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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닝리 Feb 10. 2023

의자를 빼버릴 거야

미닝리 단편소설


 시작은 별 거 아니었다. 오현석 대리가 자리에 앉으려는 사미진 과장의 의자를 빼면서부터 일련의 사건이 시작되었다. 그저 오 대리의 장난기가 조금 지나쳤을 뿐이었다, 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 과장은 “우라라라”라는 우스꽝스러운 비명과 함께 손을 앞뒤로 크게 휘저으며 엉덩방아를 찧게 되었고, 마침 휴가자 하나 없던 조용한 사무실의 모두가 그 광경을 적나라하게 목격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몰려와 걱정하는 말을 건넸지만 그 이면에 담긴 비웃음을 회사생활 15년 차인 사 과장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사 과장은 그날 ‘큰 대(大)’자로 누워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오 대리는 ‘이렇게까지’ 넘어질 줄 몰랐다며 거듭 사과했고 평소 오 대리와 사 과장은 친했기에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 과장은 뼈에 금이 가서 한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고 결국 이 사건 이후 오 대리와 사 과장은 어딘가 서먹해졌다. 사 과장은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넘어질 줄 모르고 한 짓이라면 대체 ‘어떻게까지’ 넘어지라고 한 짓인 걸까.


 그러나 정작 사 과장의 마음에 복수심이라는 불을 지른 건 부서 막내인 김삼식 주임이었다. 사 과장은 오 대리보다도 김 주임이 더 미웠다. 그날 사 과장을 내려다보며 가장 크게 웃어댄 것도 김 주임이었고 그날 이후 ‘울랄라 과장님’이라며 친한 척 놀려대는 것도 김 주임이었다. 사 과장은 그때마다 썩은 미소를 날리며 좀 닥치라는 눈치를 줬지만, 이 눈치도 코치도 없는 김 주임은 질리지도 않고 놀리기를 계속했다.

 ‘오냐, 삼식아. 요즘 회사생활 편하다 이거지?’


 결국 사건이 터졌다.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오는 길, 김삼식 주임이 스치듯 사 과장 옆을 지나치며 ‘울랄라 울랄라’ 깐족댔고 그렇게 자리에 앉으려는 타이밍에 마침 사 과장이 그의 의자 옆을 지나고 있었다. 그건 하늘이 주신 복수의 기회였다. 사 과장은 자연스러운 손목 스냅 하나로 의자를 빼버렸고 김 주임은 바닥에 주저앉으며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바지에 왕창 쏟아버렸다. 밝은 베이지색 바지가 순식간에 짙은 커피로 물들었다. 사 과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지렸냐?’ 하지만 그건 속으로만 생각하고 겉으로는 걱정하는 내색을 했다.


 “아이고 어떡해? 지나가려고 의자를 잡다가 그만 실수해 버렸네. 누가 보면 오해하겠어.“

 그때 이 사태를 구경하러 온 이 팀장이 농담이랍시고 더러운 한마디를 던졌다.

 “삼식이 물똥 쌌냐? 회사에 기저귀는 차고 다녀라.”

 다들 깔깔댔다. 김삼식 주임만 씩씩대며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사 과장은 통쾌했다. ‘어때? 삼식아. 남이 당하는 건 웃기고 자기가 당한 건 꽤 아프지?’


 그날부터였다. 부서원들이 서로 의자를 빼기에 혈안이 된 것은. 사 과장의 복수가 일종의 트리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복수는 복수를 낳았다. 분노에 찬 김삼식 주임이 이상두 팀장의 의자를 뺐고 이 팀장은 다시 사 과장의 의자를 뺐고, 사 과장은 오 대리의 의자를, 오 대리는 김 주임의 의자를 빼는 등 잠깐의 방심도 허용할 수 없는 그야말로 약육강식 무한경쟁의 시대가 열렸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모두들 의자에 앉기 전 자신의 자리가 무사한지 살펴봐야 했다.


