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indsbird Sep 19. 2024

풀잎은 아직도 싱그럽더라

해고 - 2주 후

갑작스럽게 회사를 그만두게 된 지 2주가 지났다. 


그동안 나의 감정은 갑자기 먹구름과 함께 비를 쏟아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는 변덕스러운 영국 하늘과 같이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했다. 


해고를 통보받은 첫 주엔 시도 때도 없이 분노의 천둥 번개가 쳤다. 그리고 충격이 조금 가라앉자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으로 다시 마음은 따스해졌고, 그 와중에도 다시는 일을 하지 못할 것 같은 근거 없는 불안감이 불쑥 찾아와 마음을 헤집고 가곤 했다. 


미래가 불안하고 두려워 마음이 어려워질 땐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손작업을 하곤 한다. 십자수를 놓는다던지, 집에서 키우는 화초를 다듬는다든지, 강아지와 산책을 나간다던지. 별생각 없이 이런 단순 작업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어젠 화분에서 풍성하게 자란 바질을 다듬어주었다. 상한 잎은 떼어내고 가지치기를 해주었다. 페스토 소스를 만들 크고 푸른 잎사귀들은 잘 씻은 후 따로 보관해 두었다. 손가락엔 바질 특유의 향긋함이 묻어났다. 어느새 이렇게 잎사귀 많은 풍성한 바질 나무로 자랐는지. 가만히 두어도 계속해서 새 잎을 내는 게 신기했다. 이 날 따라 막 나온 조그만 아기 잎사귀가 귀엽고 신통방통하게 느껴졌다.


강아지를 공원에 데리고 갔더니 다람쥐들을 쫒느라 아주 신이 났다. 얼마 전 10살이 된 우리 강아지는 노견이란 게 무색할 정도로 아직도 아주 잘 뛴다. 아직도 건강하게 잘 노는 게 감사하다. 


걱정한다고 답이 나올 것도 아닌 앞날에 묶이려는 나의 정신을 지금 이 순간으로 이전한다. 내가 지금 밟고 있는 땅, 내 손가락이 만지고 있는 풀잎. 그러고 있노라면 오늘날의 아름다움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해고를 통보받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