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닝리 Aug 02. 2021

 브레멘으로 가자 6. 닭 편

미닝리 단편소설

 << 1편부터 보기 <<




 치킨을 좋아하던 계지훈은 결국 치킨집을 차렸다.

 누가 보면 꿈을 이루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존 본햄이나 코지 파웰 같은 전설의 드러머가 되는 게 지훈의 원래 꿈이었다. 하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 현실 속에서 드러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은 별로 없었다. 밴드 공연을 해도 보통 보컬이나 기타리스트를 기억하지 드러머의 얼굴을 기억하지는 못했다. 밴드 해체 후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보컬이나 기타리스트는 혼자서도 활동을 하거나 공연을 다닐 수 있는 길이 있었지만 드러머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치킨 배달을 시작했다. 잠깐 알바로 한다는 것이 어느새 10년 경력의 라이더가 되었고 착실히 모은 돈에 대출까지 보태 동네에서 치킨집을 차렸다. 처음으로 사장님 소리를 듣고 여기저기서 축하 인사를 받을 때까지는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막상 닥친 장사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치킨이 팔리지 않았다. 평일은 평일대로 안 팔렸고 주말은 주말대로 안 팔렸다. 처음에는 홀과 주방에도 직원을 두었지만, 결국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혼자서 일하는 1인 점포가 되었다. 시간당 5개만 팔아도 배달을 직접 고용하는 게 낫다고 해서 처음에는 전속 라이더도 고용했는데 1시간에 5개는커녕 1개도 안 팔리는 날이 많았다. 배달 대행은 유용했지만 수수료가 있어 마진이 적었다. 그래서 주문이 거의 없는 시간대에는 예전 경력을 살려 직접 오토바이를 몰고 배달을 나가기까지 하고 있었다.


 유지만 하자. 그것이 모토가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혼을 안 해서 건사할 가정은 없었지만 아픈 엄마가 있었다. 지금 수입으로는 월세와 병원비 대기도 빠듯해서 1년에 단 하루도 맘 편히 쉴 수가 없었다. 많이 팔려야 쉬는데 많이 팔리는 날이 없으니 종일 자리만 지키고 한숨만 늘었다.


 오늘은 곧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였다. 비가 오면 아무리 주문이 없어도 직접 배달을 나가기가 망설여졌다. 오랜 라이더 경험에도 불구하고 빗길은 여전히 무서웠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당하는 경우를 워낙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훈은 월세와 대출과 병원비를 생각했을 때 절대로 사고를 당하면 안 되는 몸이었다. 가게 문을 하루라도 닫는 순간 마이너스 통장의 빚이 늘어날 판이었다.


 주문이 한 통 들어왔다. 저녁이라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고 아직 비가 오고 있지는 않았기에 여기까지는 직접 나가자고 마음 먹고 치킨을 튀겨서 담았다. 가게 전화를 휴대전화로 착신전환한 뒤 배달용 오토바이를 몰아 한창 달리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하필 지금 주문이 들어오면 안 되는데 평소답지 않게 무슨 일이지? 지훈은 어떤 멘트로 배달이 조금 늦을 수 있다고 양해를 구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헤드셋으로 전화를 받았다.


 "예, 36계 치킨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여러 사람이었다. 장난 전화인가?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데 화가 나서 한마디 하려는데,


 "치킨이 요즘 치킨 파니?"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양희였다.


 "어. 양희?”


 “출세했네. 그렇게 치킨 좋아하더니 치킨집 사장님이 되었구나. 지금 바빠?”

 “어, 조금. 왠일이야? 전화를 다 주고.”

 “오랜만에 애들 다 모여서. 너도 오라고.”


 얼른 오라고 옆에서 소리 지르는 기한과 상근의 목소리도 들렸다. 지훈은 순간적으로 가겠다고 대답할 뻔했다. 너무 그리웠다. 누구에게나 시간의 고향이 있다. 지훈에게는 밴드를 하던 그 시절이 바로 시간의 고향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시간 말이다.


  “양희야, 그러고 싶긴 한데 나 오늘은 좀 일이 바빠서.”


 정확히는 일이 바쁘다기보다는 가게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단 한 마리라도 더 팔아야 했다. 전화기 너머로 냥이 차였네 어쩌네 소리와 등짝 맞는 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철없는 것들. 지훈은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럼 우리가 너네 치킨 가게로 갈까?”


 오, 양희야. 이건 좀 거부하기 힘든 매력적인 제안인데? 친구들도 보고 매출도 올리고? 하지만 지훈은 필사의 각오로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리 부끄러울 것 없는 사이였다지만 그건 과거의 얘기고, 가게로 초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장사가 안 돼서 파리만 날리는 모습, 종업원 없이 직접 배달까지 뛰는 배 나온 치킨집 아저씨의 씁쓸한 현실을 자신의 가장 빛나던 시절만을 기억하는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특히 양희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미안해. 오늘은 정말 좀 어려울 것 같다. 다음에 날 잡고 와.”

 “치킨아, 우리 다시 밴드 하자. 브레멘 클럽이란 곳에서 밴드 구하고 있대.”


 신이시여, 오늘은 대체 무슨 뜻이 있으시길래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옵니까. 연이어 치고 들어오는 양희의 3연타 공격에 지훈의 마음은 속절 없이 폭격당했다. 솔직히 밴드를 너무 하고 싶었다. 치킨을 팔면서도 매일 생각했다. 밴드를, 드럼을, 음악을 너무나도 하고 싶어서 울고 아파하고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다 넘기고 겨우 이제서야 불혹에 이른 줄 알았는데 왜 이런 시련이!


 “양희야 미안. 하지만 이제 밴드는 정말 못해. 치킨 배달은 주말이랑 밤이 피크 타임이야. 평일 낮에 공연할 거 아니면 난 못해.”

 “그래? 너랑 꼭 하고 싶었는데 아쉽네. 치킨아, 언제든 마음 바뀌면 괜찮으니까 연락해. 그리고 우리 다음엔 꼭 너희 가게에 한번 가볼게.”

 “그래. 미안해. 또 연락해.”


 그러고는 끊었다. 마음이 아팠다. 지훈도 밴드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어머니를 두고, 갚아야 할 은행 빚을 두고 치킨집을 닫을 수는 없었다. 꿈을 꿀 나이는 지났다.


 어느덧 지훈은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다. 오토바이 출입금지 표지판이 보였다. '왜 하필 이런 공원으로 배달을 시킨 거야?' 투덜대면서 배달 오토바이에서 내려 공원을 가로질렀다. 목적지인 벤치에서 치킨 봉지를 내밀며,


"치킨 시키셨죠?"


하는데, 돌아보는 세 사람의 얼굴이 너무 익숙했다.


"잉? 치킨이가 치킨 배달 왔네?"

"야, 잘됐다. 너도 먹고 가라."

"그래. 너 치킨 좋아하잖아?"


 운명이라는 게 있는 걸까. 오랜 친구들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시간의 고향이 마법처럼 지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을 보는 순간 새삼 느꼈다. 지훈은 여전히 밴드를 너무 하고 싶었다.


 "어? 치킨이 울어? 왜?"

 "거기 클럽은 밴드 하면 돈 준대?"


 그러자 견상근이 키득댔다.

 “우는 순간 끝났어, 임마. 가자! 브레멘으로!”



>> 다음 편에 계속 >>


드디어 브레멘 음악대가 다 모였네요! 연재 기다려주시고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레멘으로 가자 5. 고양이와 닭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