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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닝리 Jul 14. 2021

브레멘 클럽 2. 개 편

미닝리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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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상근은 한 신용정보회사의 추심팀 팀장이었다.


 말이 좋아 팀장이지 결국 자기 명함을 걸고 빚 독촉을 전문적으로 하는 역할이었다.

 별명은 사냥개. 한번 물면 놓지 않고 물고 늘어져서 끝까지 받아낸다는 뜻이다. 회사에서는 그 별명을 공공연하게 고객들에게 홍보했다. 결국 여기서도 상근의 별명은 개를 벗어날 수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긴 하지만 딱히 학교 다닐 때 누구 한 번 괴롭힌 적 없는 상근에게 적성에 맞는 일은 아니었다. 적성에 맞지는 않았지만 늘 실적은 좋았다. 오히려 아무 감정 없이 일해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기에 상근은 '채무자의 소재를 파악하여 재산을 조사하고 채권에 대한 변제를 요구'하는 추심의 사전적 의미를 되뇌며 그 업무상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에만 집중했다.


 업무상 노하우라고 하면 채무자를 꼭 한 번 대면으로 만나고 시작하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농담으로라도 상근의 인상은 좋은 편이 되지 못했다. 외모에 어울리게 목소리 톤도 날카로운 저음이었다. 업무상 활용할 수 있는 것은 활용했을 뿐이다. 채권추심, 그러니까 빚 독촉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내용을 바탕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부분이 있다. 단지 그 상상력을 조금 거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예전에 같이 밴드를 하던 친구들도 밤길에 상근을 마주치면 무섭다며 놀려댔다. 이 친구들아, 나도 이런 외모로 태어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고! 다만 그 덕분에 밴드 보컬이었던 양희를 늦은 밤 집까지 데려다주는 역할을 도맡을 수 있었던 거 하나는 좋았다. 생각만 해도 아련한 추억 속 시절이었다. 아직도 그 시절이 그립지만 그 당시 돌이키지 못한 미래를 이제 와서 돌이킬 방법은 없었다. 계속 밴드를 하고 싶었지만 밴드는 돈이 되지 않았고, 그때 우리들은 돈이 필요했다.


 남들은 나이가 들면 감정이 무뎌진다는데 이상하게도 상근은 나이가 들수록 감수성이 예민해졌다. 다른 건 다 괜찮았는데 뜬금없이 눈물이 많아져서 몇 번이나 추심을 나갔다가 사연을 듣고 그 자리에서 울 뻔했다. 그 때문일까. 별 감정 없이 일하던 어린 시절에는 쉽게 해내던 유형의 추심 건도 점점 더 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러다 언젠가 그만두겠지 생각은 했는데, 스스로 먼저 사고를 치게 될 줄은 몰랐다.


 불쌍한 아이였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랬다. 상속을 포기하면 되었을 텐데 바보 같이 부모와 함께 살던 집을 버릴 수 없다는 이유로 상속을 받았고, 결국 빚도 떠안고 집도 상근의 팀에게 빼앗겼다. 친척들은 다 외면했고, 아이는 평생 빚을 갚을 희망이 없었다.


 아이는 이렇게 버는 족족 빼앗겨서는 영원히 돈을 갚을 수가 없다며 딱 한 번만 제대로 장사를 해보겠다고 돈을 빌려달랬다. 상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원칙을 깨고 아이에게 사업을 시작할 만한 큰돈을 쥐여주며 멀리 도망가라고 일러줬다. 아이는 정말로 도망갔다. 그리고 그 돈은 다른 추심으로 받은 회삿돈이었다. 물론 상근은 자신의 적금과 펀드를 깨서 돈을 메워놓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경쟁적 위치에 있던 팀장 하나가 한발 먼저 그 사실을 사장에게 고발했다.


 회사는 뒤집어졌고 사장은 믿었던 사냥개가 주인을 물었다며 상근을 죽여버리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평소 상근을 친동생처럼 아낀다던 사장의 말이 가진 진정성은 고작 그 정도였다. 상근은 당장 필요한 것만 급히 챙겨 도망가야 했다. 한동안 어딘가 조용한 곳에 숨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정처 없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데 한 통의 문자가 왔다. 흔히 추심팀을 하면 업무용 전화기와 개인용 전화기가 따로 있었다. 개인용 전화였다.


 휴대전화 화면 속에서 20년 전 추억의 밴드, 덤블링 팬더즈의 사진이 빛나고 있었다.


 나기, 이 녀석. 반갑네. 마침 밴드 멤버들을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진을 찾아서 보낼 만큼 삶의 여유가 있는 녀석이 아닌데. 회사에서 잘리기라도 했나.



>> 3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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