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홉의 권총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안톤 체홉은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장치나 소재들은 반드시 필연적인 등장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체홉은 심지어 발사되지 않을 권총은 무대에서 치워버리라고 말했다. 이야기의 세계는 그만큼 개연성과 짜임새가 있어야 하며 무의미한 부분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모든 떡밥은 반드시 회수되어야 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당신이 소설을 한번 써본다면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떡밥 : 낚시에서 유래한 말, 작가가 독자를 유인하기 위해 숨겨진 비밀이 있는 요소를 작중에 등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체홉의 권총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맥거핀’이 있다.
맥거핀은 히치콕 감독이 자신의 표현 기법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스코틀랜드의 고지대에서 사자를 잡는 장치'를 의미한다고 한다. 물론 스코틀랜드의 고지대에는 사자가 없다.
다시 말해 중요한 복선(혹은 떡밥)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 의미도 없는 극적 장치들이 바로 '맥거핀'이다.
히치콕 감독은 서스펜스와 스릴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런 기법을 고안했다. 곧 살인마가 나타날 것처럼 관객들을 속여 긴장감을 극대화한 뒤 사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하고 끝내버리는 일종의 밀당 기법이다.
우리는 대부분 우리의 인생이 '체홉의 권총'처럼 필연성을 지니기를 기대한다.
일부러 사서 고생을 하거나 인생을 허비하는 것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겪은 모든 사건과 경험들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겪는 사건들처럼 미래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기를 원한다. 가령 지금 쌓은 노력들이 결실을 얻기를 바랄 것이고, 우연히 시작된 사랑이 필연이었음을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이 '이야기의 세계'처럼 필연적이고 짜임새 있는 인생이 되길 원한다. 말하자면 소설처럼, 영화처럼 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체홉의 권총'이 아닌 '맥거핀'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심대한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아무런 결과물이 없을 수도 있고, 미래에 돌이켜보면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는 경험들도 많이 하게 된다. 결국 우리 인생은 '이야기의 세계'처럼 짜임새 있게 압축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짜임새 있기를 원할 뿐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인생에서 중요한 어떤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체홉의 권총'이 될 것인가, 아니면 '맥거핀'이 될 것인가.
내가 지금 이 브런치에 소설과 에세이를 쓰는 것은 내 인생에서 '체홉의 권총'일까, '맥거핀'일까. 내 인생의 떡밥이 회수되는 날은, 체홉의 권총이 발사되는 그날은 과연 올 것인가.
어차피 운명론자가 아닌 이상 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뿐이다.
트리거를 당겨볼 수밖에.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Brett_Hondow>
인간의 생각은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습니다. 찾은 답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행위조차 의심합니다. 질문과 의심, 호기심과 자유로운 생각이 우리를 더 높은 차원으로 날게 해 줄 거라 믿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