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쓰기> <여덟 단어>
내가 스스로는 손에 잡지 않을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
p. 74 너무 늦게는 했지만, 나이를 먹으니까 자신을 옥죄던 자의식이 경계가 무너지면서 나는 흐리멍덩해지고 또 편안해진다. 이것은 늙기의 기쁨이다. 늙기는 동사의 세계라기보다는 형용사의 세계이다. 날이 저물어서 빛이 물러서고 시간의 밀도가 엷어지는 저녁 무렵의 자유는 서늘하다. 이 시간들은 내가 사는 동네, 인산 한강 하구의 썰물과도 같다. 이 흐린 시야 속에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연히 드러난다. 자의식이 물러서야 세상이 보이는데, 이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다. 너무 늦었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다. 이것은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의 세계이다.
그러니 순간을 온전히 살려면 촉수를 예민하게 만드세요. 그래서 다섯 개의 촉수를 가진 동물이 되는 걸 예민하게 만드세요.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처럼. <여덟 단어> p.124
나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자가 되고, 읽는 자가 아니라 들여다보는 자가 되려 한다. 나는 읽은 책을 끌어다 대며 중언부언하는 자들을 멀리하려 한다. 나는 글자보다는 사람과 사물을 들여다보고,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하려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야, 보던 것이 겨우 보인다. <연필로 쓰기> p.76
고래를 기다리며•(2015년 3~5월 울산시 장생포 고래박물관에서 같은 제목으로 기획전시회가 열렸다.)
나는 몇 년 전 글을 쓰겠다고, 경북 울진 죽변항 근처에 자리를 잡고 1년을 지냈다. 바다가 끝이 없고 시간이 매 순간 새로워서, 구태여 글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새로운 것들을 맞느라고 빈둥거리면서, 바쁘게 지냈다. 나는 가끔씩 바닷가에 나가서 고래가 오기를 기다렸다. 작은 어선들이 쉴 새 없이 포구를 드나들었는데, 고래는 오지 않았다.
그 후 일산으로 돌아와서 나는 울산 앞바다에 펄펄 뛰는 고래 떼를 TV로 보았다. 나는 놀라고 또 숨이 막혔다. p.441
TV를 보면서, 나는 바다로부터 나에게로 건너오는 생명의 힘을 느꼈다. p.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