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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닝리 Aug 18. 2021

브레멘 클럽 8. 음악대 편(하)

미닝리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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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저거 우리 노래잖아!”


 어떻게 그 노래를 잊을 수 있을까. 인생에서 진정한 영끌*의 순간이 있다면 네 친구들에게는 그 노래를 작곡했을 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모든 선율, 모든 박자, 모든 가사 하나하나에 그들의 영혼이 깊이 담겨 있었다.


 *영끌 : '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의 줄임말

 

 "아니 우리 노래를 무슨 유명 작곡가가 준 것처럼 소개해?"

 "돈도 훔치더니 이제 노래까지 훔치네!"

 "저것들을 어떻게 혼내주지?"


 네 친구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계지훈이 창문 너머 건물의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악기들을 가리켰다. 사기꾼들은 그 건물이 정말 밴드 공연장처럼 보이기를 원했는지 갖출 건 다 갖추고 있었다. 네 친구가 눈빛을 교환했다.


 “기억나? 우리 라이브 버전 따로 만들었잖아. 그거 여기서 하자!”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더 의논할 것도 없었다.


 먼저 나기한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당나귀처럼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지만 테이블에서는 아직 누가 들어온  모르는 눈치였다. 아니, 누가 들어올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던 듯하다. 아무도 이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고 있었다. 기한이 기타를 매고 섰다.


  뒤로 견상근이 사냥개처럼 무서운 얼굴로 따라 들어가 베이스를 잡았다.  그래도 험상궂은 얼굴의 상근은 지금 노려보는 눈빛만으로도 상대를 충분히 제압할  있을  같았다.


 다음으로 고양희가 들어가 마이크를 잡고 섰다. 노래를 준비하기 위해 눈을 감고 한껏 몰입한  완전히 달라진 표정으로 눈을 떴다. 결연한 눈빛이 고양이처럼 반짝였다.


 마지막으로 계지훈이 처럼 푸드덕 거리는 소리를 내며 날렵하게 날아 드럼 앞에 앉았다.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빠른 움직임을 보여줄  느껴지는 특유의 박력이 있었다.


 사운드 체크가 시작되자 그제야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이쪽을 돌아봤다.


 “저 사람들 뭐야?”


 사기꾼들은 방해를 받아 불쾌한 듯했다. 그들은 불청객들을 제지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이윽고 사색이 되었다. 오래전 그들이 사기를 쳤던 네 사람의 얼굴을 알아본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딱 딱 딱 딱

 드럼 스틱의 신호에 맞춰 연주가 시작되었다. 반주 위에 양희의 목소리가 얹어졌다.


  "아직 꺼지지 않은 불빛 위해 노래 부르자~"


 20년 만에 맞춰본 라이브임에도 전혀 어색하거나 낯설지가 않았다. 마치 어제 맞춰본 것처럼 모든 합이 딱딱 맞아 들어갔다. 이렇게 다시 함께 노래하길 얼마나 꿈꿔왔던가. 마치 이날을 위해 그 모든 시절들이 존재해온 것 같았다.


 노래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기한과 상근이 눈빛을 교환했다.


 ‘할 수 있을까?’

 ‘해야지!’


 아마 그런 얘기를 눈빛으로 주고받은 것 같다.

 양희의 고음이 시원하게 뻗어 나가고 드럼이 가장 힘차게 내리쳐진 그 순간, 20년 전 연습한 것처럼 기한과 상근이 텀블링을 시작했다. 기타와 베이스가 부딪히고 두 사람은 땅에서 뒹굴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잃을 게 없던 그 시절처럼 무한한 해방감으로 몸을 던졌다. '덤블링 팬더즈'의 완벽한 부활이었다.


 멋진 건지 엉망진창인지 모를 아무튼 열정에 가득한 공연이 끝나자 장내에 다시 적막이 돌아왔다.


 짝, 짝, 짝.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젊은 밴드 리더가 잠시 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뒤이어 나머지 밴드 구성원으로 보이는 친구들도 박수를 쳤다. 작은 환호성도 나왔다. 사기꾼들은 어느새 도망치고 없었다.


 기한은 젊은 밴드에게 그간의 상황을 대략 설명한 뒤 다시는 저런 사기꾼들에게 넘어가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전하고 돌려보냈다.


 꼬르륵.

 이제 막 인생 최고의 연주를 마친 네 친구들은 급속도로 허기가 지는 것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 사기꾼들이 앉아 있던 테이블에 시선이 절로 갔다. 좋은 음식들을 잔뜩 차려놓고는 손도 대지 않은 게 많았다. 아무래도 사기를 치느라 바빴던 모양이었다. 네 사람은 잘 차려진 식탁에 앉아 마치 한 달은 굶었던 것처럼 맛있게 먹었다.


 "괜찮냐?"

 "부서질 것 같아. 내 관절이 이제 내 관절이 아니야."

 "나도 그래."

 “마셔 마셔!”


 키득거리며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던 네 친구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할 무렵 사기꾼들이 돌아왔다. 슬그머니 들어온 사기꾼 하나가 네 사람이 잠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테이블 앞에서 손을 휘휘 저었다.


 그때 고양희가 번쩍 눈을 떴다. 깜짝 놀란 사기꾼이 뒷걸음질 칠 때 양희의 손가락이 그 얼굴을 할퀴었다. 뒤로 돌아 달아나려고 하자 견상근이 주먹으로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악 소리를 내며 문으로 뛰는 사기꾼을 나기한이 발로 뻥 소리가 나도록 찼다.

 “경찰이죠? 지금 그 사기꾼들이 돌아왔어요!”

  계지훈이 전화기를 들고 목청껏 외쳤다.


 사기꾼들은 그 길로 도망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후에 알게 된 거지만 그 공연장 건물의 명의는 가짜 신분증으로 되어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위조된 가짜 신분증에는 기한의 사진이 박혀 있었다. 나중에라도 사기꾼들이 건물을 찾으러 올 것 같진 않았다.


 네 친구들은 이곳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건물 입구에 '브레멘'이라는 간판도 달기로 했다. 브레멘 클럽은 결국 찾지 못했지만 별 상관없었다. 이곳이 브레멘이면 될 것 같았다. 네 친구들은 이곳에서 공연도 하고 술도 마시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 끝 >


 


 


 그리고 후기.

 제목만으로도 이미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쓰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부족한 소설을 제가 어릴 적 사랑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힘이 되어준 인생 동화, 그림 형제의 <브레멘 음악대>에 바칩니다. 이 동화의 가장 놀라운 반전은 결국 이 동물들이 브레멘에 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브레멘을 목표로 출발했지만 결국 브레멘이 아니더라도 행복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았던 것이지요.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소외된 당나귀와 멍멍이, 고양이와 닭들을 응원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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