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발견한 '기이한' 현상
게으름의 패러독스
나의 새해 다짐은 매년 동일하다. 올해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여보는 것. 적어도 6시에 일어나 운동과 QT로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는 것. 매년 1월 꾸준히 하는 다짐은 매년 꾸준히 지켜지지 않았다.
주중엔 알람을 기본 5개 이상 맞추어 놓고도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해 매일 아침이 허둥지둥이었고, 주말엔 늦잠으로 모든 아침들을 소진했다. 늦잠을 자면 머리가 띵하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은데도 제시간에 일어나는 건 내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2023년은 조금 달랐다. 8월 퇴사를 하고 나면 내 아침 기상 시간은 끝도 없이 늘어질 줄 알았는데 결과는 그 반대였다. 지켜야 할 출근 시간도, 잘 보여야 할 상사도 없는데 자발적으로 8시, 7시에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컨디션 좋은 날은 6시에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30여 년 살면서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런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답은 '강제성'에 있지 않나 싶다. 생각해 보면 여태까지 인생 대부분을 타인이 정한 하루 리듬을 따라 생활해 왔다. 어릴 땐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학생 시절엔 정부가 제정한 교육 과정을 따라, 취업하고선 회사 필요에 맞춰 일상이 돌아갔고 그렇게 사용하고 남은 자투리 시간이 비로소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모든 강제성이 없어지고 하루 일상의 지휘권이 전적으로 나에게 돌아왔을 때 난 하루에 부여된 24시간의 시간을 훨씬 더 책임감 있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으면 하루가 무너지고, 무너진 하루는 전적으로 버려진 나의 삶의 일부가 되기에. 누가 시켜서가 아닌 내가 알차게 하루를 보내고 싶어서 시작하는 아침은 그렇게 버겁지 않다. 물론 내겐 비직장인만 누릴 수 있는 시간의 사치가 있는 건 사실이다. 조금 늦게 일어나도 아침은 항상 여유롭고 프리랜서로 하고 있는 일은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시작하면 되니까.
하지만 30년 넘게 싸워 온 아침잠과의 분투에서 조금은 벗어난 나에게 잘했다고 토닥거려 주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었던 건 그만큼 앞에 펼쳐질 하루가 힘겨웠던 건 아닐까? 어쩌면 아침의 나의 '게으름' 뒤엔 쉼이 필요한 한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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