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어려운 그대에게
나만의 why노트에 이름을 붙여주었다면 이제 하루에 5개씩 why를 써야 한다. 그런데 why 만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렵지도 않다. 왜 why 노트라고 부를까? 왜로 시작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왜요 병! 아이들은 왜? 왜? 왜? 내 why노트를 쓰면서 아이들의 why도 기록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7살, 4살 때의 why를 1년 간 기록을 했다. 아이들에게 “엄마처럼 why노트 만들어 줄게. 궁금한 거 물어봐봐.”했더니 순식간에 why를 만들어냈다. 사실 그때는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큰 아이도 아기 때부터 호기심으로 수많은 질문을 해댔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금 다른 관점으로 질문을 보게 된다.
둘째 아이의 1일 차, 2일 차 why는 다음과 같다.
2015년 6월 22일 둘째 1일 차
1. 왜 유치원은 유치원일까?
2. 왜 예담이는 졸릴까?
3. 왜 식물도 죽을까?
4. 왜 내복은 핑크일까?
5. 왜 책이 노란색이지?
6. 왜 꽃이 노란색이지?
7. 왜 아빠 차는 회색이지?
*8. 왜 다쳤을까?(세면대에서 떨어져서 멍든 날)
2015년 6월 23일 둘째 2일 차
1. 왜 코 파는 친구는 싫어하지?
2. 왜 창문은 색깔이 다르지요?
*3. 왜 친구들은 예담이를 좋아하지?
4. 왜 똥꼬는 이상하지?
5. 왜 핸드폰은 빨갛지?
*6. 왜 울면 시끄러울까?
*7. 왜 눈물이 날까?
*8. 왜 유치원에서는 엄마 생각이 날까?(언니가 유치원을 다녀서 어린이집을 유치원이라고 말함)
*9. 왜 유치원에서는 자기 생각이 날까?
아이가 던진 why는 아이가 ‘세상을 보는 눈’이다. 아이는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 관심을 보이면서 나름의 시선으로 세상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아이의 why는 ‘자신을 보는 눈’인 것이다. 아이는 친구들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아이 스스로 자신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좋아한다고 느낄 수 있다. 아이의 why에는 ‘관심사’가 있다. 엄마 생각을 많이 하고, 아빠의 차에 관해 말하고, 언니가 쓰는 언어로 자신을 표현한다. 아이는 why로 사랑을 말한다. 아이를 둘러싼 것들 중에 자신이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에 대해 말한다.
자! 우리도 할 수 있다. 하루에 딱 다섯 개다.
조혜란 그림책 <상추씨> 본문 인용
돌담 안에 상추씨를 뿌렸어.
싹이 났어.
바람 맞고 비도 맞고 따뜻한 햇빛도 받았지.
뜨거운 햇빛은 상추를 목마르게 해.
목마를 땐 시원한 물이 최고.
잎이 늘어나 꽉 찬 상추는 군데군데 솎아 줘야 해.
다 큰 상추는 고기쌈 싸 먹고 회쌈 싸 먹고 겉절이 하고 음식에 깔고 비빔밥에 비벼 먹어야지.
뚝뚝 잘라 다 먹었어.
그 사이, 돌담 밖의 상추는 꽃을 피웠어.
꽃은 씨가 되었어.
반절은 삼촌한테 보냈고 반절은 남겨 두었지.
그림책 속의 텍스트다. 보이는 텍스트를 보고 그대로 문장 앞에 ‘왜’를 붙이고, 문장 맨뒤는 ‘까?’로 바꿔 보자.
왜 돌담 안에 상추를 뿌렸을까?
왜 싹이 났을까?
왜 바람 맞고 비도 맞고 따뜻한 햇빛도 받았을까?
왜 목마를 땐 시원 한 물이 최고일까?
왜 잎이 늘어나 꽉 찬 상추는 군데군데 솎아 줘야 할까?
이제 당신의 차례다. 위의 나머지 텍스트를 바꿔도 되고, 내 삶이 연결되어 why가 떠오른다면 그것을 쓰면 된다.
년 월 일 의 노트 2일 차
아주 쉽게 why가 완성된다. 처음에 why를 만들기가 어렵다면 내가 관심 있는 내용들을 떠올리면서 문장을 바꾸면 된다. 그리고 why에 답이 떠오른다면 간단히 자신의 생각을 메모하면 된다. 사실 why 5개는 5분도 걸리지 않는다. 잠깐 나를 멈추고, ‘오늘 어떤 why를 적어야 하지?’하기만 하면 된다. 스마트폰의 메모장을 열어 인상적인 장면을 ‘왜까’로 바꾸면 된다.
잠깐! ‘왜 잎이 늘어나 꽉 찬 상추는 군데군데 솎아 줘야 할까?라는 why에 나름의 답을 해보려고 한다. 농사를 짓거나 집에서 상추를 길러 본 사람은 안다. 너무 붙어 있으면 상추는 스스로의 열기로 맞닿은 부분이 녹아내린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도 집안에서만 있으면 곧잘 싸우곤 한다. 하지만 집 밖으로 나가면 언제 싸웠냐는 듯이 잘 논다. 사람에게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듯 상추에게도 적당한 거리를 만들어줘야 하기에 솎아야 한다. 아깝다고 솎지 않으면 두 죽게 되는 것이다.
why를 던지면 답이 떠오른다. 물론 답이 없는 why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던져 놓고도 그냥 흘러 지나간다. 하지만 다시 꺼내서 읽어보면 정말 몰라서 답하지 못한 why에 명확한 나만의 답을 내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why를 던지고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나다움을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