서는 주워들은 것이 있다. 동편제는 선이 굵고 단단한 소리가 특징이라면 서편제는 섬세하고 세련된 소리가 특징이라고 알고 있다. 물론 그 소리를 구분할 만큼의 수준은 아니지만 평상에 누워 쉬는 동안 내내 생가에서 은은하게 판소리가 흘러나오는데 뭔가 참 좋았다. 뭐랄까, 산에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처럼 그냥 자연스러웠다고나 할까? 한참 햇볕을 걸어와 모처럼 나무 그늘에서 쉬어서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그 그늘에서 쉬는 맛이 좀 달랐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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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길과 부층탑

다시 람천 둑길을 걷는다. 이번에는 나무가 좀 있어서 좋지만 그 구간은 길지 않다. 길은 개천에서 벗어나 도로 옆으로 이어진다. 그러다가 갑자기 약간 의외의 장소에 탑이 나타난다. 이 탑은 부층탑이라는데 별다른 안내가 없어서 무슨 용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부층탑에서 조금만 더 가면 버스 정류장이 나오고 거기서 큰 찻길을 건너야 한다. 횡단보도가 그려져 있지만 신호등은 없다. 차들이 쌩쌩 달려서 건널 때 좀 무서웠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찻길 옆을 걷는다. 2015년 처음 걸었을 때는 그냥 찻길 옆을 걸어야 해서 매우 위험했는데 지금은 찻길 옆으로 보도교가 놓여서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다행이다. 하지만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 부분은 좀 개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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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 저수지를 지나 임도로

찻길을 건너면 흉물스럽게 방치된 건물이 보인다. 규모가 제법 크던데 처음 보았을 때는 너무 오래 방치된 상태였고 두 번째 걸었때는 무슨 용도로 사용하려는 흔적이 보였지만 여전히 인적 없는 상태였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용도 폐기된 건물을 몇 채 보았다. 대부분 아주 큰 규모의 건물들이다. 그렇게 대규모의 건물을 지을 때는 좀 더 신중했으면 한다. 그 건물의 옆으로 저수지 둑이 보인다. 둘레길은 그 둑을 향해 올라간다. 옥계저수지이다. 지그재그로 둑을 올라서면 옥계 저수지가 한눈에 보이는데 정작 옥계 저수지 사진을 찍지 않았다. 두 번이나 걸으면서 왜 그랬을까? 길은 저수지를 등지고 임도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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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임도와 뱀

숲이 적당히 우거진 임도로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오른다. 그다지 힘들지 않은 오르막이다. 이번 구간 중에서 그나마 이런 산속 구간을 걸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다행이다. 오래된 나무들이 제법 많아서 숲이 깊다. 아, 걷다가 뱀도 봤다. 매번 말하는 것이지만 둘레길을 걸을 때는 되도록 스틱을 들고 다니는 것이 좋다. 험한 산길을 아니지만 숲길을 걸을 때에도 유용하고 이런 산길에서는 스틱으로 앞쪽을 짚어주면서 가면 뱀이 미리 도망갈 수 있어서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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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능선을 따라 내리막길

평탄한 임도로 올라가다가 산 능선을 타고 서서히 내리막이 시작된다. 내리막은 그리 길지 않다.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는 구간이 나오면 바로 흥부골자연휴양림이다. 흥부골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좌회전하면 길가에 작은 식당이 하나 나온다. 여기서 파전과 막걸리를 먹으면서 쉬었다가 간다. 사실 목적지가 코 앞이라 바로 가도 된다. 하지만 뭔가 아쉬운 마음에 일부러 쉬어간다. 이제 정말 끝이다. 지리산둘레길 종주가 끝난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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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코스 끝. 월평마을

마지막으로 아주 짧은 숲길을 지나 작은 언덕을 넘으면 이렇게 귀여운 할머니가 2코스의 끝을 알려준다. 월평마을이다. 이곳은 인월면에 속하는 마을인데 여기에 민박이나 식당도 있으므로 이용하면 좋겠다. 재미있는 벽화가 그려진 구간이 있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카페도 있다. 이 마을 앞 도로를 건너면 바로 3코스의 출발점이다.




IMG_9680.JPG 다시 출발점에 서서

2014년 8월에 출발했는데 2015년 10월에 다시 3코스 시작점에 섰다. 아, 감격스럽다. 여기서 다시 출발?



난 지리산이 참 좋다.

그 너른 품이 너무 좋다.

그 깊고 깊은 산세가 정말 좋다.

때로는 험하고 때로는 부드러운 지리산의 모든 것이 참 좋다.


그래서 노고단과 천왕봉을 가로지르는 종주도 좋고

이렇게 둘레둘레 휘돌아나가는 둘레길도 좋다.

제주의 올레길도 나름대로 매력 있고 좋지만

나는 지리산의 넉넉한 품을 걷는 지리산둘레길이 더 좋다.


종주를 마치고 나니 뿌듯하기도 하지만 무언가 삶의 목표가 없어진 듯한 허전함도 느낀다.

그래서 이번에는 둘레길을 거꾸로 돌아볼까 한다. 몇 군데 역으로 걸어보니까 전과는 다른 느낌이다. 느낌뿐만 아니라 실제로 달라진 것들도 많다. 길이 넓어진 곳도 있고, 없던 집들도 생기고, 가게나 식당도 들어서고.... 하긴 세상이 엄청나게 빨리 변해가는데 여기만 변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

그래도 되도록이면 지리산 주변의 풍경은 많이 변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리산이 인간들에게 변함없이 품을 내어주듯이 인간은 지리산을 지켜주었으면 한다. 아니, 지켜주지는 못하더라도 훼손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렇게 해서 길고 긴 지리산둘레길의 종주기를 끝내려고 한다.

이 매거진의 글을 브런치북으로 갈무리하려고 했는데 30편이 넘어서 그냥 매거진으로 놓아두어야 할 것 같다.

이 글은 내가 열정을 불태웠던 지리산둘레길을 걸으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쏟아낸 여행기다. 나혼자 신나게 떠들어댄 느낌이라 어쩌면 듣는 사람들은 좀 지루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나의 신나는 마음이 전해진다면 지리산둘레길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또 지리산둘레길에 처음 도전해 보려는 분들께 정보도 드리고 용기도 드리는 글이 되었으면 한다.


늘 그렇듯이 하나의 마무리는 커다란 허전함을 남긴다.

그러면 이젠 또 무얼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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