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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로운보라 Jan 04. 2020

본다는 것

<연필로 쓰기> <여덟 단어>

믿고 읽는 작가님 중에 한 분입니다. 사실 저는 김훈이라는 작가는 독서모임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그 유명한 <칼의 노래>를 지정도서라서 읽었습니다. 독서모임이 주는 힘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는 손에 잡지 않을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    


김훈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고, <라면을 끓이며>라는 책을 사두었습니다. 책은 서재에 예쁘게 꽂혀 있습니다. 꽂혀있는 책을 보고 있으면 뿌듯합니다. 김훈 작가의 매력은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따뜻한 마음으로 글을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읽다가 깔깔대고 웃기고, 가슴 시리기도, 울기도, 미소 짓기도 합니다.    



늙기와 죽기

p. 74 너무 늦게는 했지만, 나이를 먹으니까 자신을 옥죄던 자의식이 경계가 무너지면서 나는 흐리멍덩해지고 또 편안해진다. 이것은 늙기의 기쁨이다. 늙기는 동사의 세계라기보다는 형용사의 세계이다. 날이 저물어서 빛이 물러서고 시간의 밀도가 엷어지는 저녁 무렵의 자유는 서늘하다. 이 시간들은 내가 사는 동네, 인산 한강 하구의 썰물과도 같다. 이 흐린 시야 속에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연히 드러난다. 자의식이 물러서야 세상이 보이는데, 이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다. 너무 늦었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다. 이것은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의 세계이다.    


박웅현 작가님의 <여덟 단어>가 떠오릅니다. 저의 인생 책입니다. 여러 번 읽는 걸 좋아하지 않는 제가 벌써 4번을 읽은 책입니다. 읽을 때마다 다른 구절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그러니 순간을 온전히 살려면 촉수를 예민하게 만드세요. 그래서 다섯 개의 촉수를 가진 동물이 되는 걸 예민하게 만드세요.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처럼. <여덟 단어> p.124    


<여덟 단어>의 견(見)이라는 파트에 나온 문장입니다. 이 문장에 줄을 그으면서 저는 좌절했습니다. 저의 촉수는 예민하지 않았습니다. 전형적인 이과생! 그때는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이과생이라서 안 느껴진다고. 하지만 이젠 알 것 같습니다. 내가 보려 하지 않았고,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올해 가장 아름다운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풀, 나무, 벌레, 새 등에 감동하며 보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놀라면서 보고 나면 그 기억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마음에 상처가 나서 아프기 싫다고, 감각을 차단한 채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훨씬 편안해집니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으면 된다는 것을 서른여덟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김훈 작가님과 박웅현 작가님의 두 부분에 줄을 그었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롭습니다.  

   

나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자가 되고, 읽는 자가 아니라 들여다보는 자가 되려 한다. 나는 읽은 책을 끌어다 대며 중언부언하는 자들을 멀리하려 한다. 나는 글자보다는 사람과 사물을 들여다보고,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하려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야, 보던 것이 겨우 보인다. <연필로 쓰기> p.76    


여운이 길게 남는 문장들이 계속되어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야, 보던 것이 겨우 보인다! 아이와의 일상이 기적이라고 매 순간 되뇌어야만 하루하루 간신히 감사를 찾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시간들도 소중해집니다. 나와 아이가 성장하는 시간들 그래서 성장통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할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고래를 기다리며•(2015년 3~5월 울산시 장생포 고래박물관에서 같은 제목으로 기획전시회가 열렸다.)


친절한 김훈 작가님입니다. 같은 제목으로 전시회가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 주십니다.    

이 책은 어디든 마음에 드는 제목을 골라서 순서에 상관없이 읽기 정말 좋은 책입니다. 얼마 전 아이들과 그림책 <고래가 보고 싶거든>을 보았습니다. 그림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고래가 보고 싶거든>을 김훈 작가님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예쁜 그림책을 보고 아이의 마음을 어찌 봐주실지 궁금해집니다.     


