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개인주의자로 살기
이 질문이 첫 문장이 된 것은 그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 일을 할 때도 동료나 지인들과 밥을 먹거나 대내외 미팅을 할 때도 상대의 성별이 무엇이고 성비가 어떤지가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 일하러 왔지 소개팅을 하러 온 것도 아닌데 성별을 먼저 의식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를 지칭할 때도 이름이나 직함이 아니라 ‘그 여자 차장’, ‘그 남자 대리’처럼 성별을 의식하는 표현을 사용해 듣기에 불편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 중에 연애 상대를 찾고 있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성별이 중요한 상황은 없다. 아니, 이렇게 단언하기에는 중요하다 여기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니까 다음의 한 문장을 덧붙이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내 인생은 나만의 색깔로 칠할 거야', '내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내가 직접 겪어낼 거야'라는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고자 하는 욕구가 무척 강한 아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아이는 자라서 획일화의 상징, 회사원이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엉엉)
그래서 <나>를 설명할 때 성별 정체성보다 자아 정체성이 더 커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남자냐 여자냐 하는 것보다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잘하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 봐도 그렇다. 성별에 따른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다.
오히려 취향, 취미, 성향, 가치관, 철학에 따른 공통점이 그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더 핵심적이고 중요한 요소인 경우가 많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성별에 따른 차이보다 인류라는 종으로서의 공통점이 더 많다고 믿는다. 우리는 특정 성별이기에 앞서 사람이다. 다른 동식물과는 어떤 사소한 취향이나 가치관조차도 공유하지 못하지만 사람들과는 성별이 달라도, 인종이 달라도 함께 공유하고 나눌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는 무수히 많다. 인생을 풍부하게 살수록, 다양한 경험들을 하며 살수록, 남들보다 나에게 더 집중해서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갈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소재가 많아진다. 만약 자신이 남자냐 여자냐 하는 생물학적 정체성, 남자다운지 여성스러운지 하는 젠더 정체성밖에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가.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성별 정체성보다 자아 정체성이 더 강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