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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닝리 Jul 12. 2021

10년 전의 예언?! 마술적 사실주의의 시대

생각의 날개 : 마술과 과학의 사이에서



마술적 사실주의가 유행할 거예요!




10년도 더 된 일이다.


신입사원 최종 면접 때 지금의 사장(당시 전무)에게 ‘한국 문학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받았었다. 전공이 국문과인 것을 보고 돌발 질문을 한 것이다.


그때 나는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가 앞으로 한국에서도 새로운 조류로 뜨게 될 것이고 조만간 문학뿐 아니라 수많은 콘텐츠에서 그것을 확인하시게 될 것이라는 패기 넘치는 답변을 했었다.


당시 면접관이 "해리 포터 같은 건가요?"라고 반문할 정도로 ‘마술적 사실주의’는 생소한 단어였을 것이다.


나름 문학도였던 내가 졸업 전에 관심을 가졌던 분야였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문학 기법을 개념화한 단어로, 기본적으로 현실의 모습을 사실주의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인과법칙에 안 맞는 판타지적 요소가 결합되어 나타난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시공간 이동, 좀비나 외계인, 초능력, 심령 현상 같은 마술적 요소가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 현실의 일상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사실주의적으로 묘사되는 식이다.


어라? 요즘은 너무 익숙하고 흔한 스토리인데?

그렇다. 실제 그 당시 면접을 봤을 때의 내 주장은 예언처럼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아직 해리 포터 영화 시리즈도 완결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판타지면 판타지, SF면 SF, 순수문학이면 순수문학. 장르 간 경계가 확실하던 시절이었다.


면접 당시에는 라틴 문학 수업에서 들은 이야기를 이리저리 논리적 근거로 들었던 것 같지만, 한국에 유행할 거라는 생각은 사실 직관적 느낌에 가까웠다. 내가 보고 싶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나의 예언과 선견지명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야 할 텐데. 아쉽다!




그렇다! 우리는 픽션(fiction)을 즐기게 되었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픽션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실제로 마녀가 있다고 믿거나, 알에서 사람이 태어나거나, 쥐가 손톱을 먹으면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대 이후는 과학의 시대였다. 아직 드라마에 나온 악역을 현실에서 마주치면 삿대질을 하는 어르신들이 간혹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현실과 픽션은 정확히 구분되었다. 사람들은 현실과 구분되는 만들어낸 이야기, 픽션을 즐기기 시작했다.


과학의 시대에 픽션의 길은 두 가지였다. 현실을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그려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는 사실주의를 추구하거나,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판타지를 그려 대리만족을 추구하거나.

그 두 가지 길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마술적 사실주의'라니?

마술과 사실주의는 애초에 서로 모순된 단어다. 그래서 '마술적 사실주의'는 그 형용모순 자체가 주는 어휘적 긴장감이 있다. 모순된 요소를 담고 있기에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에는 적절한 균형감이 중요하다. 현실을 사실주의적으로 반영해 공감을 일으키면서도 마술적 요소를 통해 현실을 넘어서는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균형감을 잃는 순간 이도 저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을 처음 읽었을 때 뇌를 망치로 두들겨 맞는 것처럼 충격이었다. 기발하고 복잡한 상상력과 지적인 충격을 즐기는 타입이라면 강력히 추천한다.



20세기 라틴 아메리카에서 마술적 사실주의가 발생한 것은 억압적인 사회 하에서 위험한 표현을 직접 쓰지 않고 뒤틀어야 하기 때문, 혹은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이 이성적, 논리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모순덩어리이라서 판타지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역사와 맥락이 다른 21세기 한국에서도 마술적 요소와 사실주의적 요소를 결합하는 것이 대세가 되고 있다. 소설에도 드라마에도 영화에서도 현실 속에 마술적 요소를 첨가하는 것은 기본이 되어버렸다. 단순히 라틴 아메리카처럼 현실을 마술적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 무엇 때문일까?


일단 과학만능주의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근대 과학은 완성되었다. 완성되기 전에는 과학만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완성되고 나니 과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버렸다.


현대 과학은 오히려 전통 과학을 해체하고 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넘어 양자역학을 논하는 시대에 왔고, 과학이 세계를 이해하는 도구가 아니라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도구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 기술의 발달로 증강현실, 메타버스는 우리의 곁에 다가왔다. 우리는 이전보다 가상을 더욱 잘 즐길 줄 알게 되었고, 경우에 따라 현실이 아닌 가상이 더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루이비통이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가상 세계에만 존재하는 의상과 가방 등 아이템을 팔자 1시간 만에 매진되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이미 삶의 의미를 현실 너머의 어딘가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가상, 마술과 사실주의는 이미 우리의 삶 속에서 긴밀하게 결합되고 있다.

인류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리는 마술과 과학의 사이에서 어떤 답을 찾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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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각은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사회의 가치관과 인식 범주를 어디까지 넘어설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정답이라 믿는 것들이 진짜 정답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습니다. 찾은 답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행위조차 의심합니다. 질문과 의심, 호기심과 자유로운 생각이 우리를 더 높은 차원으로 날게 해줄 거라 믿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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