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영원하다 믿는 것들 : 부동산
역사적인 스타벅스 1호점은 미국 시애틀(Seattle)의 파이크 플레이스(Pike Place)에서 탄생했다. 지금도 사용 중인 대표적인 원두 중에 파이크 플레이스 로스트가 있다. 살면서 언젠가 한 번쯤은 시애틀의 스타벅스에서 커피 맛과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
그런데 미국의 서부에 위치한 시애틀은 사실 사람 이름이다.
그것도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서부 개척 시대에 백인들이 짓밟고 정복한 인디언 추장의 이름이다.
인도 사람도 아닌데 콜럼버스가 자기가 도착한 곳이 인도라고 착각해서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부른 이래, 그 오류조차 정정하지 않고 여전히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오만한 미국인들, 그들이 점령한 땅에 살던 한 원주민 부족의 추장이다.
사실상 일방적인 학살과 정복 전쟁이었던 '미국 인디언 전쟁(American Indian wars)'이 끝나갈 무렵 미국 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시애틀 추장에게 그들 부족이 살던 땅을 팔 것을 권한다. 백인들에게 땅을 팔면 그 대신 인디언 보호지구를 마련해 그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시애틀 추장이 답장한 연설(혹은 편지)이 너무나 인상적인 문장으로 후대에 남는다. (추장의 답변 연설을 듣고 이를 편지로 정리해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후대에 그 문장이 아름답게 포장되면서 원문과 달라졌다는 왜곡설도 있지만, 어쨌든 그 연설에 감명받아 도시 이름까지 '시애틀'로 지은 것을 보면 훌륭한 연설이었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연설문은 버전이 여러 가지이지만 인상적인 부분들을 발췌해 보자면 이렇다.
워싱턴의 대추장(당시 미국 대통령)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우리는 그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것이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신선한 공기와 반짝이는 물을 사고팔 수 있는가?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워싱턴의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온 것은 곧 우리의 모든 것을 달라는 것과 같다. 그러니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안을 잘 고려해보겠지만, 우리에게 있어 이 땅은 거룩한 것이기에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이 땅을 팔게 된다면 이 땅이 거룩한 것이라는 걸 기억해 달라. 우리가 미개하고 무지하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도시의 소음은 귀를 모욕하는 것만 같다. 우리는 연못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부드러운 바람소리와 한낮의 비에 씻긴 바람이 머금은 소나무 내음을 사랑한다. 쏙독새의 외로운 울음소리나 한밤중 못가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면 삶에는 무엇이 남겠는가?
이 땅의 짐승들을 형제처럼 대해 달라. 초원에서 썩어가고 있는 수많은 물소를 본 일이 있는데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내버려 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대는 철마가 물소보다 어째서 더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땅을 팔게 되더라도 우리가 돌본 것처럼 이 땅을 돌보아 달라. 당신들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될 때 이 땅의 기억을 지금처럼 마음속에 간직해 달라. 온 힘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그대들의 아이들을 위해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달라.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들을 말할 수 있는지.
물론 후대에 포장하고 가공했겠지만 그 바탕에 흐르는 철학 자체가 아름답지 않은가.
이 연설은 특히 매우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그렇다. '땅을 소유'한다는 건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관이다. 원래 이 땅은 수십억 년 동안 위대한 자연의 미생물과 파충류, 공룡, 포유류들이 살다 갔고, 빙하기 이후로도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동물과 식물들이 터전으로 삼았던 땅이다. 그걸 고작 수천 년도 안 되는 역사를 가진 인간들이 자기 것이라고 소유권을 주장하고, 멋대로 구획하여 사고팔고 있다. 본디 인간의 것이 아닌 땅에서 동식물과 자연을 쫓아내고 인간의 것으로 삼았다.
미국인들은 이 연설에 감동하여 도시 이름을 시애틀로 붙여 그를 오래도록 기억했다지만, 감동했다고 해서 원주민들을 쫓아내는 걸 취소하지도 않았고 그들과 공존하며 살지도 않았다. 감동은 감동이고 탐욕은 탐욕이었다. 그들은 결국 시애틀에 쏙독새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백인들의 도시를 세웠고, 그 잠 못 이루는 땅에서 스타벅스 1호점도 탄생한다.
모든 땅에 소유주를 정하고 사고팔기로 한 것은 미국만이 아니라 유행처럼 전 세계에 번졌고 현재의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스타벅스도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이 땅에 스타벅스 매장 수가 늘어나는 만큼 우리는 자연의 위대함을 잊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황무지에 깃발을 꽂는 개척 시대가 끝나고 땅들의 소유권이 다 정해지고 나자 더 살 수 있는 땅이 없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독점적 위치를 선점하게 된 지역의 땅 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일찍 산 사람들은 한껏 비싸진 가격에 부동산을 팔고 더 비싼 지역으로 이동해갔다.
그 모든 땅들은 몇몇 사람들에게 소유권이 집중되었고, 처음부터 땅을 소유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점점 이 시장에 새로 진입하기가 어려워지면서 고통받게 되었다. 원래 인간의 것도 아닌 땅을 인간의 것이라 주장하면서 그 결과로 인간들조차 행복하지 않게 된 것이다. 도시와 산업이 발달하면서 땅은 병들어 갔고 자연은 땅이 원래 인간의 것이 아닌 자연의 것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한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생각을 스타벅스의 파이크 플레이스 로스트 커피를 먹으며 써 내려가고 있는 나 또한 그 모순덩어리의 한복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무수한 모순들은 언젠가 인류를 반성하게 할 것이다. 다만 그 반성을 할 때가 너무 늦지 않길 바랄 뿐이다.
시애틀 추장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의 생각은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우리가 고정불변의 진리라고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이 우주에서는 얼마나 사소한 먼지 같은 것인지, 우리의 사고는 얼마나 많은 족쇄에 얽매여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 족쇄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이번 <생각의 날개>에서는 새로운 시리즈로 '우리가 영원하다 믿는 것들'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