나는 몇 년 전 글을 쓰겠다고, 경북 울진 죽변항 근처에 자리를 잡고 1년을 지냈다. 바다가 끝이 없고 시간이 매 순간 새로워서, 구태여 글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새로운 것들을 맞느라고 빈둥거리면서, 바쁘게 지냈다. 나는 가끔씩 바닷가에 나가서 고래가 오기를 기다렸다. 작은 어선들이 쉴 새 없이 포구를 드나들었는데, 고래는 오지 않았다.
그 후 일산으로 돌아와서 나는 울산 앞바다에 펄펄 뛰는 고래 떼를 TV로 보았다. 나는 놀라고 또 숨이 막혔다. p.441    


작가님이 고래를 끝까지 기다렸다면 실제로 볼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TV로 보셨어도 만세를 불렀는데, 실제로 보셨으면 어땠을까요? 그래서 <고래가 보고 싶거든>에서는 한눈을 팔면 안 된다고 그림책은 말하나 봅니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관심 있게 봐야 한다고 말입니다.    

 

TV를 보면서, 나는 바다로부터 나에게로 건너오는 생명의 힘을 느꼈다. p.442    


그림책의 그림에서 제가 느끼는 힘을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깊게 느낄 수 있도록 쓰셨을까요? 왜 저는 감탄할 수밖에 없을까요?     


여기까지 김훈 작가님의 <연필로 쓰기>를 마무리합니다. 이 책은 옆에 끼고 수시로 빼어 들어 마음에 드는 제목을 읽기를 추천합니다.     

김미경 강사님께서는 감성을 충전하게 하는 책이라고 소개해 주셨어요. 그래서 “충분히 회복했다”라고 말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들여다보고, 그 슬픔과 깊이를 느끼는 김미경 강사님의 공감이 제 마음에 콕 박혔습니다. 북 드라마 영상을 보고 난 후 책을 읽고, 다시 북 드라마 영상을 보면서 영상의 마음에 드는 부분을 캡처합니다. 그러면 처음에 느끼지 못한 감동들이 다시 찾아옵니다.    


별아 내 가슴에    

김훈 작가님이 가야금에 대한 글을 쓰려고 옛 기록을 찾다가 가야금의 거장 황병기 선생께 전화를 드렸다고 합니다. 사정을 말하고 자료를 소개해 달라고 거듭 졸랐다고 합니다. 말끝을 흐리며 꺼낸 말은,    

자료는 ‘별’이라는 것이었. 밤하늘의 별은 우륵이 보았던 바로 그 별이고 또 지금의 별이니까 별은 가장 확실한 자료다 …… 나는 별을 보고 했다 ……이런 말씀이었다.

나는 전율했다. 이것이 예술가로구나! 글자로 된 자료, 남이 만들어놓은 서물을 찾아다닌다는 것은 게으른 자, 눈먼 자, 눈을 떠도 안 보이는 자의 허송세월이었다. p.342    


그래서 김훈 작가님은 대가야의 고토인 경북 고령의 별을 보러 갑니다. 앎을 실천하시는 김훈 작가님의 멋짐에 감탄하게 됩니다.     


별들의 빛은 수만 광년 동안 우주공간을 건너와서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모든 별빛들이 내 가슴에 박혀서 나의 생명은 기쁘고 벅찼다. 내가 한 줌의 글자를 움켜쥐고 살다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중생이라 하더라도 별들과 동일한 빛, 동일한 시간으로 닿아 있으므로 나는 중생이라도 미물이라도 좋았다. 오늘 별을 떠나는 빛은 다시 수만 광년을 건너가서 수만 년 뒤의 중생의 가슴에 박힐 것이다. p.344    


이제 서울의 밤하늘에서 별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별들은 인간의 시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별을 보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은 불행하다. 아이들은 자신의 불행을 모른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자란다. 아이들아, 먼지의 장막 뒤에서 별들은 빛나고 있다. 아이들아, 별들은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p.349    


떠오르는 그림책 <별을 노래해>    

하지만

하늘의 별을 보려면

밤이 오기를

기다려야 돼.    

별을 보려면

하늘이 어두워야 하거든.        

별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별은 항상 있어.    


김훈 작가님의 <연필로 쓰기>는 그림책을 떠올리게 합니다. 미세먼지가 덮인 하늘을 볼 수 없다면 도서관에서 빌린 그림책에서 자연을 느끼고, 감동을 받을 시간을 아이에게 주면 어떨까 하고 제안해 봅니다. 그림 한 폭에 담긴 자연을 벗 삼아 커나가기를 잠시 멈춰 기도해 봅니다.    

여운이 길고, 길고, 길고, 긴

<연필로 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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