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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닝리 Nov 08. 2021

아이는 좌절을 통해 성장한다

생각의 날개 : 아기의 우주 (3)



물질의 객관성은 늘 우리를 좌절하게 한다


우리는 까꿍을 통해 물질세계의 영속성을 배웠고, 숨바꼭질을 통해 사물의 객관성을 배웠다. 그래서 최소한 세계가 없어질까 걱정하지 않고 잠은 잘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물질세계의 견고한 객관성과 영속성은 안정감을 주는 것과 동시에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가령 아기들은 금방 자신의 신체적 한계에 좌절하곤 한다.

아기에게 자신의 신체는 주체의 일부이자 물질로서의 대상이다. 쉽게 말해 자기 마음대로 몸이 안 움직여진다는 것이다. (사실 어른도 그렇다. 이눔의 몸뚱아리! 하지만 아기들에겐 비밀이다. 쉿!)

아기들은 손을 뻗어 잡고 싶지만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좌절하고, 뒤집고 싶지만 뒤집어지지 않아 낑낑대고, 기고 싶지만 마음대로 기어지지가 않아 짜증을 낸다.


의식은 자유롭지만 신체는 유한하다는 모순!

아기들은 주체의 의지와 무관하게 먼저 외부에 주어진 '물질적 조건'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조건 하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실천'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현재의 신체 조건에서는 불가능한 영역(뒤집기, 앉기, 기기, 걷기, 말하기 등)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좌절하며 결국 성취해내는 과정은 크고 작은 실천과 좌절의 연속선상에 있다.

즉, 아이들은 '실천'을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고 '좌절'을 통해 단련된다.




아이에게 좌절을 가르친다는 것


믿거나 말거나 <프랑스 아이처럼>이라는 책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생후 4개월이면 밤새 12시간을 내리 잘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쯤 되면 100일의 기적(100일이 되면 아이가 잠을 잘 자게 된다는 기적, 대부분은 경험하지 못하는 기적이다)이 아닌 프랑스 육아의 기적을 찬양해야 할 정도다.


이 책은 그 비결이 양육자가 아이의 울음에 즉각 반응하지 않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아이가 울 때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미국식 육아와 잠깐 지켜보는 프랑스식 육아가 결국에는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필자는 프랑스식 육아를 실천하지 못했다. 실천한 경험이 있는 분들의 결과가 궁금하다.)


육아 과정에서 아이의 욕구를 즉각 충족시켜 주느냐 마느냐 하는 작은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대개 아이가 떼를 쓰거나 울면 그 욕구를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사랑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빨리 상황이 해결되길 바라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즉각적인 욕구의 충족은 아이의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방해하며, 지극히 자기중심적인(주관적인) 세계관을 형성하게 만든다. 부모의 도움으로 늘 욕구를 충족하며 자란 아이는 친구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에도 취약하며 자신이 처한 물질적 환경이 제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경우 욕구불만인 상태로 부모와 세상을 원망하게 될 수도 있다.


인간은 모든 욕구를 충족하며 살 수 없기 때문에, 좌절을 경험하면서 그 좌절을 잘 컨트롤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좌절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양육자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없는 경우 불행해지기 쉽지만, 좌절을 충분히 경험하고 컨트롤해본 아이는 자신이 스스로 노력해서 획득한 것에 대해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좌절을 먹고 성장한다


'좌절'은 인간이 자라는 과정에서 건강한 정신세계와 철학을 갖기 위해 필수적인 경험이다.

왜냐하면 물질의 객관성은 어른이 되어서조차도 우리 삶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자유로운 의식을 제약하는 것이 단지 신체와 물건들에 불과하지만, 나이가 들면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약, 사회적 관계와 지위에서 오는 제약, 돈과 재산, 직업과 건강, 살아온 이력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물질적 조건이 늘어난다.


물질적 조건은 특유의 객관성으로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며 주관적인 세계관을 가지려 할 때 '그건 불가능하다'며 충격을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좌절'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그 외부로부터의 충격(=좌절)에 대비해 자신을 방어하고 주어진 조건 하에 최선을 길을 찾아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한때 유행했던 '회복탄력성' 같은 걸 가지라는 말이 아니다. 마냥 긍정적인 태도로 회복하라는 순진한 주장은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좌절 앞에서 오히려 위험한 조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긍정적인 마음도 부정적인 마음도 아닌 세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은 '실천'을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물질적 조건은 '객관적'이지만, 자아의 실천에 의해 변화하기도 하는 '객관성'이다. 나를 둘러싼 물질적 조건들 가운데 내가 실천을 통해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 그게 핵심이다. 우리의 존재는 언제나 '실천'이라는 상호작용을 통해서 확증되고 있다. 세상과 나의 관계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정확한 실천을 할 수 있고 정확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삶에 정답은 없다. 실천하고 좌절하고 또다시 실천하면서 자신의 정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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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각은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습니다. 찾은 답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행위조차 의심합니다. 질문과 의심, 호기심과 자유로운 생각이 우리를 더 높은 차원으로 날게 해줄 거라 믿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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