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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로운보라 Mar 04. 2020

왜 엄마는 why해야 할까?

질문으로 할 수 있는 것


엄마들의 삶에는 why가 필요하다. 엄마와 아이와의 갈등은 일상이다. 아이가 ‘엄마 말을 듣지 않을 때’를 떠올려 보라. 마치 아이들은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잠시 멈춰서 생각을 해 본다. ‘아이가 일부러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것인가?’, ‘아이는 엄마를 골탕 먹이려고 하는가?’라는 why에 ‘그렇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잠시 멈추면 다른 답을 떠올릴 수도 있다. ‘왜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할까?’, 이 why에 대한 내 대답은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아서다.’이다. 엄마들은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창의력 학원, 사고력 학원, 토론 학원을 보낸다. 하지만 감히 말하고 싶다. 아이들이 오롯이 가지고 태어난,  ‘호기심’을 표현하는 ‘질문하는 힘’을 지켜야 한다고!    


아이들은 why의 천재다. 당연한 것에 ‘왜’를 붙여서 세상을 배우려고 한다. 궁금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는 것만 골라서 해본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의 일이다. 3살 아이의 에피소드를 어린이집 선생님이 종종 전달해 주시곤 했다. 상담을 하는데 “어머니, 담이가 가위의 쇠 부분을 혀 끝에 대보더라구요.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고 제가 말해줬네요. 언니도 그러더니 자매가 똑같아요.” 아이는 왜 가위의 쇠 부분을 위.험.하.게 혀로 핥았을까? 행동만 본다면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걱정하는 마음을 화로 표현한다. 가위는 위험하다고, 더럽다고 말이다. 아이에게 어떤 이유로 혀에 대 봤는지 궁금해서 6살 큰 아이에게 물었다. “쇠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서 그랬지. 그래서 그네 나무에도 혀를 대봤는데?” 세상에! 나는 아이다움을 잊고 살고 있었다! 아이가 처음 만나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좋은 감각, 촉각을 이용한 것인데?! 자기의 몸을 움직이는 것부터 새로 배워야 하는 아기의 가장 좋은 감각은 ‘혀’였던 것이다. 아이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아이의 답을 들으면서 나는 아이다움을 배울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이였던 우리들도 아이들의 why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엄마도 아이였으니까! 모든 사람은 why하는 힘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이와 함께 why를 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엄마라니 멋지지 않은가? 엄마도 하루 5개의 why로 아이의 천재성을 살려주며, 동시에 엄마의 천재성 ‘why’를 찾을 수 있다.    


내게 why를 하면 어떤 변화가 있냐고 묻는다면, ‘문제해결력이 좋아진다’라고 답을 한다. 1년 전의 일이다. 둘째가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해서 동네의 저류지를 이용한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저류지를 이용한 곳이라 조금 위험해 보이는 구간이 있었는데, 자전거를 바로 전날 타기 시작한 둘째의 친구가 물웅덩이에 자전거와 함께 빠지고 말았다. 그 친구는 놀라서 울음을 터트렸고 돌이 조금 지난 아기를 데리고, 자전거를 흙탕물에 둔 채 집으로 갔다. 친구는 새로 산 자전거가 물 속에 있는 것도 속상한지 자전거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 갔다. “엄마 수빈이 자전거 우리가 구해주자.” “그럴까? 그런데 우리 도구가 하나도 없잖아. 너가 신발 벗고 들어갈 거야? 물이 너무 더러워서 엄마는 안 들어가고 싶은데?”,“어떻게 하지? 주변에 끌어당길 물건도 없잖아.” 우리 셋은 자전거를 눈 앞에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큰 아이가 말한다. “둘이 손으로 연결해서 잡아서 끌면 되려나? 한 번 해보자.” 한참을 이런 저런 방법을 해보다가,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담아~ 수빈이 아빠가 자전거 구하러 있다가 온다잖아. 우리 추우니까 집에 가자.” 엄마인 내가 한 말이 참....쑥쓰럽지만,,, 그랬다. 나는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친구가 속상해서 집에 갔잖아. 우리가 가져다 주면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겠어.”라고 말했다. 아이만도 못한 엄마라니! “그래 잘 생각해 보자. 우리는 도구가 없고, 발을 흙탕물에 담그기는 싫잖아. 우리 자전거 밖에 없다.” 그 순간 번쩍인다. “자전거로 다리를 만들면 되겠네. 물에 반을 담궈서 담이가 가벼우니까 밟고, 예은이가 말한 것처럼 손으로 잡아주면 되겠다.” 우리는 안 된다고 여긴 일을 해결했다. 친구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싶었던 담이와 은이, 그리고 나. “엄마! 진짜 기분 좋다. 우리 셋이 자전거를 구했어. 우리 환상의 한 팀같아.” “그러게, 우리 어벤져스같다. 그치?” 그날의 일을 아이는 가끔씩 말을 한다. 안 될 것 같은 일을 해결해서 친구를 도와 준 것이 스스로도 뿌듯하다고 말한다. 문제 해결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 why는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꼭 필요하다.    


내 삶에서 why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다움’을 찾는 도구라고 말한다. 정신없이 아이와의 일상을 전쟁처럼 보내고 나면 허탈하면서 우울함이 밀려왔다. 아이의 생존에 초첨을 맞춘 시기는 더욱 그랬다. 내 존재는 사라지고, 아이를 위한 엄마로 남편의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내’가 사라져 가는 삶은 우울함을 끝을 내달린다. ‘아이만 키우다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두려움’도 앞선다. 그때 하루 던지는 why 5개는 나를 돌아보게 해줬다. 일상을 일기로 남기려니 긴 글을 써야 할 것 같고, 돌아보자니 그 글을 읽는다는 부담도 있다. 하지만 why 5개는 나를 돌아보기에 편했다. 처음엔 딱 5개면 됐다. 아주 가볍게 던지는 why들은 내 관심사를 말해줬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아이에게 어떤 상황에 화가 나는지 why로 나를 표현할 수 있었다. 답을 명확히 할 수는 없지만, 일단 나를 위한 5분은 사라져가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면 ‘나다움’을 찾아갈 수 있다. why, 하루 5개는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나다움’을 찾아가는 마법의 도구가 된다.    

엄마는 아이에게 세계다. 우주고, 전부이다. “나는 엄마가 화를 내도 엄마가 좋아.” 둘째 아이의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 화를 내도 좋다는 말에 눈물이 나다니?! 내가? 전형적인 이과생인데? why는 엄마의 세계도 변화시킨다. 아이의 마음을 도저히 모르겠던 내가 why로 세상을 배워가면서 다시 마음을 찾게 되었다. 엄마의 삶을 살아보니, 하루에 던지는 why 5개는 아이와 나를 살리는 작은 실천이었다. why는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나를 돌아보게 하고, 아이의 세계를 짐작할 수 있는 세계다. why의 세계가 궁금해 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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