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닝리 단편소설
나기한과 견상근, 고양희와 계지훈은 벌써 같은 길만 몇 번째 맴돌고 있었다. 문제의 브레멘 클럽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네 사람은 당장 브레멘 클럽에 가서 밴드 면접을 보자며 패기 넘치게 택시를 타고 출발했지만, 지도 앱에 의존해 도착한 곳은 아무리 봐도 라이브 클럽 같은 게 있을 것 같지 않은 골목이었다.
“나기, 지도 똑바로 본 거 맞아?”
“이상하다. 분명 위치는 여기로 찍히는데.”
지도 앱을 보던 기한은 큰 나무 밑에서 핸드폰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위치를 찾고 있었다. 상근은 그 옆에 서서 팝업창에 안내되어 있던 전화번호로 계속 전화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전화를 해도 신호만 무심히 갈 뿐 누구도 받지 않았다. 아직 저녁 8시 무렵, 라이브 클럽이 문을 닫을 시간은 아니었다. 클럽이 없어지거나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모두의 마음속에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을 때였다.
“치킨아, 위험해!”
양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훈이 계단 난간을 아슬아슬 디디며 전봇대를 타고 높이 올라갔다. 두터운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아니, 쟤 왜 저래?”
모두가 깜짝 놀라 전봇대 밑으로 달려갔을 때 꼭대기까지 오른 계지훈이 외쳤다.
“얘들아! 저기 뭐 있다!”
대체 뭐가 뭐인지 모를 다소 심오한 철학적 외침을 던진 지훈이 전봇대에서 내려와 ‘뭐’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그들이 빙글빙글 돌았던 골목의 한가운데 그럴듯한 불빛이 보이는 건물이 하나 있다는 것이었다. 지훈은 건물 하나를 관통해서 지나가면 그곳에 이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들은 목적지 주변만 맴돌았던 것 같다는 것이다.
“일단 거기로 가보자!”
기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훈이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접근성이 떨어지는 위치에 라이브 클럽 같은 것이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굳이 그 자리에서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거기서 고기나 좀 먹을 수 있으면 좋겠네.”
상근의 중얼거림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웃음소리에 조금은 민망했는지 상근이 변명을 덧붙였다.
“아니, 아까 갑자기 치킨이가 오는 바람에 한 마리를 넷이 나눠 먹었잖아. 한 마리를 넷이. 말이 되냐?”
과연 도착해 보니 지훈의 말처럼 겉보기에 그럴듯한 건물이 하나 있었다. 카페나 식당처럼 보이기도 하고, 보기에 따라 술집이나 라이브 클럽 같기도 했다. 여기가 정말 브레멘 클럽인가 하고 살펴보는데 딱히 간판이 없었다. 나기한이 창문을 기웃거리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기한의 굳은 표정을 본 지훈이 물었다.
“나기, 뭐가 보이는데 그래?”
“뭐가 보이냐고? 일단 안주와 술로 가득한 테이블이 하나 있는데….”
그 말에 상근이 눈빛을 반짝이며 창문으로 다가왔다.
“거기 앉아 있는 사람이 왠지 우리가 아는 얼굴 같다?”
이번에는 양희와 지훈까지도 창문으로 다가왔다.
“어? 쟤 그 기획사라고 하던 애 아닌가?”
“맞네. 그때 대표라던 인간과 매니저라던 인간들도 다 같이 있네.”
20년 전의 일이었다. 네 사람이 앨범을 내보겠다며 한창 열정을 불태우고 있을 때였다. 자기들이 무슨 기획사를 하고 있는데 실력 있는 인디 밴드를 발굴하고 있다며 접근해온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 같이 유명 기획사 출신들인데 한국 인디 음악을 살려보자는 취지로 새로 회사를 차려서 나왔다며 네 사람이 하던 덤블링 팬더즈를 자신들의 첫 번째 밴드로 키워보고 싶다고 했다. 아직 어리고 철모르던 20대이던 네 사람은 그들의 감언이설에 홀딱 넘어갔다.
“그때 회사 상장 때문에 초기 비용이 없다면서 다 같이 힘을 모으자더니 우리 명의로 학자금 대출까지 풀로 받아서 들고 날랐잖아!”
“솔직히 나는 그때 상장이 뭔지도 몰랐어. 도둑놈들!”
데뷔 앨범이라며 달랑 CD 몇 박스만 던져주고 사라진 이 사기꾼들 때문에 결국 밴드도 해체할 수밖에 없었다. 빚을 갚으려면 밴드 수입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리고 당시 해외로 도주한 사기꾼들은 결코 잡을 수 없었다. 그 치 떨리는 얼굴들을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그런데 그 테이블 앞에 어수룩해 보이는 밴드 하나가 악기 가방들을 들고 앉아 있었다. 딱 봐도 인디 밴드를 하게 생긴 얼굴들이었다.
“혹시 지금 또 사기치고 있는 상황 아니야?”
“무슨 소리 하는지 들려?”
창문에 귀를 가만히 대니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바로 데뷔시켜 준다고. 여기 계신 대표님이 유명 작곡가한테 곡을 하나 받아왔는데 너희가 딱 어울려서 그래.”
“지금 놓치면 그 작곡가 님이 다른 밴드에 넘긴다고 했다니까. 우리도 너무 안타까워서 이러는 거라고.”
“여기 이 공간도 한국 최고의 라이브 밴드 공연장으로 키우려고 만든 거야. 이제 곧 너희 전용이 될 거고. 이 건물 사느라 지금 초기 자금이 좀 모자라서 그런 거니까 다 같이 투자금이라 생각하고 대출 좀 받자. 이 곡만 딱 차트에 올리고 나면 6개월 내에 원금 다 회수하고도 남는다. 장담해.”
“여기 계약서에 너희 몫도 특별히 더 넣었잖아. 너희가 투자하는 조건으로 업계 룰보다 더블이라니까? 어디 가서 물어봐. 이건 정말 파격적인 조건이야.”
창문 너머로 대충 들어도 사기였다. 견상근이 결국 화가 나서 씩씩 대며 쳐들어가려고 하는데,
“곡 먼저 들어볼게요.”
밴드 리더인 듯한 남자가 말했다.
“이 곡 완전 대외비인데 특별히 너희한테만 들려주는 거야. 절대 어디 가서 소문내면 안 된다.”
그리고 사기꾼들이 유명 작곡가의 음악이라는 걸 재생했다. 전주가 흐르는 순간 네 사람의 움직임이 일순 멎었다. 문으로 뛰어들려던 견상근도, 상근을 부여잡으며 말리던 고양희도, 여전히 창문에 귀를 대고 있던 계지훈도, 경찰서에 전화를 하려던 나기한도 그 자리에서 홀린 듯이 멈춰버렸다.
너무나, 너무나도 익숙한 선율이었다. 잠시 후 양희가 소리쳤다.
“뭐야? 저거 우리 노래잖아!”
이제 이 이야기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