 급기야 김삼식 주임이 박 부장의 의자를 빼버리기에 이르렀다. 하필 그날은 김 주임이 박 부장에게 늦게 출근했다고 혼난 날이었다. 일순 부서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래도 지금까지 부장 자리를 건드린 적은 없었고 그건 확실히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이미 장난이라고 할 만한 수준은 초월해 있었지만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하하, 부장님. 요즘 우리 부서에서 유행하는 의자 빼기 장난입니다.”라며 김삼식 주임이 어색하게 웃었지만 그 말에 웃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일호 부장은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처럼 바닥에 주저앉은 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이 사태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숨 막히는 시간이 한참이나 흐르고 나서 박 부장이 천천히 일어나 입을 열었다.

 “허허, 요즘 MZ 세대는 회사에서 이런 장난도 치나 봐?“

 “죄송합니다. 제가 지나쳤습니다.“


 일단 세대 차이인 걸로 쿨하게 넘겨주기로 한 것 같았다. 모두들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삼식 주임도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사건이 마무리되나 싶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출근해 보니 사무실의 모든 의자가 복도에 나와 있었다. 다들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쭈뼛대며 하나씩 의자를 끌고 가서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자 개수가 하나 모자랐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설마 하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일호 부장을 쳐다봤다. 예상대로였다. 박 부장은 잔인하게 웃고 있었다. ‘부장님?!‘


 “자, 오늘부터 한 사람은 의자 없이 일합니다. 의자를 하나 뺐어요. 앞으로는 일찍들 출근하셔야 의자를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평소 가장 늦게 출근하는 편인 김삼식 주임은 사색이 되었다.


“지금은 ‘장난’이지만 그래도 너무 자주 의자 없이 일하는 사람은 정말로 자리를 빼버리는 수가 있으니 조심하세요.”


 박 부장의 엄청난 복수극이었다. 그날 이후 출근길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매일 의자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같은 지하철에서 내리면 마치 출발선에 선 육상선수들처럼 전력질주를 시작했고, 엘리베이터에 먼저 탄 사람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동료를 보면 닫힘 버튼을 연타해서 눌렀다. 하루하루 긴장의 연속이었다. 다들 지쳐갔지만 이제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팀장이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자 의자가 사라져 있었다. 그날 가장 늦게 출근했던 오 대리가 이 팀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의자를 가로챈 것이다. 이 팀장은 부장에게 항의했지만 박 부장은 냉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게 누가 근무시간 중에 함부로 이석합니까?”


 그날부터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 이제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게 되었다.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그 의자는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업무시간에 화장실을 가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아침부터 그 흔한 커피 한 잔 마시지 않고 일을 시작했다. 점심시간도 큰 문제였다. 처음에는 점심을 후닥닥 빠르게 먹고 복귀하는 수준에서 시작해 점점 편의점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음식을 사 오는 걸로 바뀌더니, 결국 다들 도시락을 싸와서 자리에 앉은 채로 점심을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매일 새벽같이 출근해서 하루종일 자리만 지키다 퇴근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고통의 시간이었다. 마치 새로 고안된 신종 사무직 노동착취 기법 같은 걸 테스트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더 놀라운 것은 박일호 부장 또한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서 하루종일 자리만 지킨다는 것이었다. 이걸 솔선수범이라고 해야 할지 감시감독이라고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저런 게 바로 회사의 관리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라는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 경영관리부와 예산 관련 회의가 잡혔다. 원래는 팀장과 실무자 하나만 대표로 참석하면 되지만 자신의 자리가 빼앗기는 게 두려웠던 이 팀장이 술수를 썼다. 이례적으로 부서 전원이 참석하자는 것이다. 예산 협의 과정에 모든 실무자가 참여해야 그 소중함을 안다는 딱 봐도 대충 갖다 붙인 것 같은 명분을 들어 전원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마침 다들 하루종일 자리에 앉아있는 삶이 고달프던 참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경영관리부 예산 담당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침착함을 찾고 부서 예산안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렇게 우르르 몰려오신다고 예산을 막 드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원래 재수 없기로 유명한 직원이었다. 입사 이래 10년 넘게 회사 예산만 담당하다 보니 마치 자기 지갑에서 돈을 꺼내 각 부서에 시혜적으로 꽂아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항상 거들먹거렸다. 실제로도 사장과 친인척 관계라는 소문이 있었으니 그게 사실이라면 자기 지갑이라고 생각할 만도 했다. 온갖 이유를 들어 예산을 삭감하고 그 성과로 본인은 고속 승진과 보너스를 받곤 했다. 마른 걸레도 쥐어짜면 물방울이 나온다는 게 그의 신조였다.


