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연습, 왜?
“왜 그렇게까지 생각해?”
“그냥 그런 거잖아.”
이 말들 앞에서 나는 종종 멈칫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묻는다.
매일, 사소한 것에도.
‘왜 그렇게 느껴졌을까?’
‘왜 그 말을 들으면 마음이 쿡 하고 아플까?’
‘왜 나만 이렇게 예민한 걸까?’
내게 질문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 감정의 메모 같은 것이다.
왜까바 놀이, 질문을 여는 첫 단추
하브루타 강의나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할 때
나는 ‘왜까바 놀이’로 문을 연다.
보기엔 단순하지만,
놀라울 만큼 마음 깊숙이 들어간다.
명화 한 점을 본다.
존 에버릿 밀레이의 두 번째 설교.
아빠와 함께 교회에 간 아이가
설교가 지루해 졸고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묻는다.
“왜 아이는 혼자일까?”
“왜 아이는 피곤해 보일까?”
“왜 아이는 잠들어 있을까?”
사람들은 각자의 경험으로 해석한다.
질문은 누군가에게는 외로움,
또 누군가에게는 평온함을 떠올리게 한다.
감정을 말로 꺼내고,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명화 속 장면으로 대화한다.
그 속에서
“나는 그때 이런 감정을 느꼈었구나”
하고 자신을 발견한다.
왜까바 놀이는 가벼운 놀이처럼 시작되지만
조용히 내면으로 들어가
꾹꾹 눌러뒀던 감정을 끌어올린다.
때로는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증표처럼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질문은 오래된 감정을 재해석하게 한다
비 오는 날이면 나는 괜히 기분이 가라앉았다.
우울하고 무거운 느낌.
빨래가 잘 안 마른다는 짜증부터,
아이들이 흙탕물 튀길까 걱정하는 마음까지.
“나는 왜 이렇게 비 오는 날이 싫을까?”
그 질문 하나에서 시작됐다.
정찬근 강사님은
비 오는 날 할 수 있는 50가지를 써보라고 하셨다.
질문형 확언으로 바꿔서 다시 쓰기.
‘나는 왜 비 오는 날 50가지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실제로 해본다.
우산 쓰고 무작정 걷기,
아이들과 우비 입고 놀이터 뛰기,
시골집에서 비 맞으며 풀 뽑기.
비 오는 날을 ‘살아있는 날’로 바꾸는 작은 실천들.
그러다 번쩍 떠오른 기억 하나.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습을 마치고 기다리던 아빠가 오지 않던 날.
비 오는 밤, 우산 없이 집까지 걸어간 그 길.
젖은 채 벨을 누르는데도 아무도 나오지 않던 순간.
그때의 나는 무서웠고, 외로웠고, 버려진 것 같았다.
기억 속의 나는
엄마에게 안아 받지 못한 채 울었다고 생각했다.
몇 달 후 발견한 오래된 일기장 속에는 다른 말이 적혀 있었다.
‘엄마가 나를 안아주었다.’
기억은 때때로
상처받은 마음에 맞게 왜곡된다.
질문은 나를 다시 살게 한다
질문은
단지 이유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질문은 감정을 흘러가게 하고,
마음을 재해석하게 한다.
우리는 너무 자주
그냥 그런 줄 알고 넘긴다.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왜’라는 한 마디로
감정도, 기억도, 해석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 비로소
나는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를 미워했던 시간,
스스로를 짓눌렀던 날들,
비가 오면 무조건 우울하던 감정들.
그 모든 것이
내 안에서 만든 내 해석이었다는 걸.
질문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그 감정 안에 갇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왜 사소한 것에도 ‘왜?’라고 묻는가
사소해 보이는 것, 사소하지 않았다.
그 안에 감춰진
나의 믿음, 감정, 기억, 상처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비 오는 날 문득 느껴지는 감정,
아이의 투정 뒤에 숨겨진 진짜 마음,
내가 피하고 싶었던 그 말의 의미까지.
질문은
내가 나를 이해하고,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연습이다.
사소한 ‘왜’에서 시작해
진짜 나를 만나는 그 시간.
그게 바로
‘질문하는 삶’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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