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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닝리 Feb 19. 2022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삶, 네버엔딩스토리

생각의 날개 : Never Ending Story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서는 늘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소설이든 만화든 영화든 드라마든 뮤지컬이든 매체나 장르를 가리지 않았고,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 이야기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가령 최근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지금 우리 학교는>을 다 본 후, 그 다음엔 소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를 읽고 나서, 일본 애니메이션인 <귀멸의 칼날 : 환락의 거리 편> 마지막 회까지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이번엔 뭘 볼까 찾고 있다. 이렇게 보니 뭔가 이야기 중독 같은 건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끊임이 없어야 했다. 언제나 어떤 이야기가 내 삶 위를 떠돌고 있도록 했다.

 소설을 읽을 때는 회사에도 소설책을 들고 출근해 틈틈이 읽었기에 종종 나를 독서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책이냐 아니냐 하는 매체의 문제는 사실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각 매체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소설은 소설의 장단점이 있고 영상은 영상의 장단점이 있다. 어쨌든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는 다양한 방법을 필요로 할 뿐이다. 몇 년 새 발달한 스마트폰과 OTT에 힘입어 출퇴근길 볼거리가 훨씬 풍성해졌다.


 우리는 흔히 이런 행위를 두고 [콘텐츠를 소비]한다고 말한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와 매체를 선택해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야기를 '팔고' 있는 제작사나 출판사도 같은 관점일 것이다. 그들은 이야기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유통업자'인 셈이니까.

 그런데 이번엔 뭘 볼까 찾아 헤매며 각종 '콘텐츠'를 검색하던 도중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본 이야기들이 곧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준 건 아니었을까.

 어릴 적 좋아했던 브레멘 음악대와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곰돌이 푸, 알라딘과 피터팬, 라퓨타와 토토로 이야기를 모르는 '나'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드래곤 라자와 폴라리스 랩소디, 퇴마록과 룬의 아이들 같은 판타지 소설을 모르는 나를 상상할 수 있을까.  백투더퓨처와 쥬라기공원, 스타워즈를 몰랐다면 지금처럼 SF를 사랑하는 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사춘기를 함께 보냈던 에반게리온과 슬레이어즈, H2와 원피스 같은 만화들이 없었다면 지금과 동일한 가치관이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을까. 레미제라블과 지킬앤하이드, 비긴어게인과 맘마미아를 몰랐다면, 음악이 이야기와 조화를 이룰 때 얼마나 더 강력한 울림을 주는지 알 수 있었을까. 박민규와 정세랑, 무라카미 하루키와 오쿠다 히데오, 보르헤스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을 안 본 나를 과연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말할 것도 없이 'NO'다.

 내가 이야기를 소비한 게 아니라, 내가 본 이야기들이 버무려진 존재가 곧 나인 것이다.

 결국 이야기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의 가치관과 정체성, 취향을 형성했다. 내가 사랑한 이야기들이 없었다면 내 삶에 무엇이 남겠는가.


 그중 어떤 이야기들은 나와 동시대에 생겨났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고, 내가 죽고 나서도 한참 동안 이 세계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수명은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길다.

 우리는 새롭게 태어나고 소멸하는 무한한 이야기들의 바다에서 잠깐 파도타기를 하다 가는 관광객에 불과하다.


 우리는 역사 시간에 암기했던 사건들의 이름이나 연도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단군 신화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고 말한 이순신의 이야기는 기억한다. 그것은 아마 사람이 그 어떤 지식이나 사상보다도 이야기를 훨씬 오래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원전에 만들어진 그리스 로마 신화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도 그것이 이야기이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단군의 재산이나 외모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곰과 호랑이의 이야기는 기억하듯이, 우리 인생에서 남는 것도 결국은 우리의 이야기뿐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친밀하게 느끼거나 미워하게 되는 것도 그 사람의 외모, 스펙, 재산 때문이 아니라 대개는 그 사람과의 에피소드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결국 내가 죽으면 무엇이 남겠는가. 내가 무슨 대학을 나왔고, 어떤 회사를 다녔고, 재산이 얼마였고, 외모가 어땠고 같은 것들은 모두 내가 죽으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들이다. 내가 살아오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던 에피소드들이 오히려 나의 수명보다도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남아 있을 것들이다. 나의 스펙보다 나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야기의 강물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우리의 일부를 담그고 더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내가 살면서 마주친 이야기들이 나를 만들고, 내가 만든 이야기들이 또 거대한 흐름의 일부가 된다.

 그러니 우리 인생에서 이야기를 끝없이 흐르게 하라. 우리의 생이 다해도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니!

 Never Ending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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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각은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습니다. 찾은 답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행위조차 의심합니다. 질문과 의심, 호기심과 자유로운 생각이 우리를 더 높은 차원으로 날게 해 줄 거라 믿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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