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다 잘될까'?
영어로 'Everything happens for the best'란 표현이 있다. 어려운 일에 처한 사람들에게 '다 잘될 거야'라는 뜻으로 영국에서는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최근 다니던 회사에서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해고를 통보받았다(정확히 말하면 상사가 해고를 들먹이며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했고, 난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통보하고 해고당하는 걸 택했다). 이미 그만둘 마음을 먹고 있었기에 회사를 나오게 된 데엔 아쉬움이 전혀 없었지만 그 사유와 방식이 치사하고 부당해 화가 치밀었다. 갑자기 밀려오는 생계 걱정도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상사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이야기한 게 실수였을까? 안정적인 생활과 수입을 포기하면서 까지 내 입장을 분명하게 한 게 과연 잘한 것일까? 아무리 더럽고 치사해도 꾹 참고 상사의 요구를 따르는 게 더 지혜로왔을까? 갑작스러운 해고에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이 왔다 갔다 했다.
급 우울감에 빠진 내게 짝꿍이 위로한다고 건넨 말이 바로 'Everything happens for the best'였다.
그냥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면 그냥 흘려 들었을 것을, 짝꿍이 진심을 담아 위로를 하니 식상한 표현도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됐다.
직역하면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결국 최선의 결과를 가져온다' 또는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결국 좋게 되려고 일어나는 일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는 이 표현은 참 운명론적인 표현이다. 수 만개의 요소들이 제 각각 방향으로 움직이고 서로 충돌하며 무작위 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란 그림을 형성하는 게 아닌 미래를 이미 꿰뚫어 볼 수 있는 그 어떤 주체가 연출하는 상황을 우리는 따라만 가는 것이라는 운명론.
전능한 신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신의 뜻에 기대며 '다 잘될 거다'라고 믿으면 되지만, 무교인 짝꿍이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게 생소하게 다가왔다.
"Do you really believe that everything happens for the best?"라고 물으니 짝꿍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이 말은 참 위로가 되는 말이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 말에 기대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건, 이 표현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소망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 잘될 것'이란 생각은 너무나 막연하고 근거 없지만 이것이라도 붙들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에. 그래서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식상한 표현에 진심을 담아 위로를 건네곤 한다.
참고로 난 기독교인이다.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내 앞길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사실 'Everything happens for the best'란 표현의 실현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내겐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 표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해고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 이유가 내 고집이었든, 상사의 부당함이었든 어쨌든 이미 일어난 일. 이제 남은 일은, 주어진 상황을 최선의 상황으로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인 거다. 해고를 발판 삼아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 내고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 So that I can one day say, everything happened for the 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