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하다
엄마의 삶을 전쟁에 비교하곤 한다. 특히 바쁜 아침에는 화가 폭발하기 직전인 상황들이 마구 연출된다. 아이 하나일 때도 벅찼는데, 아이가 둘이 되고 나니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아이는 엄마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깨어도 일어나지 않을 때, 일어나서는 아침부터 짜증을 부릴 때, 차 시간이 다 됐는데 실랑이할 때, 나갔다가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할 때, 차에 타기 싫다고 할 때, 결국 차를 못 태우고 걸어서 간다고 데려다줬더니 어린이집 문 앞에서 통곡을 하면서 울 때.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새도 없이 화부터 나곤 했다. 내가 왜 화가 나는지, 어디서부터 화를 찾아야 할지, 어떻게 하면 반복되는 일상에서 조금 더 기분 좋게 보낼 수 있는지의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내 삶이 why를 던지면서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신랑에 대한 why만 소개해 본다.
2014년 12월 31일 why 1일 차
-왜 나는 신랑이 좋을까?
-왜 나는 아이 맘을 모를까?
2015년 1월 21일 why 22일 차
-왜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 사고로 바꾸는 것을 어려워할까?
2015년 5월 18일 질문하다 139일 차(부정 질문-> 긍정 질문)
-왜 신랑과의 대화가 줄었을까?
-왜 신랑은 알아서 일어나지 않을까?
-왜 신랑은 아이디어가 좋을까?
-왜 신랑은 착할까?
-왜 신랑은 내 부탁을 잘 들어줄까?
신랑에 관한 why다. 하루 5개의 why를 다시 피드백을 하는 시간을 가지다 보니 내가 보였다.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내가 던졌던 why를 보고, 밑줄을 긋고, why를 정리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내가 화를 내는 패턴을 찾아낸 것은 아주 큰 성과였다. 같은 부분에 지속적으로 화가 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나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여길 때, 내 몸이 피곤할 때, 내가 옳다고 생각할 때 화가 났다. 화가 나는 상황을 알고 있으니 나름의 대처법도 생겼다. ‘어떻게 하면 같은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을까?’라는 why 하나로 나름의 방법을 생각해 내고, 행동으로 옮겼다. 그러자 화가 나는 상황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why 하루 다섯 개는 나를 알아 가는 좋은 도구가 되었다.
why로 나를 알아 가고,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하자 도전하는 일상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두려움이 많아지면서 하던 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가 운전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운전해서 어딘가를 가는 일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신랑이 운전하는 차는 안전하다고 여겼고, 내가 운전하는 차는 왠지 무서웠다. 안 그래도 운전을 잘 못했는데 아이를 낳고는 아예 운전대를 놓았다. 집 앞에 세워져 있는 차를 놓고 버스시간을 맞춰 약속 장소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느 토요일 새벽이었다.
2015년 3월 14일 why 74일 차
-나는 집 앞에 차를 두고 왜 버스를 탈까?
-운전하는 것이 왜 무서울까?
-왜 무섭고 두려운 것은 잘하지 않게 될까?
2015년 4월 9일 why 100일 차
-왜 나는 택시비가 아까울까?
2015년 8월 19일 why 223일 차
-왜 나는 자동차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왜 자동차는 바쁜 사람에게는 필수품이라는 생각이 들까?
자동차에 대한 why는 일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인 듯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흘러간 일이었다. 2015년 8월 갑자기 고등학교에서 시간 강사를 하게 되면서 차가 필요해지긴 전까지는! 강의하는 것도 걱정이 되었지만 더 걱정된 것은 아이를 3시 30분까지 데리러 집까지 와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있어서 집에 와서 일을 해야 했고 노트북에 책에 짐은 아이만큼이나 무거웠다. 버스나 택시를 타고 짐을 들고 출퇴근할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다. 운전하면 20분이면 되는 거리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으로 늘어난다. 그것도 버스를 바로 탄다고 가정했을 때가 그랬다. 차가 필요한 이유가 더 많았다. 내 상황을 신랑에게 전하며 차를 사는 것은 어떤지 물었다. 우리는 차를 하나 더 사는 대신 취등록세와 매년 내는 자동차세가 부담스럽지 않은 경차를 사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우리는 바로 자동차를 샀다. 내 드림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차가 생기고 나자 시간과 체력을 아낄 수 있었다.
만약 자동차에 관한 why를 던지지 않았다면 자동차를 바로 구매했을까? 일상에서 던진 why는 문제 해결을 조금 더 수월하게 해 줬다. why는 내가 안 된다고 생각한 일들에 도전을 하도록 이끌어 주는 도구가 되었다.
때때로 우리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나만의 관점, 철학 또는 세계관이라는 것이 흔들릴 때 드는 불안함이 밀려들 때가 있다. ‘아이를 사교육 없이 행복한 아이로 키운다’라는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주변에서 ‘똑똑한 아이를 네가 망치는 것은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그랬다. 정말 내가 아이를 망치고 있는 것일까?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지혜’다.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닌 내가 느끼고 실천하면서 내 것이(체화) 된 것 말이다.
지혜: (기본 의미)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내는 정신의 능력.
나는 어떻게 하면 나만의 관점을 가지고 바르게 살 수 있는지 궁금했다. 6년 간 1900여 일 질문을 기록하고 복기하면서 피드백을 하는 시간을 통해 이제는 답할 수 있다. 나를 알고, 내가 원하는 것을 알게 되면 나만의 관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2016년, 나는 앞으로의 삶을 지혜롭게 살고 싶다고 선언했다. 내가 나를 처음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나는 블로그에 ‘지혜로운보라’라는 별명을 스스로 달았다. 지혜롭게 살고 싶은 내 마음을 담아 우리 가족 이름을 한 자씩 따서 ‘행복한 보석 담은 집’으로 만들었다. why는 나만의 관점을 가지고 스스로를 정의하며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도구다.
어떻게 하면 나만의 관점을 가지고 바르게 살 수 있을까? 에 대한 나만의 답을 소개하고자 한다.
독서, 책을 읽어야 한다.
why(질문), 하루에 다섯 개만 던져 보자.
글쓰기, 성찰하는 시간을 갖자.
책을 읽고, why를 던지고, 글을 쓰면서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예전에는 화가 나고 미칠 것 같은 상황인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면서 이해가 되니 화가 줄어들게 된다. 아이들에게 폭언을 쏟아내기보다는 ‘나는 왜 이 상황에서 화가 나지?, ’이 화는 어디서 온 거지?‘, ’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지?‘라는 why를 하면서 원하는 것을 아이에게 요청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내가 요청하는 것을 기꺼이 들어준다. why로 일상에 화가 내려앉으니 why를 쓰기 전보다 조금은 더 행복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매일 일상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가? 그럼 하루에 다섯 개의 why로 나를 알아가는, 사랑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떻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