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는 5개의 why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why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던지는 why는 ‘자존감 있는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이다. 하루는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자존감 self-esteem
:자신에 대한 존엄성이 타인들의 외적인 인정이나 칭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 내부의 성숙된 사고와 가치에 의해 얻어지는 개인의 의식을 말한다. -사회복지학사전-
:말 그대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신의 능력과 한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이다. 스스로 가치있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인생의 역경에 맞서 이겨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신의 노력에 따라 삶에서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는 일종의 자기 확신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존(自尊)
1. 자기의 품위를 스스로 지킴.
2. 자기를 높여 잘난 체함.
3. [같은 말]자경(自敬) (자기 인격성의 절대적 가치와 존엄을 스스로 깨달아 아는 일).
엄마인 나는 사전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내린 한 줄의 정의는 ‘자존감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러면 또 고민이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뭐지? 하나의 why는 여러 개의 해답을 가지고 있고, 해답은 또 다른why로 안내했다.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왜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에는 당연시 하면서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불편해 질까?
5개의 why는 스스로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에 다른 면을 바라보게 했다. 내가 아는 내가, 내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why, 하루 5개로 나다움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려면 내가 먼저 나를 사랑해야 한다. 스스로를 어떻게 존중하는지를 아이가 일상에서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말이다.why를 던지기 전까지 나는 ‘엄마는 모든 것을 아이에게 희생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는 아이가 먹고 싶은 것을, 내가 필요한 것보다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내가 쉬는 것보다는 아이를 위한 고단함을 선택했다. 좋은 엄마라는 단단한 갑옷을 입고서...그래서 육아는 힘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육아가 즐거울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였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친정 부모님의 모습이 내겐 습으로 남아 있었다. 아주 오래된 무의식에 있는 기억들이 단단한 갑옷에 갇혀 아우성치고 있었다.
나는 사랑이 가장 쉬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아이 키우는 것은 기쁨 그 자체라는 육아서가 불편했다. 왜 육아서가 불편했을까? 역시 답은 같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안다면, 아이는 당연히 자신을 사랑하는 자존감있는 아이로 클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던진 why 5개가 불안하고 두려운 생명을 키우는 일에 답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적었던 why들을 출력해서 읽으면서, 나는 나를 읽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닿는 why에는 밑줄을 긋고, 나름의 짧은 답을 달았다. 내가 화가 났던 일, 짜증이 나는 일, 속상한 일, 하고 싶은 일, 아이들에 대한 생각들이 why에 담겨 있었다. 화가 나는 패턴이 보였다. 나는 시간이 촉박할 때(특히 시간에 맞춰 오는 유치원 버스를 태워야 할 때), 몸이 피곤할 때, 아이가 떼를 쓸 때 화가 났다. 특히 떼를 쓸 때는 마음 속에 분노가 일었다. 분노를 아이에게 쏟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꾹꾹 참을 때면 가슴이 답답해서 화가 났고, 아주 작은 일에 분노한다는 것에 내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이것 밖에 안되는 엄마였구나! 하면서 내가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채찍질했다. 엄마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고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자존인데, 내가 나를 삐딱하게 보고 있다니?! 스스로를 삐딱하게 보고 있는 엄마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사랑해 줄 수 없는 것은 당연했던 것은 아닐까싶다.
그럼 대체 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 걸까? 내가 발견한 해답은 '아이처럼‘ 사는 것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충분히 귀 기울이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아이들은 뒤에 있을 일을 미리 생각해서 자신의 일상을 조절하지 않는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나가면 아이는 굳이 물웅덩이를 밟는다. 그것도 폴짝 뛰어서 두 발로 착지한다. 그 다음 일은 장화 안에 까지 물이 가득 들어간다. 젖는데 왜 웅덩이를 밟을까? 아이들은 기쁨, 즐거운 놀이가 삶이다. 젖으면 어떠한가? 젖으면 젖은데로 발에서 나는 뽀드득, 꾸욱 소리에 또 깔깔거린다. 엄마인 나는 신발이 젖으면 양말이 젖고, 젖은 양말을 집에 가서 갈아 신어야 하니 웅덩이를 피해 다닌다. 젖으면 갈아 신을 생각을 미리 하고 내 행동을 조절해 버리고 만다. 아이들과 물놀이를 가도 그랬다. 캠핑에 가서도 바닷물에 들어가면 애들도 씻기고, 밥도 해야하는데, 피곤할테니 나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다. 피곤할 일을 생각하면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미리 차단하곤 했다. 아이들과 같이 놀면 나도 즐겁고 재미있다는 것을 why를 5년 넘게 하면서 깨달았다. 지금 이순간을 살면 재미로 가득하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처럼!
내가 엄마로 살면서 절대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 것들을 몇 가지만 소개하려고 한다.
절대 안 되는 일
아이들 보내고 낮잠자기
하루 종일 빈둥대기
화 내기
라면 먹이기
시간 약속 늦기
부탁하기
아이들 놓고 나가서 놀고 오기
시댁에 가지 않기
아플 때 밥 안하기
배달 음식 시켜 먹기
이유 없이 돈 쓰기
why를 6년 째 쓰고 있는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에겐 절대는 없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신랑에게 아이들에게 부탁을 한다. 그러면 놀랍게도 절대 안 되는 일은 당연히 되는 일로 변한다. 그리고 감사하면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면 된다, 내가 나를 허용한다. 아이를 허용해 주듯이 나도 사랑받으러 태어났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존재가 되어간다. 나는 사랑 그 자체가 되려고 한다. 아니, 사랑 그 자체다.
날마다 쓰는 why 5개는 내가 나를 사랑하도록 이끌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