 결국 언성이 높아졌고 경영관리부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팀장이 중재하여 흥분을 겨우 가라앉히고 다시 자리에 앉으려는 찰나. 그 찰나의 순간 모든 직원들의 눈이 경영관리부 직원의 의자에 꽂혔다.


 그건 일종의 본능이었다. 무수한 시간 동안 의자를 빼는 일에 단련된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특유의 타이밍 감각. 지금이 바로 의자를 뺄 타이밍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목이 저절로 나갔고 의자는 빠졌고 경영관리부 직원은 넘어지면서 머리를 탁자에 찧었다. 회의는 파투가 났고 경영관리부 직원은 ‘가만있지 않겠다’며 씩씩거리며 나갔다.


 사실 그 자리의 모두가 통쾌했다. 모처럼 살벌한 무한경쟁에서 벗어나 부서가 하나로 단합된 느낌이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은 화기애애했고 이 팀장이 흔쾌히 오늘은 자신이 자리를 양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부서에 돌아가자 박 부장이 무척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박 부장은 전화를 끊고 엄중하게 말했다.

 “사장실 호출이야.”


 이 팀장이 사장실 비서를 통해 수소문하니 다 큰 어른들이 뭐 하는 짓들이냐고 호통 소리가 바깥까지 크게 들렸다 했다. 예삿일은 아니었다.


 박 부장은 퇴근 시간이 훨씬 넘어서야 자리에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하루종일 이석을 못해 지친 몸을 이끌고 칼같이 퇴근했을 텐데 그날은 다들 부장을 기다렸다. 박 부장의 표정은 의외로 편안했다.


 “부장님?”

 이 팀장이 말을 꺼냈다. 하지만 돌아온 박 부장의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 해고당했어.”

 “네?”

 “남들 의자 빼려다가 내 의자를 빼게 생겼네.“


 박 부장은 자리에서 주섬주섬 자기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팀장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그래서 어떡하시려고요?”

 “뭘 어떡해? 집에 가야지. 그런데 내 걱정할 때는 아닌 거 같은데? 자네들도 다 발령이래. 지방으로 산산이. 우리 부서 해체야.”

 “네?”

 “그리고 몇몇은 감봉이랑 정직 같은 징계도 받을 거래.”

 “그게 누군가요?”

 “몰라. 나도 잘리는 마당에.“


 막내인 김삼식 주임이 울기 시작했다. 울음은 곧 전염되어 부서 전체가 울먹였다. 다들 박 부장이 태연하게 짐을 정리하는 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정작 박 부장은 짐을 싸는 게 아니라 하나씩 꺼내서 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안 가져가세요?”

 “다 필요 없어. 난 하나만 가져갈 거야.”

 “네? 뭘 가져가시는데요?”

 박일호 부장은 대답 없이 웃었다.


 그리고 다음 날, 회사에는 사장실 의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 부장님…’


 그래도 덕분에 남은 사람들은 잠깐이나마 웃었다.


< 끝 >


오, 사, 삼, 이, 일.

그러니까 카운트다운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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