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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를 따라(2)

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주천-운봉

by 바람


회덕마을의 억새 지붕

산길을 벗어나는 곳에 주막이 있다. 주막에서 막걸리 한 잔 걸친다. 그리고 한동안 햇볕구간을 걸어야 한다. 회덕마을을 지나는데 마을을 관통하는 것은 아니고 마을을 멀리 바라보면서 지나게 된다. 이 마을은 평야보다 임야가 많아서 짚을 이어 만든 지붕보다 억새를 이용해서 지붕을 주로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두 가구가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고 하는데 멀리 보이는 나즈막한 집들이 그 집인가보다.





노치마을

회덕마을을 지나 논과 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다보면 노치마을이 나온다. 노치마을 회관 옆을 지나는데 정자가 있어서 쉬어갈 수 있다. 노치마을은 백두대간이 관통하는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한다. 고리봉에서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위에 있어서 비가 내려 빗물이 왼쪽으로 흐르면 섬진강이 되고 오른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되는 마을이란다. 오! 백두대간 위에 있는 마을이라고? 뭔가 멋지다. 둘레길은 마을 회관 옆 정자가 있는 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다시 논과 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이어진다.





덕산 저수지

10월이라 추수가 끝난 논이 휑하다. 좀 스산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산이 아직까지 푸르러서 좀 위로가 된다. 멀리 덕산저수지가 보인다. 덕산저수지를 바라보면서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반가운 그늘이다. 얕은 산의 능선길을 따라 걷다보면 가장마을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심수정과 무인판매 주점

가장마을로 들어서기 전에 덕산저수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에 큰 정자가 하나 있다. 정자 옆은 어느 집안의 묘역이 크게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정자 뒤쪽에 무인판매 주점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걷는 동안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엄청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다. 둘레꾼들도 있고 동네 주민들도 있는 것 같다. 아, 무인판매 주점에는 컵라면도 있고 냉장고에는 곁들여 먹을 김치도 있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앉을 자리가 없어서 여기를 그냥 지나쳤는데 두번째로 걸었을 때는 한적해서 컵라면과 김치를 먹었다. 그런데 석박지 같은 무김치가 너무너무 맛있었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었다. 다음에도 가면 꼭 컵라면과 김치를 먹을 것이다.





가장마을

정자에서 내려서면 바로 가장마을이다. 가장마을도 재밌는 곳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화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라서 가장(佳粧)마을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농사짓는 움막터를 뜻하는 가장(佳庄)마을로 부른단다. 선녀가 화장하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그런데 선녀도 화장을 하나? 어쨌든 둘레길은 가장마을 안쪽으로 들어서지 않고 옆으로 스쳐 큰 길로 이어진다. 길가에 정자도 있고 간이 화장실도 있다.

대부분 마을마다 마을 분들이 쉴 수 있는 쉼터 혹은 정자가 있다. 어떤 곳은 냉장고까지 설치되어 있는 곳도 있다. 날씨 좋을 때 마을 잔치를 하기도 좋고 둘레꾼들이 가끔 다리를 쉬어가기도 좋다. 어떤 곳을 지날 때는 마을 분들이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우고 계시기도 했다. 잠시 다리를 쉬고 있으니까 어떤 할머니는 뭐하러 힘들게 걷냐고 물으시기도 하고 어떤 분은 물 마시고 가라고 권하기도 하신다. 참으로 정겨운 모습이다.





개천 옆 둑길

가장마을을 지나면서 개천을 따라 둑길을 걷는다. 정말 하염없이 하염없이 둑길을 걷는다. 개천을 건너도 다시 둑길이 이어진다. 둑길에서 잠시 벗어나 행정마을을 지난다. 둘레길은 행정마을을 관통하는데 정자가 있는 마을회관 앞으로 이어진다. 행정마을을 지나 또다시 개천 옆 둑길을 한참 걷는다. 이 개천은 '람천'인데 처음 걸었던 인월-금계(3코스) 구간에서 처음 만났던 그 개천이다. 출발했던 곳에 가까워지고 있다.




둑길 풍경

그런데 개천 둑길 구간은 햇볕을 피하기 어렵다. 여름보다는 덜하지만 가을에도 한낮의 햇살은 강렬하다. 간간이 나무가 우거진 곳도 나오지만 너무 짧다. 하지만 투덜대기에는 경치가 예쁘다. 길가의 갈대도, 코스모스도 하나의 풍경이 되어 준다. 꽃도 보고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면서 걷다보면 다리를 건너게 된다. 다리를 건너면 묘목들이 나란히 심어진 임업시험장 옆을 지난다. 임업시험장을 지나면 바로 운봉마을이다.





운봉마을

운봉마을은 춘향전에서 잠깐 언급되는 마을이다. 변사또 생일에 암행어사가 잔치에 슬쩍 끼어들어 음식을 얻어먹는 핑계로 시를 짓는데 이를 보고 운봉 사또가 눈치채는 장면이 나온다. 그 운봉 사또가 바로 이 운봉마을의 사또다. 그때도 여기는 규모가 큰 마을이었을까? 여기 버스 정류장에는 인근의 여러 마을로 가는 버스들이 지나가서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도 편하다. 참, 그리고 운봉마을에서 바래봉으로 올라가는 길에 지리산허브밸리도 있는데 여기가 철쭉피는 시기에는 또 엄청나게 붐비는 곳이다. 차를 가지고 오려면 이 시기는 피하는게 좋다. 둘레길은 운봉마을을 가로질러 버스 정류장도 지나고 농협도 지나 운봉초등학교에서 좌회전하여 끝난다.


주천-운봉 구간은 규모가 큰 마을도 많이 지나고 큰 길도 여러번 지나게 된다. 이 길은 운봉이나 산내 사람들이 남원으로 장을 보러 다니던 옛길을 따라 이어지는데 재밌는 이야기거리를 많이 가지고 있는 구간이라 이런저런 정보를 미리 알고 걸으면 더 즐기면서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초반부에는 숲길을 지나지만 그 후로는 농로와 둑길을 주로 걷게 되어서 가급적 여름보다는 봄이나 가을이 걷기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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